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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 GG Aug 15. 2020

지금은 회사와 이별하는 중입니다

제주에서 숙박업 하는 스타트업의 생존기(4)

| 다가온 이별을 알아요


5월 무렵부터 퇴근길에 주구장창 듣던 노래가 있었다. 하나는 카더가든의 '우리의 밤을 외워요', 다른 하나는 검정치마의 '기다린 만큼 더'. 그리고 들을 때마다 '하..' 하고 작게 그러나 깊게 한숨을 내쉬게 하던 구간이 있었다.


'다가온 이별을 알아요 밤 비 조금 멎을 때면 나는 언젠가 돌아보게 될 우리의 밤을 외워요'


'사실 난 지금 기다린 만큼 더 기다릴 수 있지만, 왠지 난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일 것 같아'


저녁마다 곱씹던 노래 가사가 현실이 되던 날. 회사와 작별을 고하던 그날의 나는, 아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던 이와 헤어진 것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그것도 많은 미련을 남긴 채.

그 정도로 애사심이 가득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곳은 직장생활 그 이상의 것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아프고 쓰라린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하겠다.


'스타트업의 생존기'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 다가오는 이별을 체감해야 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진짜 마지막을 마주하며 이별을 고하려 한다.




| 경계를 허무는 탐험을 계속하기 위해   


6년 전 처음으로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그 뒤로 꽤 규모도 있고 네임벨류도 있는 액셀러레이터 두 곳에서 신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하다, 생각지도 않은 제주에서 다시 경험하게 된 두 번째 스타트업 실무.    


여행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행산업에도 관심이 많다. 국내에는 모호하게 자리 잡은 중소형 숙박업 시장에 호스텔을 하겠다고 뛰어든 이 회사합류하게 되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시장성이 있었다. 그리고 운영을 시작하며 예상했던 어려움과 예상치도 못한 어려움을 하나하나, 하루하루 헤쳐나가던 우리는 결국 넘지 못할 부딪혔다.

두 명의 젊은 창업자가 시작한 이곳에는 오늘부로 다시 이 두 명의 창업자만 남게 되었다.


기술-시스템-자본의 삼박자가 갖춰진 곳이 크고 안정적인 기업의 형태라면, 저 세 가지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곳이 스타트업이다. 결국 시장에 나선다는 건 돈을 벌겠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위 세 가지를 갖추고 있거나 갖춰나가야 하는데 결국 모든 면에서 여러모로 부족했던 것이다.

특히 '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숙박업이 현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서 주목받고 성장해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형체도 알 수 없는 코로나-19인지 18인지 하는 바이러스는 그나마 '로컬' 기반의 콘텐츠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던 이곳을 단숨에 무너트렸다.  


물론 아직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다. 끝이 난 건 아니기 때문에. 0에서 1을 만드는 일, 그러니까 가능성으로만 비치던 것들을 '했다' 혹은 '해냈다'로 바꾸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는데 적어도 0.5 정도는 만든 것 같아 절반의 성과는 거뒀다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면, 운영 시작 후 첫 두 달을 제외하고는 8개월 동안 평균 OCC(점유율) 80% 이상을 유지했다는 점(코로나가 확산되기 전 올해 1월까지), '7평의 기적'을 꿈꾸는 1층 F&B 공간 멜맥집은 지속적인 매출 상승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호스텔 객실 또한 판매방식과 판매채널을 변경하며 올해 5월부터 순이익이 증가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     


이렇게만 놓고 보면 왜 창업자 두 명만이 남아야 하는가 싶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건비이다. 결국 넘지 못하는 산 앞에서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하산해야만 했다. 그래야 모두가 다치고 쓰러지는 불상사를 피하고 그 산을 넘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 앞에서 더 이상 의지만으로 일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이 더 슬펐다.  



| 현실의 아침은 공허해


이별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미련 없이 모든 정리가 끝난 것 같다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여러 기억의 조각들 때문에 또 힘든 날이 있고, 이러기를 여러 날 반복한다. 회사와 이별 중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달부터 백수가 되어 며칠 동안 쉬는 날이 이어지는 게 처음에는 좋았다. 그러다 갑자기 출근하지 않는 아침이, 일하고 있지 않는 저녁이 공허하게 느껴져 헛헛한 마음에 길 잃은 강아지마냥 이길 저길을 걷기도 했다. 걸음이 멈추지 않아 계속 걷다 지쳐서 돌아온 날이 있기도 했고.


매일 보던 동료들이 곁에 없다는 게 새삼스레 느껴지는 날이면 공허함은 한 평 더 넓어지기도 한다. 당분간 덤덤한 표정 뒤에 감추려 했던 아주 큰 아쉬움과 허망함은 이제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 다가왔기 때문에.  


제주가 아닌 곳에서 오직 일 때문에 제주로 내려온 우리 모두는 일상을 공유하며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던 것 같다. 이제 모두 떠나는 마당에 진짜 친구가 되면 좋겠다. 아마도 이미 우린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든 관계는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나도 어딘가로부터 떠나와야 하는 시간을 마주하는 건 여전히 힘이 든다.


이제 각자의 길을 가게 될 팀원 모두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모두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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