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ka GG May 18. 2020

스타트업-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봐도 희극

제주에서 숙박업 하는 스타트업의 생존기(2)

**지금 이곳엔 이 멤버가 없습니다


| 본업을 잊은 그대에게

5월의 황금연휴가 지나가고 잠시 또 주춤해진 제주여행. 연휴 끝에도 무사하고 무탈하기만을 바랬지만, 안타깝게도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제는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힘조차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의 하루는 여전히 넘쳐나는 업무로 바쁘고 빠듯하다.


코로나로 매출에 직격타를 맞고, 인력감축으로 인해 운영에 필요한 하나부터 열 가지 일당백을 해야 하는 비상운영에 돌입한지도 벌써 두 달째. 각자의 포지션과 별개로 오만가지 일을 다 해내고 있는 우리 팀을 소개하려 한다.



김쎄오(ceo)

본인의 두 번째 창업 회사인 베드라디오의 대표이자 구제주 아침운동러. 요즘은 객실 청소에 조식 판매 그리고 산지등대 투어까지 정말 모든 일에 뛰어들어 하고 있다. 키는 가히 글로벌 스탠다드, 목소리는 지하 3층 정도의 울림을 갖고 있어 '긴동률'이라고도 불린다. 6년 전, 내가 처음으로 스타트업을 경험할 당시 에어비앤비 운영 관련 스타트업의 스타팅멤버로 함께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랜드 디렉터 

베드라디오의 공동창업자이자 그림 그리기에는 소질이 없는 디자이너 출신이다. 지금은 브랜딩을 총괄하며 뾰족하고 날카로운 브랜드 만들기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거기에 객실 청소, 나간 전등, 망가진 손잡이 등 시설관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맥가이버. 아, 역시 키만큼은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작년 제주에 도착해 가장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기도 하다.



세일즈 매니저 

공공기관에서의 첫 직장생활을 시작으로 에어비앤비 운영 관련 첫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두 번의 스타트업 지원기관을 거쳐 지금 두 번째 스타트업 실무를 경험하고 있는 나. 세일즈 업무를 해왔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많이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요즘 매일 하는 청소와 리셉션 업무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도 하다. 모호한 국내 중소형 숙박업 시장에서 '호스텔'의 확고한 자리매김을 꿈꾼다.



공간기획 매니저 

스위스에서 스타트업 관련한 분야에 석사를 마치고 제주에 왔다. 제주 기반 창업지원센터에서 근무하던 당시, 센터 코워킹 라운지에서 일하던 브랜드 디렉터의 (사탕발린) 스타트업 이야기에 넘어가 3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첫 번째 직원인 나에 이어 두 번째 직원으로 입사했다. 호스텔 운영의 기반을 다지던 정신없던 초기, 일주일에 7일을 같이하며 (가끔, 아주 가끔) 회사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끈끈한 동지애를 자랑한다.



총괄매니저(GM)

미얀마에서 현재 우리가 운영 중인 호스텔 보다 몇 배 정도 큰 글로벌 체인 호스텔 한 지점의 GM으로 근무했다. 한국에서 호스텔을 호스텔답게 하는 곳이 어딜까 찾다 제 발로 이곳에 찾아왔다. 자유분방한 성격과 외모와는 달리 업무만큼은 FM! 프로페셔널하다. 그리고 업무능력과 별개로 춤을 잘 춘다. 너무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 대는 게 탈이라면 탈이지만. 나에게 고기를 끊으라고 끊임없이 권하는 그녀. 고기를 좋아하는 채식주의자이다.



경영지원 매니저

스타트업을 처음 경험하고 있어 입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좀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업무체계와 (그리고 말을 잘 안 들어 먹는 팀원들과) 싸우는 중이다. 서류업무가 가장 많아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며 일을 한다. 누구보다 냉철하게 업무처리에 있어 가감 없는 직언을 하지만, 가끔 '헤헤'하며 짓는 빙구웃음이 매력포인트. 스타트업이 무엇인지, 이런 시기를 어떻게 버텼는지 수도 없이 묻던 그녀는 이제 조금 이 환경에 적응을 한 것 같다.   



마케터

스타트업도 경험해 보고, 대기업도 진하게 경험한 뒤 숨 가쁜 도시생활에 지쳐 제주로 내려왔다. 마케팅의 부재로 허덕이던 베드라디오에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이다. 하루가 빠듯하게 일하며 하나를 지우면 두세 개가 생겨나는 마법의 업무량을 지니고 있다. 부디 도시생활보다 더 지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항상 밝은 에너지로 주변을 밝히고, 종종 맛집리스트를 공유하며 "여기 한 번 같이 가요"라며 나를 유혹한다.  



F&B 매니저

한국에서 공대 다니다 캐나다에서 요리 배우고, 덴마크의 유명 레스토랑에서도 근무했다. 지금은 그의 능력에 비해 아주 작고 열한 7평짜리 멜맥집에서 겉바속촉 멜튀김을 만드는 '멜아빠'로 활동하며 멸치 손질부터 튀김옷에 대한 끝없는 연구를 펼치고 있다. 화가 많지만, 또 시키면 시키는 대로 (궁시렁거리며) 잘 따르는 편이다. 초보 중에 초보인 나에게 롱보드를 배우고서는 매일 조금씩 늘고 있는 자신의 롱보드 스킬을 자랑 중이다.



디자이너

지리학을 전공하고 맛집 탐방에 빠져 지금도 구제주의 히든 맛집을 디깅(digging)하는 프로 맛집발굴러. 일주일에 두 번은 멜맥집에서 멜을 튀기고, 그 이외의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으로 굿즈 제작과 각종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멜삼촌'이자 '멜자이너'이다. 아, 디제잉도 잘하는 그는 멜맥집의 플레이리스트도 책임지고 있다. 구제주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힙한 감성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손님들은 플레이리스트를 종종 묻곤 한다. 그리고 나를 천적으로 꼽는다는데, 왜일까? (진짜 모름)   


간판이 없던 멜맥집에 드디어 간판을 달았다. 매출에도 날개를 달면 좋겠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본래의 업무 이외에 기본적으로 객실 청소와 리셉션, 호스텔 1층에 있는 멜맥집 운영까지 모든 것에 투입되어 있다. 스타트업이 원래 이렇게 작고 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나는 조직이라 하지만, 이쯤 되면 스타트업 정신이란 게 기업가 정신에 기반해 있는지 체력과 건전한 정신력에 기반해 있는지 다시 한번 논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이왕 하기로 했다면 제대로 하자'의 태도로 임하고 있다.

대충을 미덕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함께 일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 아홉 빛깔 무지개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대표가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물론, 우리 팀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보다 월등한 능력치와 경험치를 갖춘 조직이 대부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다채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조직은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회생활 8년 차에 접어들며 몇 번의 직장을 거쳐온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의 네임벨류보다, 나의 포지션보다 중요했던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이 사람들과 가능한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일과 중 가장 신경써야 하는 건 여전히 매출이다. 모든 노동력을 투입해 일하고 있는 것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 위기를 극복하고 운영의 정상화를 찾기 위함이기 때문에.


어느 날 제주항에서 들어온 싱싱한 멜을 이틀 꼬박 손질하던 중 경영지원 매니저가 내뱉은 자조 섞인 말,

"아.. 짜증 나..."

"왜 그래요?"

"아니~ 우리 이거 잘하는 거 같잖아요~ 왜 이런 것까지 잘하냐고! 고급인력들이 뭐 하는 거야~"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나도 한마디 받아쳤다.  

"다들 못하는 게 뭐야 진짜~징~하다"


머지않은 날, 모두가 본업에서 보다 더 빛을 보는 날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업무의 경중을 따지자면,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중요하지 않은  단 하나도 없다. 매일 손님을 맞이하는 숙박업에서 제일 신경써야 할 부분은 어쩌면 청소이고, 멜맥집에서 주문한 음식을 친절하게 서빙하는 것도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가장 안전하고 청결해야 할 먹거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몸소 겪어보는 현장의 경험은 앞으로의 운영에 있어 더욱 정밀하고 치밀한 서비스 매뉴얼로 탄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주일에 7일을 운영하던 맬맥집도 하루를 쉬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멜맥집의 휴무날이다. 어제의 힘듦은 잠시 잊고 우리만의 작은 파티를 열어보려 한다. 아마도 먹부림을 가장한 신메뉴 테스트가 되겠지만, 함께 있어 또 웃을 수 있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쓰고 보니 꽤나 낭만적이다. 그러나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게 현실이다. 머릿속엔 항상 '매출'과 '운영 정상화' 두 단어로 가득하다. 이런 고민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도 많지만 하루하루 헤쳐나가면 그뿐.


페이스 조절은 나의 몫임을 잘 알기에 조금 더 길게 보고 숨 고르기 한 번 하고 가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