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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 GG Jul 16. 2020

추억팔이라 쓰고, 가장 좋았던 시간이라 읽는다

추억 안 먹고 어떻게 살아요?  

| 너한테 여행은 뭐야?


여행이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그건 바로 일 년 중 가장 큰 지출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여행은 앞으로 다가올 약간 설레는 하나의 이벤트로 남겨둘 뿐, 많은 기대와 망상은 금물이다. 가장 중요한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을 마친 후로 세세한 여행 계획은 잠시 덮어두는 편이기도 하다.  


물론 여행을 대하는 저마다의 자세가 있겠지만, 떠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소중한 순간을 지키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떠나봐야만 알 수 있으니까!


Photo ⓒ a.k.a.gg


누군가는 나를 몹시 부러워한다. 특히 유부녀 친구들에게 나는 대리만족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A: "너는 이제 안 가본 데가 없지 않아?"  

B: "아.. 나도 진작에 부지런히 다녔어야 했는데, 부럽다 진짜!"

나: "아니~ 아직 안 가본 데가 훨씬 많지"

B: "결혼하면 진짜 가고 싶어도 맘대로 못 간다~ 갈 수 있을 때 더 다녀! 괜히 하는 말이 아니야"  

C: "언제 또 거길 다녀왔어~ 돈은 다 어디서 났데? 근데 정말 나 대신 더 즐기고 사진 좀 많이 올려줘"

B: "야 여행 가서 좀 괜찮은 남자 없었어?"

나: "아니~ 결혼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다들 잘 살고 있는 거 아니었어? ㅋㅋㅋ"


정말이다. 아직 이 넓은 지구 상에 안 가본 곳이 수두루빽빽이고, 돈은 수시로 모으고 있다. 일 년 중 가장 큰 지출에는 망설임이 없기 위해서! (TMI-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개미는커녕 개미 발바닥 정도의 투자자이지만) 그렇다고 작정하고 전 세계에 발자국을 남기려는 여행을 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 떠났을 뿐.


그렇게 쌓여간 여행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박비야'로(한때 한비야 님이 화제였다), 돈 많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잘못 인식되기도 했다. 지금은 영혼만은 자유롭고 싶은 8년 차 직장인이지만. 허허.

 

Photo ⓒ a.k.a.gg



| 어디가 제일 좋았어?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녀도시 중 꼭 한 곳을 집어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였는지 말해보자고 할 때가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지난 여행은 이제 좋은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고르라면, 이제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묻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물론 '할머니'라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하나를 꼽으라면 장소보다는 '시간'으로 기억되는 첫 유럽 배낭여행이 아닐까 싶다. 성인이 되어 온전히 내가 모은 돈으로 떠났던 25일간의 유럽 배낭여행. 모든 처음이 그렇듯, 설렘 가득한 두근두근 심장박동 소리로 잠을 설쳤던 여행 전날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Photo ⓒ a.k.a.gg


그리고 여행 시작과 동시에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예를 들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차표에 펀칭(펀칭이 웬 말인가.. 12년 전에도 나는 교통카드를 쓰고 있었으니)을 안 했다는 이유로 역무관에게 100유로 가까이 삥(?)을 뜯길 뻔한 일, 독일 뮌헨에서 지하철 열차 문이 수동인 걸 모르고 있다가 문을 열지 못해 회송하는 열차에 갇힐 뻔한 일, 오페라 시즌이 아닌 때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길거리 매표상에게 날짜가 잘못 적힌 표를 사고는 공연시간이 돼서야 뭔가 잘못된 걸 알아차리고 있은 욕 없는 욕을 퍼부었던 일, 체코 숙소에서 수동 비데가 발을 씻는 세면대인지 보조 세면대인지 치열한 고민 끝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손을 씻었던 일 등등

 

이제는 몇 번을 곱씹어도 질리지 않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후 노트북을 두 번이나 잃어버리는 대참사를 겪고, 싸이월드가 작별인사를 고할 때에도 백업조차 하지 못해 온라인상에 남아 있는 사진이라곤 단 한 장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때의 사진들을 모두 인화해 뒀다는 거다. 잊지 못할 장면들을 어떤 식으로든 간직하고 있어 다행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의 최애 도시는 모든 다녀온 도시이고, 가장 좋았던 순간은 그곳에 있던 나를 볼 때이다.


Photo ⓒ a.k.a.gg



| 왜 여행을 하는 거야?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혹은 그냥 무작정. 모두 아니었다. 딱 한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득 잡지나 책을 보가, 티비를 보다가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는 마침 시간과 돈이 가능할 때! 그때 주로 여행을 떠났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생활하던 당시 잘 가지도 않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탱고를 추는 한 쌍의 커플을 담은 여행책자의 겉표지를 보고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끌림에 다음 해에 아르헨티나로 떠났던 것처럼.


그 시기에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떠났고, 내가 가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만났다. 그렇게 함께하고 싶은 사람,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해 주었 오래도록 기억될 이야깃거리를 남겨주었다. 록 지금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그 시간을 같이 추억할 수 없는 이들도 있지만..


Photo ⓒ a.k.a.gg



코로나로 인해 이제 여행은, 특히나 해외를 주로 다니던 나에게 당분간 없을 일이 되고 말았다. 당장은 8월에 산토리니에서 예정되어 있던 친구의 결혼식 겸 그리스에 있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는 일이 취소되었다.


그럼 이제 여행은 정말 끝인 걸까?

떠나는 것만을 여행이라 생각했다면 지나온 여행을 돌아보는 것도, 흔히 추억팔이라 말하는 그 시간이 또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추억 속을 헤매며 살겠다는 게 아니다. 쌓여온 시간의 가치는 먼발치에서 돌아볼 때 비로소 영롱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잘 간직하겠다는 거다. 아직은 생생한 그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 하나의 판을 만들어 보려 한다. 어쩌면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결국 '왜 여행을 하냐'고 묻는다면 사는 게 여행이라 그렇다는 뻔한 대답을 하겠지만, 살아가는 데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다고 했다. 틀린 답을 고르는 일은 피해 가기 위해 이 길 저 길을 여행 중이다.


어떤 여행은 오답노트에 잘 적어두었다가 자꾸 같은 문제를 틀리는 바보 같은 실수는 없도록 종종 펼쳐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리고 개중에는 틀린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명확한 정답이었음을 알게되는 짜릿한 순간이 있길 슬쩍 기대하면서.

Photo ⓒ a.k.a.gg


그럼 이제 여행 준비는 마친 것 같으니 다시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어디부터 가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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