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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Apr 30. 2016

2016년 4월 28일, 경복궁

한시적 자유부인의 점심 산책 여섯째 날

첫째는 결국 탈수가 걱정돼 링거를 맞혔다. 그나마 조금 나아진 모양이다. 여전히 마음은 심란하지만 당장 집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마음 그대로 점심 산책을 나왔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이틀 전에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멀리서 본 광화문이 생각나 우선 거기까지 걸었다. 유난히 요즘 들어 사람들이 더 몰리는 것 같은 이 일대. 오늘도 광화문 앞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촌으로 갈까 북촌으로 갈까 고민하다 삼청동/북촌 방향으로 시작해 경복궁 돌담을 끼고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요즘 이 일대를 지날 때 한복을 입은 20대 여성들이 눈에 자주 띄는데, 오늘도 그런 사람들이 보였다.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이거니와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입는가 보더라. 철릭 원피스처럼 개량한복 스타일도 많이 나오기도 하고. 교토에 갔을 때 기모노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깔끔하고 정돈된 거리의 정취를, 기모노 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살아나게 하는 것 같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거리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환영이다. 일상에서 한복을 입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얼마쯤 지났을까, 청와대 근처니만큼 여기저기 경찰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한 여경이 내게 행선지를 물어본다.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또박또박 '경복궁 돌담 따라 한 바퀴를 돌려고 한다'고 답했더니 인사를 건네며 보내준다. 태도는 매우 친절했는데 그냥 이런 걸 묻는 것 자체가 의아하기도 하고, 그냥 그랬다. 원래 다른 나라도 이런가. 옛날처럼 불심검문(?), 신분증 검사(?)까지 안 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거 참.


행선지 심문(?)을 당하고 나서 청와대 자리를 다시 한 번 보니 서울 중에서도 정말 최고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청와대 뒷산 격인 북악산은 뒷산이라고 부르기에 미안할 정도로 든든한 느낌이고, 그 옆으로 보이는 인왕산은 언제 봐도 산세가 참 우아하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경복궁이 있고, 청와대 양 옆 동네는 비록 관광 인파들로 넘쳐나지만 안정되고 정돈되어 있다. 이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역대 나랏님들은 고마워할 줄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한 무리의 중국인 깃발 관광단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이 사람들에게도 행선지를 물을 것인가! 과연.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원점인 광화문으로 돌아왔다. 마침 오후 한 시가 되어,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을 막 시작한 상태였다. 아까 본 것처럼 또 한복을 곱게 입은 여성과, 스마트폰으로 수문장 교대식을 촬영하는 남성과, 히잡을 쓰고 아기띠를 멘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 광경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 수문장 교대식보다 그 사람들을 구경한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고 생각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간다.



2016년 4월 28일, 4.86Km, 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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