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L을 잘 다루면, 맡게 되는 데이터 운영 업무들
나는 기획자지만 SQL을 잘 다룬다. 그러한 까닭에 팀에서 데이터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맡고 있는 업무로는 로그 정의, 로그 QA, 태블로 대시보드 생성 & 관리, 지표 모니터링 & 매주 리포팅, 팀 내/외부에서 오는 데이터 추출 요청 대응, 팀에 이상지표가 나오면 원인 데이터 분석가 있다.
문과생이면서 비개발자 직무인데 데이터 업무를 겸하면 겪게 되는 고충과 이점을 써본다.
우선 고충 3가지는 다음과 같다.
내 업무를 위해서 데이터를 뽑는 것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는 프로덕트도 아닌데, 담당자가 데이터를 뽑을 줄 몰라서 내가 대신 뽑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아니, 내 프로덕트에 관한 데이터 추출보다 훨씬 많다.
단순히 팀에 데이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나뿐이라서 데이터를 뽑을 때면 왠지 데이터 추출 자판기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다른 분이 맡고 있는 프로덕트의 데이터 추출이 나에게 '부탁'으로 요청 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내 몫'이 돼버릴 때 더 그런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전 회사인 이커머스에 있었을 당시 내 담당도 아닌 필터 데이터만 거의 2주 동안 뽑은 적도 있었다. 이커머스의 필터 보면 정말 정말 복잡한 기능이 많아서 여기 데이터 보려면 진짜 왕 고생해야 한다. 상위 리더에 보고해야 해서 3차, 4차 추가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계속 수정이 이어지니까 쿼리가 너무 길어져서 정말 토가 나올 정도였다.
고생해서 뽑아봤자, 분석한 결과로 칭찬받는 것은 내 몫도 아니다. 리더들은 데이터를 누가 뽑는지 절대 전혀 관심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데이터를 '잘' 뽑는 것이란 없다. 그냥 로그를 심어놨으면 뽑을 수 있는 거고, 없으면 못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 역할은 데이터 '추출'까지고, 그 데이터를 보고 인사이트를 얻어 결과를 보고하는 것은 남의 몫이다. 이럴 때는 '남 좋으라고 SQL을 배운 거 아닌데'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듯 대시보드를 만들어본 비개발자 기획자 팀마다 한 명씩 있을 것이다. 문제는 뭐냐면 만들고 나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시보드를 한번 만들고 나면, 그 대시보드로 계속 지표 트래킹 하는 것도 본인 몫이 돼버린다. 나만 이걸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리포팅해야 한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지표도 아니고 팀 전체의 지표인데도 말이다. 이런 일은 보통 해봤자 티는 잘 안 나는데, 정리하는데 시간 소요는 굉장히 많이 든다.
그리고 이상한 지표가 찍힐 때 사람들은 대시보드를 만든 나에게 질문한다. 그러면 나는 이상 지표가 왜 찍혔는지 분석을 해내야 한다. 대부분 자연스러운 증가 혹은 하락일 때가 많아서 딱히 원인도 없을 때가 많다. 그러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 채 그저 시간만 써버린 게 된다.
데이터 운영 업무는 굉장히 다양하다. 로그를 정의하고, 로그를 심었으면 테스트도 해봐야 하고, 로그 오류가 있으면 결과를 비교해서 원인도 찾아야 한다. 타 팀에서 데이터 관리 관련 문의도 온다. 생각보다 자잘한 운영 업무가 많다.
그런데 데이터 업무가 대부분 그렇듯, 해봤자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이런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을 팀의 그 누구도 모를 수도 있다. 혼자서 묵묵히 운영 업무를 하고 있으면, 왜 아무도 몰라주는 이런 고생을 혼자 해야 되는지 억울하고 현타가 온다.
물론 단점만 있진 않다. 분명히 장점도 많다. 데이터를 잘 다루는 기획자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데이터 관련된 업무를 도맡으면 아무래도 데이터를 더 자주 접하게 된다. 숫자에 익숙해지고 예민해지면 데이터에 대한 감각도 좋아진다. 그러면서 조금씩 분석 능력이 향상되는 거 같다.
하지만 '데이터를 잘 다루는 것'과 '분석력'은 분명히 다르다. 분석력이 좋은 리더를 종종 봤지만, 그분들 중에서 실제 데이터를 직접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해 본 리더들 중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좋은 의사결정은 가능하지만, 나처럼 데이터를 잘 다루진 못했다.
이런 걸 봤을 때 데이터를 꼭 잘 다뤄야만 분석을 잘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요즘엔 데이터를 잘 다루는 능력이 과연 분석력을 향상시켜주는지 의심된다.
다른 사람들은 데이터가 필요할 때 나처럼 데이터를 잘 다루는 사람한테 부탁해야 한다. 물론 부탁하면 그만이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원하는 값도 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이 직접 뽑아서 결과를 확인하면 된다. 제때 내가 원하는 값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된다. 기획을 하다 보면 A와 B 중에 어떤 게 더 나은가 결정해야 할 때가 자주 온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근거는 데이터이기 때문에 기획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모든 업무가 그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그렇게 대단한 고충도 아니긴 하다. 성장하려면 성장통응 견뎌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