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배재하고 목적 중심으로 요청하기
요즘 개발자 1명이라 거의 1대 1로 일을 하고 있다. 오픈까지 이제 거의 10일 남았기 때문에 맨날 회사 메신저 하면서 하나씩 테스트하고 점검하는 중이다.
거의 마무리하는 단계라서 로직을 바꿔달라고 요청하기 뭔가 애매하다. 미안함도 있고, 여기서 또 바꾸면 다시 테스트를 해야 하니까 나 스스로도 그건 좀 지양하게 되고.
그 와중에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문제들은 계속 발견되었다. 그래서 팀장님한테 공유를 드렸다. 내 딴엔 이 문제는 그냥 품고 가야 하는 리스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팀장님 생각은 달랐다.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로 보셨다. 오픈 일정을 미뤄서라도 해결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논의하기 위해 개발자, 나, 팀장님 3명이서 모여서 회의를 했다.팀장님은 '이러이러하게 해결하는 거 어떻냐'라고 아이디어만 던져주고, 개발자에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순간, 나와 팀장님의 업무력(?)이 확 느껴졌다. 팀장님은 "개발자를 잘 다루는 기획자"였고, 나는 아니었다는 게 체감이 되었다.
여기서 팀장님의 모습을 보고 내 스스로 돌아봤던 두 가지 포인트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감정보단 목적 중심으로 말을 했다는 거다. 나와 개발자는 거의 몇 주 동안 붙어서 일을 했기 때문에, 감정이 너무 연결되어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은연중에 내가 개발자에게 무언가 부탁하기가 죄송스러웠다. 왠지 모르겠지만 당당히 해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일을 하려면 그런 감정은 접어두고 일단 플젝의 목적을 향해 달려야 한다. 그러니 엄연히 개발자에게 바꿔달라고 "부탁"이 아니라 "요청"을 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 역할을 잘 못 했던 거 같다.
두 번째는 문제 해결을 제시한 아이디어에 놀랐다.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들이었다. 내가 했던 것은,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까지였고, 단순히 '이 문제 해결해줘!'를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나름의 방법들을 제시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역으로 제안했다. 개발자를 잘 다루는 기획자는, 그냥 문제 지적만 하는게 아니라 같이 아이디어도 떠올려서 그렇게 개발하도록 시키는 기획자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기획자로서 문제 해결의 아이디어를 잘 제시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번 플젝하면서 개발 로직에 대한 이해도가 쌓이니까 제3자의 눈으로 잘 못 봤던 것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시야가 좀 좁아져 있어서,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까지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거 같다.
팀장님이 아이디어를 잘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은, 제 3자의 눈으로 봤기 때문도 있겠지만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기반이었기 때문인 거 같다. 검색 기획에서 일을 수년간 해오시니 이런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해결해야 겠다라는 게 보인게 아닐까 싶다.
사람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과 개발자한테 일을 시키는 것은 나에게 부족한 단점이다. 아무렇지 않게 일을 진행시키는 팀장님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바뀔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 이걸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뭘까 되돌아보면 당당히 요청하는 그런 '성격(?)‘과 연차에 따라 쌓이는 '연륜', 업계와 도메인에 대한 '이해도'가 큰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 조건들을 갖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