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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하 Feb 10. 2022

가끔 구차해져도,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야

살다 보면 때때로 구차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다. 주로 내가 '을'의 관계일 때 그런 일이 생기고야 만다. 내가 '을'일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 단연코 면접 자리.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하며 한 면접에서 있었던 일이다.


실무자들의 치열했던 1차 면접 이후, 그야말로 '인성 면접'에 가까운 임원들의 2차 면접이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이었고, 그런 곳에서 20년 넘게 회사를 다닌 사람들이니 꼰대가 아닐 리 만무했다. 그들은 이 전의 직장에서 내가 해낸 프로젝트의 성과나 구체적인 업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 자리에 앉아서야 겨우 내 이력서를 들춰봤을 테지. 어차피 실무진 면접을 거친 후였기 때문에 임원들의 면접은 으레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날 그들은 1차 면접 때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나의 이력 하나를 끈질기게도 물고 늘어졌다. 바로 나조차도 잊고 있던 내 학력의 '대학원 중퇴', 단 한 줄이었다.



정말로 공부가 재밌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고등학생 때도 그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해야 했던 공부가 대학에 가보니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교수님이 알려주지 않아도 나는 도서관에 가서 전공 서적이 있는 책장의 모든 칸에 있는 책을 살펴보는 학생이었다. 오지선다에서 답을 골라내는 공부가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질문을 던지는 공부가 나는 정말로 '재미' 있었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학점도 높은 편이었고, 학과 교수님들도 대학원 진학을 매우 추천해주셨다. 그런데 '공부가 재밌다'  얼마나 오산이었는지. 입학하자마자 공부는 재미로 하는  아니라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순간 공부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차원이 다른 문제란  알게 되었다. (라고 쓰고 '알아차렸다'라고 읽는다.)



막상 이걸 업으로 삼으려니 겁이 났다. 때마침 부모님의 은퇴와 여러 가지 가정 사정이 맞물려 벌이도 없이 지출해야 하는 고액의 학비도 큰 부담이었다. 방법을 찾아보자, 하며 휴학을 했지만 결국 답은 취직이었다. 그렇게 멀어진 길이었다.



벌써 5년도 더 시간이 흐른 일이었다. 첫 이직도 아니었고, 신입 급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직 면접 자리에서 학력이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족히 30년쯤은 한 회사에 몸 바쳐 일했을 것 같은 그들은 그 '대학원 중퇴' 한 줄로만 15분이 넘게 얘기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관두고, 직장을 자주 옮기는 건 좋지 않다며 면접 자리에서 나를 나무랐다.



그 순간 자존심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내 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 그들은 나의 침착함을 심사하는 것만 같았다. 속이 끓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저 사람들은 결국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1차 면접도 통과했는데, 여기서 내 감정을 드러내서 탈락하면 나만 손해지.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히며 침착하게 나는 맞장구를 쳤다.



나의 노력과 삶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것, 구차하지만 최선이었다. 백수 생활도 4개월째, 가장 원하던 기업은 아니었지만 원했던 안정적인 기업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는 말에 대답했다. 어떻게 하면 오래 회사에 다닐 수 있는지, 선배님들처럼 오래 계시는 분들이 있는 이 회사에서 그걸 배워보고 싶다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 면접의 의미를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면접관의 자리에 앉은 그들은 나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회사를 거쳐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있는 '나'를 보며, 그들은 30년을 한 회사에 몸 바쳐 일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면접으로부터 깊이 배운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낮추려 들 때, 애써 손들며 나를 증명해 보이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존심은 너덜너덜해질지언정 자존감은 잃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걸 말이다. 상대방의 결핍이 반영된 시선에 나를 투영해 굳이 흔들릴 필요가 없다. 스스로 균형을 잡는 힘만 있다면, 오히려 잠깐 넘어졌다 일어난 후 더 오래도록 나의 속도와 자세로 걸어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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