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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시점과 스톡데일 패러독스

by 트렌드 서퍼

현장 적응을 시작하며 나는 낙천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려 애썼다. 아니, 차라리 전지적 시점에서 내일을 바라보고 싶었다. 과정은 힘들지만 결과는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한 시점 말이다.


그러나 현장 적응에는 수많은 디테일이 숨어 있었다. 하나의 허들을 넘으면 어김없이 다른 허들이 남아 있었다. 육체적 고통에 대한 적응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인간관계라는 더 높은 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문제는 더욱 복잡했다. 10명이 넘는 동료들과의 관계를 맺어야 했고, 조직은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성격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현장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그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들을 향해 던진 한마디가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어느 날, 같이 일하는 후배가 조언을 건넸다. 내가 학력이 제일 높으니, 직원들이 나를 '먹물'이라고 놀릴 수 있다고. 그때는 무반응으로 대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회사에서 교사 출신이 근무하다 사사건건 직원들과 부딪혀 결국 권고사직을 당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직원들이 그의 서툰 일 처리를 지적했을 때 참지 않고 대응하다 고립되었고, 회사 차원에서는 한 명을 보호하기 위해 전체 분위기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직원들과 어울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허허실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하는 '똥손'이니까, 뭐라고 잔소리를 해도 그냥 웃자!" 심지어 직원 중 내 중학교 동창의 아들이 나에게 무심한 말을 던져도 참아야 했다.


하지만 묵묵히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무대응으로 웃어넘기는 것도 지쳤다. '내가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조 섞인 혼잣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계속 쓰레기 줍는 일만 하지는 않을 거다'라는 막연함이 약해진 마음에 스며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혹시 관리직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심지어 이번 연말이 되면 훨씬 좋은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도 빠졌다.


나는 깨달았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서 말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바로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막연한 희망에만 기대는 것은 현장의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 허황된 낙관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해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쓰레기를 수거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내면의 자세를 바로잡는 싸움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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