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ms Nov 21. 2017

내 인생,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재료 확보의 첫걸음이다

남의 떡 그만 쳐다보고, 내 떡 간수에 집중하자.

레시피가 먼저냐 재료가 먼저냐


중요한 손님들이 느닷없이 집에 들이닥쳤다.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장을 볼 시간도 없다. 오로지 집에 있는 재료로 손님들을 대접해야 한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시작한다. 저녁 시간은 지났겠다 가볍게 한 잔 걸치기 좋은 소시지 야채볶음과 베이컨 떡말이로 메뉴를 정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냉장고에 소시지, 베이컨은커녕 떡 조차도 없었다. 애초부터 큰 기대도 없었지만, 기다림에 지친 손님들은 그 사이 모두 떠나 버렸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는 자기가 가진 재료는 생각지 않은 채로 무작정 먹고 싶고, 맛있는 레시피만 찾아다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다. 현실과 타협하며 값싸고, 저렴한 요리만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집 냉장고 안에 소시지, 베이컨이 없었다는 걸 탓할 게 아니라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무심코 열어 본 냉장고에 생각지 못했던 소고기나 전복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레시피가 먼저가 아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먼저다.



남의 냉장고에서 재료를 찾는 취준생, 그리고 그 결과


취업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진 재료, 무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원자들은 바쁜 걸음으로 눈에 보이는 정보들을 좇느라 바쁘다. 회사에서 실시하는 채용설명회를 살뜰히 챙기고,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핵심역량, 인재상, 경영철학, 그리고 비전까지 철저하게 조사한다. 그리고는 자소서를 쓰려고 자리에 똭! 하고 앉아 보지만 바로 그 순간. 멘붕이 온다. 가고 싶은 회사, 회사의 주요 사업, 직무 설명까지 주야장천 알아보고 조사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내용들을 풀어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나의 인생 또는 나의 과거(=우리 집 냉장고)가 어떻게 채워졌으며, 나는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거쳐 본 적도 없이 남의 레시피만 죽어라 후벼 팠기 때문이다. 주변의 선후배들로부터 요새 취업이 정말 힘들다는 말을 숱하게 들으면서, 얼른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조급함만 늘어가고, 자연스레 나의 내면과 인생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로, 눈 앞에 보이는 정보를 좇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 이렇다 할만한 개선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기업 별 홈페이지에 있는 핵심가치와 인재상, 채용페이지에 소개되어있는 직무 별 필수 역량에 억지로 짜 맞춰 작성되는 자소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기하게도, 영업 지원자들이 강조하는 역량도 책임감, 적극성,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지원자들이 강조하는 역량도 분석력과 커뮤니케이션, 인사팀 지원자가 강조하는 역량도 적극성과 커뮤니케이션, 하물며 회계, 재무, 기획, 전략, 기술, 설계 등등 모든 직무에 적극성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책임감이 나타난다. 무슨 마법의 치트키도 아니고 온갖 지원자가 동일한 역량을 붙여 넣고 있는 현실이다.


'적극적인 자세와 태도로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을 이해고자 하는 마음과 배려심을 통해 협업을 이끌어 최고의 성과를 달성한다'
'우리 일은 나의 일이라는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매사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 나선다'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만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신뢰를 얻었다'


절대다수의 지원자들이 자소서에 혹은 면접에서 사용했던 표현이나 문구와 유사한 형태가 바로 위의 박스에 담겨 있다.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표현을 똑같이 사용해봐야 설득력도, 차별성도, 신뢰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저 기껏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허무하게 날리는 상황만 반복될 뿐이다. 더 이상 정답 아닌 정답을 좇느라 시간을, 그리고 더 중요한 기회를 허비하지 말자. 옆의 지원자들과 다를 바 없이 개성 없고 특징 없는 지원자로 폄하되고 저평가받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피나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냉장고부터 들여다보는 게 먼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공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내가 가진 재료로 상대방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취업까지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면, 인턴, 자격증, 대외활동, 공모전 등을 통해 관심 분야에 대한 스펙을 키울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취준생들은 다르다. 지금까지 준비된 재료로 전투에서 싸워 이길 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때문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인생, 경험, 스펙, 에피소드 모든 것들을 차례대로 확인하고, 각각이 갖고 있는 고유한 맛과 의미를 주관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더하는 과정을 거치는 일이다.


내가 가진 재료와 나만의 레시피를 축적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간략한 2가지 요령을 정리해본다.


1) 자신의 인생을 적나라하게 펼쳐 구석구석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 나는 어떠했는지, 어떤 성격이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리고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까지 꼼꼼히 살펴보면서 정리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일체의 제약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레짐작 이런 건 너무 사소하고, 별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어렸을 적, 내 꿈이 뭐였는지, 크면서 그 꿈이 어떻게 바뀌어 왔고, 좋아하는 과목은 뭐였고, 왜 좋아했는지 등등 사소한 것들까지 모조리 생각해 볼수록 의미가 있다. 취업이라는 틀을 벗어나 내 과거 일대기를 다시 마주하고 돌아본다는 생각으로 모조리 정리해야 한다. (실제로 다들 이 경험은 별거 아니에요.라고 했던 경험들을 메인 테마로 활용한 경우가 허다하다.


2) 분절적 과정이 아닌 하나의 덩어리로 상황과 생각을 복기해야 한다.


각각의 경험이나 상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절대 STAR(Situation, Task, Action, Result) 기법 또는 엑셀이나 기타 양식을 활용해서 행동/이유/결과/교훈 별로 열을 추가한 뒤 하나의 경험을 분절적으로 쪼갠 형식으로 작성해서는 안 된다. 경험이나 에피소드 하나를 기준으로 보자면 그 시작점부터 종료되는 지점까지의 모든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복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과 기분이나 느낌들을 최대한 적나라게 드러내는 것이 포인트이다. 개인적으로는 '인생기술서'라고 부르는 양식을 통해 이를 정리할 것을 권하는데, 실제로 보면 자소서에 억지로 짜 맞춰 작성한 내용들보다 주제, 디테일, 의미 등 모든 측면에서 깊이와 자연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대로 옮기면 되는데 자소서라는 틀이 주는 압박감 때문인지 옮기는 과정에서 변질된다.)



자연스럽게 내 어투와 톤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캐릭터를 찾아보자.
강박에 시달리며 취업이라는 틀에 끌려다니는 취준생들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목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지원자들에게 인생기술서 작성해 볼 것을 권하게 되면, 열에 다섯은 '작성 자체를 목적'에 두고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든 경험을 취업의 소재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에피소드, 경험 하나하나의 면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또다시 열정, 소통, 적극, 책임, 도전과 같은 어색한 키워드들로 뒤덮인 각색된 기억만이 기술서에 복기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여기서 만큼은 나만의 톤과 매너로 미주알고주알 별에 별 얘기까지 다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당시의 행동과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 된다. '열정과 도전 정신 때문에 했다'가 아니라 '지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했다'가 될 수 있고, '상대방과의 협업과 소통의 중요함'을 느낀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적극적으로 생각을 어필하고, 때로는 양보를 할 줄도 알아야 함'을 느꼈다고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강박에 시달릴수록 더더욱 써지지 않겠지만 정신을 놓을수록 오히려 편하게 써질 것이다.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이해함으로써 나만의 철학을 구축하는 취준생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가치관과 생각을 끄집어내는 연습을 해보자. 나의 약점을 두려워하고, 취업이 될까 안될까에 불안하고, 인사담당자의 눈치를 보며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말자. 내 인생의 주인은 나고, 자신 있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주체도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지금까지 외면했던 나만의 매력, 장점, 강점들을 생각해보고, 특정 이슈, 정보, 상황 속에서도 답을 찾지 말고 내 기준에서 답을 내리고 견해를 제시하는 연습을 지금부터 이어나가자.

'나는 100번 거절당해도 101번 찾아갈 수 있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숱한 실패를 경험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깊이 있게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나는 머리 속의 고민이 생기면 직접 몸으로 부딪혀 궁금증을 해결하는 행동지향적인 사람이다'
'협업이란 무조건적인 설득이 아니라 상대 업무에 대한 공부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접점 찾기이다'


어서 빨리 자소서 소재 장착을 위해 한 시 바삐 발길을 재촉해야 된다는 강박과 부담은 덜어두자. 그 강박과 부담이 바로 지금까지 여러분들의 취업의 발길을 잡고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던 만큼 차분하게 재료들을 찾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견해와 기준들을 하나씩 세워 나가기를 바란다.



The sooner, the better


누가 하루라도 먼저 시작하느냐 싸움이다. 다음에 해야겠다며 시작을 미루는 사이, 소중하고 값진 취업의 기회 하나, 하나는 허망하게 사라져 간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시작도 못한 채 한 번의 공채를 마치게 된다면, 그다음 맞이하는 공채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시작할 것이었다면 진작에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취업은 누가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고, 올바른 방법으로 제대로 준비하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각개전투다. 빠를수록 좋다. 하루빨리 정신 차리고 스스로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노파심에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나만의 재료 이해를 위한 과정을 한 시 바삐 시작하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재료는 못 쓸 것 같은데?', '이런 내용까지 써야 되나?', '이 경험에서는 협동심과 적극성, 도전정신을 배웠다고 쓸까?' 등등 취업이라는 틀에 얽매인 생각은 최대한 지양하고, 개소리도 좋고, 쉰소리, 헛소리도 좋으니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을 마음껏 뿜뿜해보길 바란다. 다음에 이어질 3화에서 잘못된 선입견이 소재 해석 및 전개 방식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떤 관점으로 소재를 해석하는지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지는 내용과 의미를 사례로 풀어볼 예정이다.



Ohm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