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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ms Nov 28. 2017

나만의 재료 찾기 & 멋대로 조리하기 (사례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재료를 찾고, 나만의 조리법을 연구하자


대부분 '자소서'하면, 어떤 소재를 쓰면 좋을 지에 대한 질문이 먼저 튀어나온다.  항목마다 나의 어떤 경험을 넣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를 전략적으로 고민해서 내가 가진 역량을 지원 회사의 인재상, 지원 직무의 필요 역량과 결부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취준생들은 두 가지 실수를 저지른다. 첫 번째는 본인에게 없는 경험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참을 고민한다는 점과 두 번째는 경험에 대한 자의적 해석 없이 인재상과 같은 정형화된 틀에 억지로 짜 맞춰 넣는 데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명량대첩,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1597년, 명량해협에서 이순신 장군은 조선을 침략하는 133척의 왜선에 맞서 12척의 병선으로 31척의 왜선을 불사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고 누가 보아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을 것이다. 왜선, 군사, 그리고 무기까지, 왜군은 존재만으로도 조선 해군을 압도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압도적인 열세에도 좌불안석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주어진 병력을 활용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만을 집요하게 고민했을 뿐이다.


하지만, 취준생들의 사고는 정반대로 흐른다. 자신의 상황을 탓한다. 배경을 탓한다. 스펙을 탓한다. '저는 어문 전공자이기 때문에 경영학과 학생들보다 불리합니다’, '저는 제대로 된 인턴 경험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지원직무와 연관된 경험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전투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싸워 보기도 전에 변하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불평하고 한탄하는 투정을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시작도 전에 결과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음은 명약관화다. 안 된다는 생각으로는 무슨 시도를 해도 잘 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세적 상황을 극복하고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이들이 있다. 대외활동/인턴/공모전 경험 없이 GPA B0, 토익 800점, 운동 동아리 1회라는 스펙만으로 LG하우시스에 합격한 건축학과 학생, 1년 6개월의 졸업 후 공백을 갖고 에뛰드에 최종합격한 비상경 어문 전공 여학우, 주요한 경험도 없이 아르바이트 경험 하나만 갖고 중견기업 기획 직무에 합격한 30세의 지원자도 있다. 모두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소재, 이야깃거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 있게 어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를 '어떻게'할 것이냐가 중요한 이유다. 앞선 글에서 자신만의 소재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사례를 중심으로 직접 발굴한 경험에 자의적 해석을 더해 차별화된 의미를 불어넣는 방법에 대해 더 얘기해 보고자 한다.



재료에 대한 재발견이 필요하다.


똑같이 브라질산 닭을 튀겨도 치킨집마다 맛이 다르다. 어떤 집은 쪽박이 날 때 어떤 집은 대박을 터뜨린다. 자소서에서도 정말 좋은 에피소드를 갖고 있음에도 인사담당자의 기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소서를 경우가 있는가 하면, 평범한 소재를 갖고 인사담당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내용을 작성해내는 경우도 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조리법에 따라서 하찮아 보였던 경험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보자.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단순한 아르바이트라 쓸 수 없는 소재예요


나를 찾아왔던 러시아어문학과 여학우의 경우 비상경 학과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학점 부족, 인턴, 공모전 등의 경험 부재 등을 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자소서에 작성할 만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산파술과 흡사한 꼬리 질문을 통해 지원자와 대화를 나누며, 설계사의 DC(Document Controller) 아르바이트, 의류 매장, H카드 카드 신청서 접수 아르바이트 등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각 경험들의 세부적인 상황과 내용들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역시나, 깊이 있게 하나하나 물어볼라 치면 질문하기 무섭게 '그 경험들은 그냥 아르바이트일 뿐이고, 특별한 경험이 아니어서 자소서에는 쓸 수 없는 소재예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거의 전부가 다 똑같은 반응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재료의 가치를 별로라고 속단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어쨌든. 해당 지원자에게 각 경험 별로 무슨 일을 맡았던 것인지, 어떻게 업무를 수행했는지, 힘들었던 부분은 없는지, 제일 열심히 했던 순간은 언제인지 등등에 대해서 캐물었고, 실제로 듣어 보니 단순한 아르바이트라고 했던 설계사 DC아르바이트는, 설계사,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주고받는 수천 건 이상의 문서들을 카테고리에 맞게 저장 및 관리하고, 분실ㆍ누락된 문건들을 파악하여 직접 업체와 접촉하며 살뜰히 챙겨야 하는 업무였다.


나는 "DC라는 Position이 설계사에는 별도로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이고, 설계사,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에 관계된 내부자들 사이에서 전달되는 모든 문서들을 일관성 있게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이 아니냐"라고 물었고, 지원자는 "맞다"라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DC경험은 꼼꼼하게 문건들의 저장, 관리 체계를 만들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누락 또는 일정에 맞게 도착하지 않은 문건들을 챙겼던 경험으로 꼼꼼함과 책임감을 어필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H카드사 아르바이트는 고객의 소비 성향과 직종에 따라 각기 다른 카드 혜택을 설명하고 제안했던 경험으로 다듬어 지원자가 갖고 있는 영업력이나 설득스킬을 강조해 볼 것을 권했다.


현대차 계열사 경영지원 직무에 최종합격한 비상경 여학우의 실제 자소서 작성 사례 일부를 아래 붙여본다. 결국 쓸만한 소재가 아니라며 사장될 뻔했던 설계사 DC 경험은 취업하는 과정에서 Main 소재로 매번 활용됐다.

Q. 귀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상징 단어와 그 이유는?

[하나로 이어주는 교량과 같은 사람]
저는 서로 다른 공간을 연결해주는 ‘교량’ 같은 사람입니다. 다리는 각기 다른 공간을 하나로 이어 주어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러한 이어주는 연결 역할에 능숙합니다. 5개월간 현대엔지니어링에서 Document Controller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대형 프로젝트로 수많은 벤더들과 방대한 양의 도면을 주고받는 중간 담당자로서 임무가 막중했습니다. 복잡하고 많은 데이터들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현장의 공사가 늦어지지 않기 위해 해외 벤더와 도면 진행 사항에 대해 끊임없이 교류해야 했습니다. 수시로 도면 수정사항과 확인에 대한 요청을 메일 혹은 직접 연락을 취했고, 문제가 생겨도 신속하게 파악하고 전달함으로써 신뢰받는 중간 다리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략)


공대생들의 수업 중 수행했던 흔한 과제를 소재로 활용한 자소서 사례도 함께 붙여본다. 이 소재 또한 해당 지원자가 쓸 수 없는 소재라며 손사래를 쳤던 에피소드다. 누구나 듣는 수업의 과제 이야기지만 어떤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지원자가 갖고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기 입으로 적극적으로 뭘 했다, 창의적으로 생각했다와 같은 구태의연하고 피상적인 표현들이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문제해결력이 느껴진다.)

Q. 귀하의 대학생활 중 탁월한 활동실적(교내외)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품질 직무]

ㅇㅇㅇㅇ 수업에서 잔액 표시 동전 저금통을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동전이 떨어지는 경사로 밑에 초음파 센서를 달았는데, 센서의 입력 범위가 좁아서 동전이 떨어지는 각도에 따라 인식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설계를 수정하여 경사로 위에 센서를 장착했습니다. 이번엔 센서의 간격에 따라 인식률이 달라졌습니다. 간격을 0.2cm씩 변경해가며 일일이 테스트를 했습니다. 발표 전날, 서른 번에 한 번 오류가 발생할 정도로 개선됐습니다.
어차피 시연은 한 번 뿐이니 여기서 그만할까 하는 유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30분의 1이라는 확률이 모든 것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여러 시도 끝에, 경사로 각도를 변경하여,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설계 점수 만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장인 정신을 신념으로, 정밀함을 규범으로 여기며 현대다이모스의 시트 품질팀에서 최고의 부품을 만드는 사원이 되겠습니다.


S-Oil/사무직 서류합격 자소서 중 일부를 아래 발췌한다. 작성된 내용 자체는 공모전에 참여해서 탈락한 사례이지만 준비 과정에서 만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접근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실패하고 망했던 경험이라고 해서 실패한 사례를 묻는 항목에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는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이 다른 어떤 경험보다 의미 있고,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이 값지다면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성공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자신이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주체 또한 자신이다.

Q. 귀하가 경험했던 가장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였고 결과가 어떠하였는지 작성해주세요. [사무직]

S-Oil 주유소 서비스 개선 제안 공모전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분석과 의미 도출을 위해 차종, 연령, 주유소 브랜드, 주유 금액, 서비스 만족도, 건의 사항 등 총 50개가량의 문항이 포함된 설문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주변 가족, 극소수의 지인들을 통해 모을 수 있는 표본은 10개 남짓이었습니다.
방법을 고민하던 중 실제 운전자들이 모이는 자동차 동호회, 카페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설문 요청 글을 올려서는 광고글로 오해받기 십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취지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주변에 요청할 곳이 없음을 호소하며, 문제가 된다면 스스로 글을 삭제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솔직한 고백과 요청 때문이었는지 한 분, 두 분 설문에 응해 주셨고, 총 20군데의 카페에 일일이 가입하고 글을 게시한 결과 1주일 간 200여 건의 표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선에는 진출할 수는 없었지만 막막했던 상황 속에서 도출된 유의미한 결과물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재료도 다르게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재료를 한 번 조리하는 것만으로는 끝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 더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재료라는 것은 단 하나의 요리를 위해서 사용되지 않는다. 내가 재료를 어떻게 조리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 범위나 폭넓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ㅇㅇ 알바 경험은 적극성과 책임감이야', 'ㅇㅇ인턴은 실무 경험과 이해야', 'ㅇㅇ교환학생은 글로벌 마이드와 문화적 포용력이지' 등과 같이 절대로 재료 사용의 범위와 용도를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 똑같은 재료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간략한 사례를 하나 덧붙인다.

[0원으로 모두를 가치롭게 만든다는 것]
벤처동아리 회장직을 맡았을 때 매년 열리는 축제에서 ‘돈 한 푼 없이 모두를 즐겁게 만들고, 돈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있었던 폭스바겐의 보물찾기 이벤트를 보며,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활용해 축제 때 보물찾기 행사를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중략)
[등고자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관철시킬 수 있는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조직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오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벤처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보물찾기' 프로젝트의 성공만을 생각하며 달린 나머지, 팀원들의 불만과 어려움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략)

보다시피 동일한 소재를 활용해서 작성했던 두 자소서 내용의 일부를 앞에 삽입했다. 동일하게 보물찾기라는 소재로 작성한 자소서이지만 주제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관점에서 소재를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에 따라 주제와 흐름이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절대로 하나의 소재를 한두 개의 특정 주제로 한정 지어 Ctrl+C, V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재료를 어떻게 조리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자소서 작성법 5원칙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과정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소재 하나하나를 가벼이 여기고 넘기지 말 것, 그리고 내 기준에서 재료를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현저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자.


결코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고민할 것인가, 얼마나 시간을 쏟을 것인가. 그게 바로 진심으로 깊이를 더하고자 노력한 지원자들과 미봉책으로 문제를 대충 막아놓고 빠른 길로 가는 데에만 집중하는 지원자들과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이제 재료 탓은 그만하고, 경쟁자들과 차이를 벌릴 수 있는 내 무기를 단련할 시간이다.



O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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