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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Dec 05. 2022

베러레터 #06. 작정하고 요리 얘기하는 사람

잘 먹고 잘 살자고 이야기하다 요리책 에디터 된 사연


안녕하세요, 베러테이블의 토토입니다.


드디어 겨울이네요. 11월 말이 되어가도록 날씨가 좀처럼 추워지지 않아서 내심 심란했어요. 겨울에 취약한 편이지만 그래도 계절은 계절다워야 하니까요. 차가운 공기 탓에 코 끝이 시리고, 한껏 매서워진 바람에 어깨를 움츠린 채지만 집으로 돌아와 포근한 잠옷을 입고 따뜻한 차를 우렸어요. 추위만큼이나 온기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겨울이네요. 


지독한 여름러버였던 저는 겨울을 무턱대고 싫다고 얘기하곤 했는데요. 요즘은 계절마다의 고유한 행복들을 부러 찾아보려 하고 있어요. 보다 포용적인 태도로, 삶의 많은 것들을 긍정하고 발견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 요즘의 마음가짐이거든요. 쓰고 보니 스스로에게 조금 놀랍네요.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 지 3주째 거든요.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직장인데요. 적응하랴 일 배우랴 바쁜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평온하고, 삶의 소소한 기쁨들에 무감하지 않은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져요. 


많은 사람들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센스 있는 신입’이나 ‘일잘러’가 되기 위해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하는지, 혹시나 나의 일이 ‘물경력’은 아닌지 체크하며 더욱더 탁월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저 역시도 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의 커리어와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보다 신기루 같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던 시간이 꽤 길었거든요. 그래서 였을까요. 대체로 조급했고, 부족함이 많은 지금의 나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에 다닌 두 번째 직장에서 보람이나 성취를 느끼기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내내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바랐어요.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보내는 매일매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기가 아예 무의미한 시기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처음부터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너무 좋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식일 수도 있겠지만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는 순간들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베러테이블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겠네요. 이전 레터에서 초래님께서 '코어 프로젝트'로서 베러테이블을 다시 소개해주셨죠. 업무적 성취를 느끼지 못했던 기간에 베러테이블의 운영자로 합류하고, 개인적으로 비건위크를 실천하던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됐어요. 커뮤니티의 성취와 이야기를 모아 콘텐츠로 만들고, 멤버들을 독려하는 경험도 물론 뜻깊었지만 궁극적으로 베러테이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비거니즘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했죠. 어떤 방식의 비거니즘이 필요한지, 나에게 비거니즘은 무엇인지, 왜 사람들을 동참하게 하고 싶은지… 일상에서 베러테이블을, 비거니즘을 고민하는 시간이 늘고 회사와 베러테이블을 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 해지더라고요. 


잘 먹고 잘 사는 법. 나와 다른 존재들 사이의 연결감을 인식하고, 나와 세계를 돌보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초래님과 이야기하며 그 시작이 어쩌면 요리가 될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베러테이블에서는 직접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는, 소비가 아닌 생산의 방식으로서의 비거니즘을 이야기해보고 싶어 졌고요. 단순히 매 끼니를 해결하는 게 아닌, 삶을 돌보는 방식으로서의 요리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베러테이블을 부르고 있던 때였지만 이때부터 이것을 사이드가 아닌 삶의 중심으로 가져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코어 프로젝트'라는 표현을 하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죠.  


나의 코어를 깨닫고 나니, 오히려 많은 게 선명해지더라고요. 더 이상 내가 '일잘러'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 내 경력이 '물경력'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삶의 코어를 튼튼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경험이라면 무엇이든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요리책 출판사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먹는 것에 진심이고, 지금껏 먹는 이야기를 실컷 해왔으니… 음식과 요리로 삶을 돌보자는 콘텐츠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고 싶으니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운이 좋게 합격을 했고, 지금 딱 출근 3주 차네요. 


첫 출근을 하던 날. 회사 웹하드를 구경하다가 1,000개가 넘는 파일이 있는 폴더를 발견했어요. 들어가 보니 요리책에 들어가는 온갖 식재료들의 누끼(배경이 투명하게 처리된 파일)파일들이었습니다. 하나의 식재료가 여러 각도로 찍혀 있기도 했어요. 정면의 루꼴라, 측면의 루꼴라, 조금 흐트러진 루꼴라… 무한히 계속될 것 같은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비로소 내가 어떤 회사에 들어온 것인지 실감이 났습니다.  


어떤 날은 회사의 책들을 살펴보다 단호박을 삶을 때 뒤집어 삶아야 무르지 않는다는 설명을 읽었어요. '단호박은 껍질 부분이 위로 가게 뒤집어 삶는다…' 그 문장을 눈으로 여러 번 곱씹는다보니 슬며시 웃음이 났어요. ‘그러니까 내가 돈을 받고… 이런 걸 배울 수 있다는 거지?’하고요.  


물론 여전히 실수할 때도 있고, '일하는 나'에 대한 고민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에요. 적응한다는 핑계로 11월 비건위크는 우당탕 실패도 여러 번 했고요. 하지만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더 이상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게 됐어요. 지금이 완벽한 상태라고는 말 못 하지만, 그저 지금을 잘 지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파심에 밝혀두자면, 꼭 삶의 코어 근육을 '사이드 프로젝트' 혹은 '원하는 일'의 방식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럴 수도 없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라는 것은 거의 신기루 같은 것이고… 그런 신기루에 사로잡혀 과거의 저처럼 지금의 나를 견디기 어렵다면, 삶의 많은 것들에 무감해지는 스스로가 못마땅하다면 내 삶의 코어가 뭘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무엇이 되었든, 여러분의 삶의 코어가 튼튼해지길 바라며- 오늘 한 끼는 요리하는 시간 보내세요 :)


앞으로 작정하고 요리 얘기할 토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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