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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하 Feb 10. 2022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릴 때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 타고난 성격이 여리고, 생각이 깊은 탓에 마음을 열기가 늘 어려웠다. 열일곱, 그쯤엔 으레 찾아오는 사춘기까지 더해져 더 내성적이었다. 모두가 흐트러져 떠들고 노는 청소 시간, 교실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아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으며 이어폰 속 인디밴드 음악에 잠겨 있는 조용한 아이. 그때의 나는 혼자 있는 게 일종의 방어책이기도 했다. 마음의 문을 함부로 열었다가 남게 될 생채기도 무서웠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기대하고, 그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을 닫고 꾹꾹 누르면 단단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스무살이 되었지만, 서울은 더 낯선 곳이었다. 고작 서른 명 남짓하던 고등학교 교실 속 무리에서도 홀로 있고 싶어 하던 나는, 백 명쯤 함께 듣는 수업을 들어야 했고, 환영식이니 뭐니 하며 낯선 이들 사이에서 더 낯선 소주를 삼키기도 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첫 소주의 맛. 차갑고, 독한 향기가 넘어가며 목을 태우는 그 맛. 그 소주를 나눠 마신 동기와 친구가 되기도 했다. 조금쯤은 마음을 열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술자리가 이어지던 어느 날엔가, 몇 번 이야기 나눠본 적 없던 선배가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과에 퍼졌다. 그리고 어젯밤 친구가 되었던 이가, 오늘 나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를 모르는 이는 나를 좋아하고, 나를 아는 이는 나를 싫어한다니. 단단한 마음은 다짐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낯선 서울, 20대를 보내며 그런 일은 숱하게 생겼다. 큰 도시, 짧게 스치는 인연들이 많아지며 나는 단단해지는 일이 어쩌면 무뎌지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뾰족한 돌이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몽돌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둥글고 단단해지려면 얼마나 더 휩쓸려야 할까. 감히 생각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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