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ENTJ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닌데, ENTJ로 사회생활 첫 발을 디딘 나는 직장 생활 거의 1년이 다 되어갈 때까지도 여전히... 사회생활 쪼렙이었다.
이것은 ENTJ 때문만은 아니고, 내가 살아온 환경, 내 성격, 내 경험 등 모든 것들의 복합적인 결과겠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ENTJ의 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미워하던 직장 상사가 6개월 만에 떠나고, 이제 한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한 부서의 팀장님이 떠나자 팀 내 과장님이 팀장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또 하나의 상사가 생겼으니 바로 대표님이었다.
당시 대표님은 다양한 사안에 대해서 직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을 즐겨하셨는데, 거기에서 나의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ENTJ인 나의 두 번째 과오 : 여전히 눈치가 없고, 지나치게 솔직하다]
대표님의 질문은 단순했다. 디자인 시안을 가져오셔서 몇몇 직원들을 불러 모아 "A 안이 좋아, B 안이 좋아?" 혹은 제품 네이밍을 가져오셔서 "어떤 네이밍이 나은 거 같아?"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나는 이 질문을 돌이켜보면, ENTJ, 특히 사회쪼렙인 ENTJ에게는 해서는 안 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ENTJ의 특성 때문이다.
물론, 사회성이 많이 발달된 개념 있는 ENTJ라면 잘 넘어갈 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나는 당시 대표님이 정말 직원들 개개인의 의견이 궁금해서 묻는다 생각했고, 또 나는 진심으로 내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고객을 타깃층으로 하느냐에 따라 저는 다른 시안을 고를 것 같은데, 홈쇼핑과 같이 4,50대 타깃이라면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색감이 뚜렷해서 방송에서 돋보일 수 있는 B 안이 좋을 것 같고요, 반대로 1,20대 타깃 제품이라면 세련된 A 안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홈쇼핑 고객 타깃이라면, B 안이 좋습니다"
어두워지는 대표님의 얼굴... 초점을 잃은 동료들의 눈빛.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때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대표님은 분명 본인은 홈쇼핑 고객 타깃으로 A 안이 좋은 것 같다고 했고,
모든 동료들은 A 안이 좋다고 골랐는데 나 혼자 반대로 말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매 질문마다 대표님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해도, 대학원 졸업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 회사에 들어온 내게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해줄 동기가 없었고, 그렇게 매번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의견을 말했던 난, 자연스럽게 대표님 눈밖에 났다.
이것도 나중에 듣게 됐는데, 대표님이 내 직속 상사를 불러 날 교육 좀 시키라고 했단다. 휴...
어느 순간부터 눈치 ZERO인 나도 대표님이 날 점점 멀리하고, 동료들이 날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흘렀을까.
상황이 반전된 것은 유통 채널 MD들이 모두 내가 고른 네이밍, 내가 고른 시안을 맘에 들어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내가 말했던 모든 의견들이 점차 맞아떨어지면서, 대표님은 급격히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난 특진으로 연차도 차지 않은 채 대리로 전격 승진, 그 해 최우수 사원으로 일본 연수까지 가게 되었다.
난 단순히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대표님의 눈치를 볼 때 나는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대표님은 나만이 진정으로 회사를 생각해 본인의 사회생활이 힘겨워질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소신 있게 의견을 밝혔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뭐 대표님의 착각이었지만, 어쨌든. ENTJ 만세!
어느 정도 연차가 찬 지금에 이르러서는 "A 안이야, B 안이야?"라는 질문이 ENTJ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 되었다. 의견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거처럼 아무것도 모를 때처럼 솔직하게만 답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 내가 솔직하게 의견을 말했을 때 그 의견대로 진행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 대표님은 어떤 성향이지? 직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성향인가, 아닌가
- 내가 이 대답을 했을 때 다른 동료들에 미치는 영향은?
- 내가 지금 이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적, 업무적 여력이 되나?
- 대표님은 어떤 것을 지지할까
- 현재 회사 입장에서 어떤 것이 나은 방향인가
- 임원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수많은 생각 속에 나는 때로는 입을 다물고,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며 사회생활을 영위 중이다. 가끔은 아무것도 몰랐던 ENTJ 사회 초년생이던 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