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능 끝나고 살을 빼기 위해 헬스장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담임이 여름에 매일 아이스크림을 먹여대서 살이 엄청 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이상이 넘은 지금 입으면 약간 헐렁한 체육복 바지가 그 당시에는 스키니 진이 되어버렸을 정도였으므로 매우 심각했다. 보통은 수능을 11월에 보기에 바로 다음 날이나 11월 안에 등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12월에 등록했다. 그 이유는 발품을 팔아 여러 곳에 전화를 해보니 그 당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에서 수험생 할인이 없다고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이곳저곳 다니다가 결국 그 헬스장에 갔더니 들은 말.
수험생 할인을 11월까지 해주었는데 좀 더 일찍 오시지 그랬어요.
아니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말인가. 그 자리에서 바로 따졌다.
전화했을 때 젊은 여자 직원이 없다고 하셨는데요?
그 '젊은 여자 직원'은 데스크에서 나오더니 따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왜 있는 걸 없다고 말했겠어요?
아.. CCTV를 돌려볼 수도 없고 참으로 황당 그 자체였다. 분위기는 굉장히 험악해졌다. 이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한 마디 했다.
제가 관장인데요 수험생 할인가로 해드리고 운동복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관장의 중재에 상황은 마무리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수험생 할인가로 등록을 했다. 그전까지는 실내에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실내용 운동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동네 백화점에서 헬스장에 신을 실내용 운동화를 샀다. 그리고 다음 날 세면도구와 운동화를 챙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헬스장에 방문했다. 첫 방문이라 데스크에 처음 왔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회원 카드를 달라고 하더라. 카드를 줬더니 사물함 열쇠를 받았다. 그런데 어제 분명히 포함이라고 했던 운동복을 주지 않아서 운동복은 안 주는지 물어봤다.
어제 놓치셨는데 운동복은 결제하셔야 해요.
굉장히 어리둥절했지만 더 이상 싸우기 싫고 가격이 센 편도 아니므로 그냥 결제했다. 여기서 놓친 것이 구두로만 포함여부를 받고 서면으로 받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세상의 쓴맛을 한 번 맛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운동복은 포함이 안되어있었지만 PT 2회가 포함되어 있었다.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계속 찍혀있어서 하루는 받았더니 헬스장에서 온 전화였고 무료 PT 2회가 포함되어 있으니 언제가 괜찮냐는 것이었다. 운동 배우려고 신나서 갔고(심지어 인기가 제일 없는 평일 오후 3시에)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몸 상태를 보는 수준으로 아주 가벼운 운동 무엇인가를 했다(지금도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진짜 별거 안 한 듯). 그리고 2번째 PT가 끝났을 때 트레이너가 부모님의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순진한 나는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담당 트레이너는 PT ‘체험’이 끝나고 부모님께 PT를 하라고 설득전화를 했다. 지금도 PT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거액을 들여서 운동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부모님은 단호히 거절하셨고 PT 2회는 그렇게 몸 상태만 보고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러닝머신을 하면서 PT존에서 열심히 PT를 받는 내 또래 애들을 보았고 어떤 애는 나보다 더 어렸지만 PT를 받고 있었다. 오랜 기간 한 트레이너와 했는지 담당 트레이너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운동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나는 그 당시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은 수능을 갓 응시한 학생이었으므로 나중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