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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Oct 13. 2023

산책

평소보다 늦게 퇴근했던 어느 금요일 저녁, 선선한 공기와 낭만적으로 다가올 주말 약속에 한 껏 들뜬 퇴근길에 병원 지하의 응급실과 편의점 사이의 가로막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던 환자를 마주쳤다. 그의 왼쪽팔엔 인퓨전 펌프(정맥주입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로 튜브나 용액에 양압을 가해 용액이 일정한 속도로 정맥에 주입되도록 하는 장치, 주로 고위험 약물이나 주요한 약물 투입시에 과용량이 주입되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기계)로 주입되고 있는 수액과 또 다른 몇 개의 수액이 쓰리웨이(여러가지 수액을 한꺼번에 정맥라인에 연결할 시 필요함)를 감아 정맥라인을 타고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무척이나 저녁공기가 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걷는 것 조차 힘겨워 보이는 그의 천천한 걸음걸이를 지켜보느라 나는 초록 불 신호를 놓쳐버렸다. 나는 그의 옆 멀지않은 발치에서 같이 산책하는 모르는 누군가가 되어주고 싶었다. 아마도 울퉁불퉁한 회색빛의 아스팔트 위를 걷는 시간은 그가 하루에서 제일 기다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출퇴근길이 그에겐 아마 계절이 수놓아 열어 놓은 듯한 바깥공기와 거칠지 않게 불어오는 실바람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내일의 모레의 산책에도 부디 그가 천천한 걸음걸이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비록 답답한 병원살이를 하는 하루의 날이 계속되겠지만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조용히 이어지는 나날로 가득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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