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문연 Jul 05. 2024

어머니, 울지 마세요.

누가 갑자기 머리를 때린다면 황당하고 기분 나쁠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곧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식부터 행동까지의 시스템일 것이다. 누군가가 고의로 때린 건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나이, 성별, 의도는 무엇인지 누군가와 의도치 않게 접촉된 거라면 어디와 어떻게 부딪힌 건지 말이다. 전기버스는 운전자석부터 뒷문 까지의 낮은 좌석과 계단으로 올라가 앉는 뒷좌석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가 앉은 좌석은 두번째 뒷좌석이었다. 앞에는 6-7세처럼 보이는 남자 아이와 그 옆에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타고 있었다. 남자 아이의 행동이 평범하지는 않았는데 산만하면서 표정이 없는 것이 정상 범위의 지적 수준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갔을까.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찬 버스 안의 정적이 깨졌다. “얘! 사람 머리를 그렇게 때리면 어떻게 하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뒷문과 마주한 좌석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의 엄마는 바로 죄송하다고 이야기했고 그러자 아주머니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고 생각한 찰나, 한 30초쯤 지났을까. 아주머니가 다시 일어났다. 아이에게 “엄마가 아니라 너가 잘못했다고 해야지. 너가 잘못한 거잖아.”라며 아이에게 말했다. 경황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아이의 일반적이지 않은 태도와 표정이 전혀 와닿지 않았던걸까.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자 아이 엄마가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하며 “아이가 자폐가 있어요. 제가 핸드폰 하느라고 잘 보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하는 건지.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저씨(아마 그 아주머니의 남편인 듯)가 내려와 그만하라는 듯 아주머니의 어깨를 잡아끌었고 그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이는 천진하게 두리번 거리며 들썩 거렸는데 바로 뒤에 앉은 내 눈에 아이 엄마의 눈물이 보였다. 그러고 나서 아이와 엄마 또한 곧 내렸고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아이와 우는 얼굴로 고개 숙인 엄마의 모습이 대비되어 더 안타까웠다. 그 아주머니에겐 무엇이 부족했을까. 여유를 갖고 지켜보았다면 아이의 특성을 파악했을까. 아니면 아이의 특성이 보이지 않을만큼 자기가 본 피해가 너무 크게 느껴진 걸까. 버스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몰라도 아주머니의 대응이 너무 과했다고 느껴졌다. 어른이라면 아이의 행동에 대해 조금은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파악했어야 하지 않나. 아이 엄마의 눈물에서 한국 사회에서 정상 범위 밖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사람들에게 죄송할 일이 많은 일인지를 다시금 느꼈다. 아마 그 한 상황에서의 서글픔(물론 내가 그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다)이기보다 그 동안 묵혀진 응어리가 터진 건 아닐지. ’어머니, 울지 마세요. 자폐 아동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한 한국 사회의 잘못인 걸요.‘ 별 일 아니게 넘어갈 수 있던 상황이 한국이라서 비극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가 없고 엄마는 아니지만 그 공간 속 뒷자리에서 모든 걸 조망하던 내 마음 역시 서글펐다. 창 밖의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전달되지 않을 목소리가 자꾸 내 안에서 소리쳤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 글에서 ‘정상 범위 밖’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더 적합한 표현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