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다니다가 스타트업 가니까 어때?

적당히 살아가는 대기업 이후 ㅇㅇㅇㅇ의 이야기 - 끝!

by 꿀잠

6.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다른 형태로 사내정치는 매우 치열하다.


이 이야기는 이전에 했던 주제 중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짧게 넘어가려고 한다. 여기서 다른 형태란, 사내 정치의 '대상'에도 있지만, 그 '적극성'에 대해서도 차이를 보인다. 대기업에서는 어느 정도 사내 정치라는 것도 하나의 비즈니스고 조금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이며 의미 없는 에너지 소모라고 여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다만, 현실에서의 스타트업은 은근한 사내정치의 온상이다. 이것 또한 이전 이야기에서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정치는 결과적으로 편하지만 효율이 좋은 자기 PR의 한 수단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역사가 짧고, 위계질서가 명확하지 않은 스타트업에서는 직원 한 명이 가지는 소위 '줄'의 힘이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도 티를 내지는 않지만 누가 지금 이 회사에서 실세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고, 그 사람의 어떤 발언이나 중요한 일을 누구에게 주는지, 누구와 1:1 면담을 많이 하는지에 전 직원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가끔은 그런 이야기와 눈치를 듣고 보고 있다 보면 고등학교 때 반에서 잘 나가는 아이와 못 나가는 아이를 나누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7. 대기업을 가면 친인척들이 좋아하지만, 스타트업을 가면 친구들이 좋아한다.


이것이 참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어마어마한 연봉 차이만큼이나 스타트업을 선택하기 어려운 요소 중 하나였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올 때, 돈이야 어차피 내가 벌던 돈이고 스타트업에서 주는 돈이 그렇다고 나 한 몸 먹고 살기 어려운 돈도 아니었기 때문에 감수할 만했다. 오히려 가장 큰 반향은 가족으로부터 나왔다.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지만 결국엔,

누구한테 말해도 '와 좋은 데 갔네~ 잘 됐네~'하던 회사에서 '어디라고..?' 하는 곳으로 갔다는 것이 곱씹을수록 별로였던 것 같다.

흠 충분히 이해는 된다. 나야 가족한테 이러이러한 사명과 이러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대기업을 떠납니다라고 듣기 좋은 말로 설득을 할 수 있지만 가족들은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이렇게 구질구질하게까지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퇴사하고 첫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할아버지가 되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손을 꼭 잡아주면서 힘내라고 하셨을 때 마치 내가 무슨 인생의 구렁텅이에 빠진 건가 하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른들은 내가 아무리 좋은 구실, 명분으로 나왔든 간에 지금 당장은 어떠한 추락? 실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친구들...이라고 뭐 좋아하는 건 아닌데, 신기해하는 구석은 있다. 뭔가 '내 친구 중에 그래도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하고 싶은 거 찾아 떠나는 애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듣는 내 입장에선 딱히 좋은 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본인도 이런 마음이 있는데 용기가 없어서 못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백퍼 후회할 거라고 저주인지 위로인지 알기 어려운 말을 하는 친구도 있다. 분명히 주위에서 찾기 힘든 케이스인 것은 맞기 때문에 본인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많이들 찾아주는 것 같아서 그건 반길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어느 날 쌓이고 쌓인 회사에서의 공허함을 참지 못해 시작한 '대기업 VS 스타트업'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론 이 정도인 것 같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은 더 무궁무진하지만 시원하게 뱉고 싶은 와중에도 겁은 잔뜩 먹은 평범한 회사원이기에.. 훗날을 기약하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핵심적인 건 첫 글에서 썼던 이 말인 것 같다.


- 대기업 : 2~3년 후의 이 회사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 스타트업 : 이 곳에서의 2~3년 후의 내 모습이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한 번씩 곱씹을 때마다 이 말이 의미하는 여러 가지 다른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인가, 회사인가? 안정성인가, 모험인가? 장거리인가, 단거리인가? 등등. 어느 성향이든 아무리 요즘 개인의 생활에서 회사의 입지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하루의 3분의 1은 보내는 회사 생활이다. 단순히 한 달에 한번 돈을 받기 위해 그냥 꾹 참고 다니는 곳 이상의 의미는 되었으면 한다.





글 쓰는 걸 그렇게 막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브런치에 와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오래된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어떤 변화가 있거나, 변화를 필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언제 또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것이 가득 속에 쌓이면, 돌아오기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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