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Vetter lett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래 Apr 02. 2023

베러레터 #07. 희망은 그런게 아니다

계속되는 불행이 희망을 멈추게 할 이유가 되지 못하는 이유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희망은 21세기가 이런 현실 외에(여러 사회운동과 영웅적 인물, 그리고 지금 이런 현실에 대처하는 의식의 변화 등을 포함한) 다른 어떤 것들을 불러왔는지 기억함으로써, 그 현실을 직면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것이다. 




희망이 무엇이 아닌지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희망은 모든 것이 과거에도 좋았고 현재에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다. 

-

내가 관심을 갖는 희망은 구체적 가능성과 결합된 넓은 전망, 우리에게 행동하라고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전망이다. 그건 '모든게 나빠지고 있어'라는 식의 서사에 맞서는 것일 수 있지만, '모든게 잘 돼가고 있어'라는 식의 화창한 서사도 아니다.

-

불가리아 작가 마리아 포포바에 따르면 "희망이 빠진 비판적 사유는 냉소지만, 비판적 사유가 빠진 희망은 치기다." 




희망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전제, 불확실성의 광막함 속에 행동할 공간이 펼쳐진다는 전제 위에 자리잡는다. 불확실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자신이 -나 혼자, 또는 수십, 수백만의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희망은 알지 못하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포용이며,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모두의 확신에 대한 대안이다. 낙관론자는 우리의 개입 없이도 모든 게 잘 되리라 생각하고, 비관론자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므로 양쪽 다 행동하지 않아도 될 구실을 얻는다. 희망은 우리가 하는 일이 (언제 어떻게, 누구와 무엇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해도)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희망하는 건 도박과도 같다. 그건 미래에, 당신의 열망에, 열린 마음과 불확실성이 음울함과 안정보다 나을 가능성에 거는 것이다. 희망하는 건 위험하지만, 두려움의 반대다. 산다는 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에. 




콧 피츠제럴드는 "일급 지능을 갖고 있는지 시험하는 방법은 상반된 두 생각을 동시에 마음에 품으면서도 제구실을 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라는 멋진 말을 했다. -중략- 피츠제럴드의 잊힌 다음 문장은 이렇다. "예컨대 우린 상황이 희망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황을 바꾸려는 단호한 결심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희망은 투시력 - 이 세계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는 힘 - 과 어쩌면 불가피하지도 불변적이지도 않은 이런 상황 너머 무엇이 가능한가를 내다보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중략- 모든 것이 예외없이 곧장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건 대안적 전망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잘 돼가고 있다"는 주류의 견해를 뒤집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희망은 문이 아니라 어느 지점엔가 문이 있으리라는 감각, 길을 발견하거나 그 길을 따라가보기 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어딘가 있으리라는 감각이다. 





3월의 베러레터는 이달 재미있게 읽고 힘을 많이 얻은 리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에서 밑줄 쳐놓은 희망에 관한 문장들을 나누고 싶어 가져왔어요. 여러분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우리의 삶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어려움들이 나를 지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정말 힘든 건 상황이 이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을 때, 그럴 때인 것 같아요. 


저도 꽤 오랫동안 긴 무기력을 앓아왔는데요. 열심히 베러테이블이나 다른 코어프로젝트들을 운영하고 저의 루틴을 채우고 일에서 성취를 얻는 것으로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올해 들어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멈추지 않고 해야할 이유를 찾는 것에 저도 모르게 힘을 쏟고 있어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하나는 무기력에도 바닥이 있는지, 제 스스로의 힘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온게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렇게 지내면 안되겠다 하는 마음이요. 그리고 두번째는 바로 이 책입니다. 


<어둠 속의 희망>은 2003~2004년에 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에요. 벌써 20년이 된 옛날 책이고 사실 그때에 비해 지금 우리의 세상과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안좋은 상황이 되어버렸죠. 사실 이렇게 되리라고 20년 전의 사람들이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요. 


리베카 솔닛은 사람들이 점점 비관과 무기력에 빠지는 것을 보고 어떤 힘을 북돋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희망을 곱씹어보며 나는 희망을 내가 먼저 나서서 철벽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희망이 뭔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그걸 가지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면서 마치 동요에서 노래하는 세상같은 걸로 폄하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저는 평소에 약간 냉소적이라 지인들에게 부정적이란 말을 많이 받아왔답니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버렸고, ㅡ게 싫으면서도 냉소적인 저의 태도를 고치고 싶지 않았어요. 작년 어느날은 상담선생님에게 '제가 좀 부정적인 편이죠?' 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초래님은 남들보다 긍정적인 면도 있고, 남들보다 부정적인 면도 있는데 그게 주시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좀 극단적으로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어요.' 라고 말씀해주시더라구요.  


그러자 머릿속에 불이 켜지더라구요. "나는 부정적이지 않아! 나는 좀 극단적일 뿐이야. 긍정적이어도 되고, 부정적이어도 돼. 너무 극단적이지만 않으면".  근데 이 책을 읽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을 만났잖아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막걸리야하는 이 구절이 냉소적이면서도 긍정적이고 싶었던 제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준 것 같더라구요. 


제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것들은 돕기도 하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지원하려고 해요. 하지만 또 더 높은 차원에서 전반적인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레터를 이렇게 꾸려보게 되었답니다. 각자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지만, 상황이 안좋다고 해서 그게 희망적이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잖아요. 나름대로의 희망을 심어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러레터 #06. 작정하고 요리 얘기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