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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Mar 04. 2024

'컬처 쇼크'가 오는 순간

Entj 결혼생활

컬처 쇼크가 해외에 나갔을 때만 겪는 것이 아니다.


결혼해 양쪽 집안을 서서히 알아가는 순간에도 양쪽 집안의 문화적 차이로 '컬처 쇼크'가 온다.


남편도 우리 집에서 처음 식사를 하면서 컬처 쇼크가 왔다고 했다.


우리 집은 모두가 말랐지만, 모두가 대식가고 고기를 좋아한다. 결혼 후 첫 명절, 설이었을 거다. 남편이 우리 집에서 차린 식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산처럼 쌓여있는 LA갈비의 늠름한 자태~♡


남편은 덩치가 큰 편이고, 식사량이 꽤 많은 편임에도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저걸 누가 다 먹어?", "걱정 마~ 울 집이 좀 많이 먹어~"


식사가 시작되자마자 단거리 경주하듯 모든 젓가락이 LA갈비로 향했고, 남편은 처음이고 해서 어리둥절하다가 LA갈비를 2~3점밖에 먹질 못했다. 내가 남편을 5년 동안 만났기에 울 집에서도 첫 손님, 사위 이렇게 생각을 하기보단 좀 더 편하게 여겼기에 더욱 평소처럼 먹은 거다. 평소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어 LA 갈비만 먹었고, 남편은 주위를 배려한다고 젓가락 몇 번 뻗지를 못하고, 본인 앞에 놓인 애꿎은 김치만 먹었다.


그렇게 첫 식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서 남편이 원래 이렇게 먹냐, 본인 부모님은 고기를 싫어한다, 소 한 마리를 먹은 거 같다, 다들 너무 고기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 자기까지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못 먹었다 등 본인이 받은 '컬처 쇼크'에 대해 신나게 얘기했다.


웃긴 건 그로부터 몇 주뒤, 다시 우리 집에 갔을 때는 남편 앞에 김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엄마 왈, "김서방이 지난번에 보니까 김치만 먹더라고. 김치를 좋아하나 봐~"

엄마도 나와 같은 과다. 눈치가 없다;;

"엄마, 오빤 젓가락을 멀리 뻗어서 먹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본인 앞에 있는 김치만 먹은 거고~"


그 후로도, 군대 배식에서나 사용하는 식기에서 엄마가 국을 산더미처럼 해 배식해 주는 모습을 보며, 몇 번 더 컬처 쇼클 겪더니, 모든 것은 시간이 약인지 1년이 지나니 남편도 적응을 끝마쳤다. 더 이상 눈치 안 보고 신나게 고기 물고 뜯고 하는 중.


나 역시도 시댁을 알아가며, 놀라운 건 마찬가지!


가장 놀라웠던 건 미리 말을 안 해주는 문화랄까? 결혼 초, 시댁의 시댁, 그러니까 시할머님께 인사를 드리러 시댁 식구들과 다 같이 내려간 적이 있다. 나는 인사를 드리는 줄만 알아서 흰 바지에 운동화 비슷한 단화를 신고 내려갔는데, 성묘를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남편이 왜 미리 말을 안 해주냐고 짜증을 내니, 미리 알면 괴롭기에 말씀을 안 하셨다고 하셨다. 미리 알면 일주일 전부터 괴롭지만, 당일 알면 2시간만 괴로우면 된다는 게 어머님 지론이다 ㅎㅎ 


어쨌거나 성묘하기 위해, 시할머님의 등산 양말을 하나 빌려 신고 성묘 장소로 출발했다. 도착해 보니, 뒷동산 치고는 엄청 높았고, 경사가 5~60도 되는 가파른 산에(거의 기어가야 한다), 가는 길이 닦여있지도 않아 잔 가지들을 밟아가며 내가 길을 개척해서 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난 등산을 매우 잘하고, 좋아하지만, 남편은 살집이 있어 등산을 매우 싫어한다. 이 정도면 남편이 괴로울까 봐 미리 말씀을 안 하신 거구나, 인정!


나야 머 휘리릭 올라갔다. 나의 흰 바지와 단화는... 살리지 못했지만. 남편은 숨을 헐떡이며, 다시는 안 온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는 듯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린 남편은 옷도 챙겨 오지 않아, 더욱 짜증이 나는 듯했다. 미리 말씀만 주셔도 TPO에 맞는 옷과 신발을 갖췄을 텐데...


그 후로도, 미리 말씀을 안 하시고, 즉홍적인 제안을 몇 번 하셨다. 금요일에 전화하셔서 토요일 지인 결혼식 참석이라든지, 설 명절 만났을 때 갑자기 친척 인사 가자고 하신다든지.


결혼 1년간은 기존 약속을 취소해서라도 다 들어드렸고, 이후에는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오빠와 저 둘 다 사회생활이 있어 최소 3일 전에는 말씀 주셔야 참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많이 요청도 없으셨고, 중요한 일정이 없어 취소 후 참석했지만, 앞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ㅠ"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요청이 없으시다;;


난 3일 전에만 요청 주시면 뭐든 가능한데,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하셨으려나~ 남편은 자기도 그렇게 당일 요청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자기가 말하면 듣질 않던 것이 나로 인해 바뀌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난 뭔지 모르게 맘 한편이 찝찝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알 수 없는 시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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