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1일, 한시적 자유부인의 5월 두 번째 점심 산책
아흐레만의 점심 산책 재개. 그동안 업무로 바빴거나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비가 왔거나 위 상황 모든 게 아니라면 임시공휴일을 포함한 연휴였다. 오늘은 오랫동안 나서지 못한 산책을 반드시 나설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듯, 비 온 다음날다운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일교차는 크지만 한낮에는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할 만큼 날도 더워졌겠다, 지척에 두고 찾은 지도 오래됐겠다, 오늘의 산책 코스는 일찌감치 청계천으로 정했다. 청계천 소라광장부터 시작해 시간이 되는 데까지 걷고, 다시 길을 되물어 돌아오거나 청계천 아랫길이 아닌 윗길(길가 횡단보도)로 걸어올 생각이었다.
청계천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연등행사 중이었는데, 낮이라 그런지 화려한 불빛은 뽐내지 못하고 마치 닥종이 인형의 그것마냥 마냥 소박해 보였다. 그래도 정성 들여 만들어 놓은 티가 나서 잔잔한 볼거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연등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대낮에 청계천을 걷는 시민들이었다.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라 점심 산책을 다니며 사람들 관찰을 많이 하게 되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다른 코스보다 더 사람 구경을 많이 하게 됐다. 길이 좁은 데 비해 사람이 많아 빠르게 걷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사원증을 걸고 식후 산책 중인 사람들, 데이트 나온 연인들, 사진 촬영하러 나온 사람, 다양한 장비를 갖고 나와 수질 측정을 하고 있던 (추측하건대)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근처 SK서린사옥 어린이집에서 소풍 나온 꼬꼬마 아이들까지. 제일 좋았던 건 다들 서두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대부분은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돌계단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거나, 걷더라도 천천히 걸었다.
청계천 복원 업적이 누구의 것이든, 애초 어떤 의도로 만들었든지 간에,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어느덧 청계천 복원도 10년이 지나고, 이렇게 시민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걸 보면 인위적이긴 하지만 도시 역시 자연처럼 지속적으로 생동하는 유기체가 아닌가 싶다. 다만 개발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 서울이라, 변하더라도 사람으로부터 너무 멀리 가지 않는 방향이었으면 한다. 나무, 풀, 물, 공기, 그리고 햇살을, 이렇게 정다운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서울이기를. 다음번엔 이 길을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해야겠다. 삼일교 앞 징검다리를 통통통 건너며, 다음 산책을 기약해 본다.
2015년 5월 11일
남대문~청계천~종로구청~세종대로~남대문
5.76km, 5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