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짧은 일기.
생각이 많았던 날, 무엇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 브런치에 들어왔는데 내가 연재를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안 까먹으려고 열심히 메모해 뒀는데 메모를 했다는 사실조차 까먹어버린 느낌.
아무튼 오늘 휴가라서 태리랑 지혜언니네 다녀와서 나은언니와 함께 다과를 하였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지쳐 있었지만 사실 잘 들어보면 말만 그렇지 거의 원상복구 수준으로 일상을 회복하고들 있었다. 지우는 학교에 정상 입학했고 이안이도 개학했고 하나도 데이케어 다니고, 나은언니네는 캠핑을 많이 다닌 듯했고 지혜언니네는 골프에 호캉스에 다들 바쁘게도 돈을 쓰고 놀러 다닌 듯하였다.
어제 하루 종일 편두통을 앓다가 깨어나서 그런지 몽롱한 하루였는데 그들과의 시간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아들 둘 키우느라 바쁘고 힘들다고 하지만 머리를 멋지게 염색하고 화장을 하고 멋진 청바지를 입은 나은언니를 보면서 나는 패션 센스가 없었지... 늘 오징어처럼 흐물거리며 무심한 듯한 표정과 말투를 장착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보다 자기 라이프를 즐기며 사는 지혜언니를 보면서 (특히 그녀의 정갈한 살림살이와 카페 스타일의 토스트, 민첩한 테이블 세팅력을 관찰하면서) 아 나는 살림에 역시 소질이 없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 중요한 건 속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속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정말 재미없고, 공감이 가면서도 어떤 것들은 절대 이해가 안 간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힘든 점, 느꼈던 점, 새롭게 배운 점들을 나눌 수는 없었다. 그들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고 그 날의 상황과도 맞지 않고 나만 동동 뜬 배 같을 테니까. 누구도 나에게 진심으로 물어보지는 않는다. 일은 재밌냐고, 일은 어떠냐고, 잘하고 있냐고. 피상적인 관계의 사람들은 그저 둘째는 언제냐고 물어볼 뿐이다.
언제까지나 두 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해야 할까. 나도 살림을 아주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재능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애매하게 잘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재능이 없는 것은 아예 아웃 소싱하고 내가 잘할 수 있고 더 잘하고 싶은 것에 올인하면 안 될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밥은 과감하게 안 하고 반찬 시켜 먹고! 그 시간에 공부하고 일하는 거다! 청소 빨래는 어차피 안 하니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늘 밥해 먹는 것이 문제인데 그냥 사 먹으면 되지 않겠나? 밥할 시간에 태리랑 놀고!
어찌 보면 너무 쉬운 문제인데 이것저것 구색을 다 갖추며 살려고 하니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힘들다 지금. 근데 우리 남편이 이걸 보면 아주 놀랄 것이다. 왜냐면 어제도, 그저께도 시켜먹었고 안 시켜먹은 날은 남편이 밥을 차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또 있다. 내가 살림을 버리고 공부나 일에 올인한다 한들 거기서 뚜렷한 성공을 할 수 있겠냐 말이다. 그건 보장이 안 되는 거다. 그러면 완전 똥 된다. 하나를 버려서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그럴 수도 있으련만 그런 것도 아니니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걸 복잡하다고 정의하는 순간 나는 또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걸까.
내가 살고 있는 두 개의 세계.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고 또 그 두 세계를 온전히 줄타기하며 사는 사람도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 하나를 아예 버렸거나 실패했거나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정녕 그 무엇도 버리지 못하면 그저 그런 시시한 인생이 되고 마는 걸까. 나는 그걸 너무 늦게 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