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와 연봉협상

인생은 소설이다

by 꿀잠

나는 주린이다.


그런 나도 티끌처럼 모아 둔 여유자금으로 주식판에 뛰어들 만큼 주식장은 매력적이었다. 작년 8월이었다.


처음에는 한국 장에서만 소소하게 투자했다. 상한, 하한선이 있다는 점이 그래도 안전하게 느껴졌고, 한국 경제 뉴스가 훨씬 친근했다. 그렇게 모두가 넣었다 하면 돈이 복사되는 시장에서 50만 원, 100만 원 정도의 이익을 봤고 남들이 어떻든 몇십만 원을 벌었다는 사실이 기뻤고, 점차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안전장치라 생각했던 상한, 하한선이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고, '큰 물'로 관심이 쏠렸다. '테슬라'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해외주식은 한국 장에서 거래하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환전도 할 필요 없었고 거래 시간마저 전혀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로직처럼 '한 군데서 이렇게 벌었는데 두 군데에서 하면 이득이지.'라고 생각했다.


'테슬라'를 후다닥 주워 담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로 몇 가지 매수하여 나름 포트폴리오라고 부를 만한 것을 만들었다. 잠만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빨간 글씨로 가득한 계좌를 보면서 '이건 재능이다 재능이야.'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물론 그건 재능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애써 무시하던 언젠가 꼭 온다던 조정장은 2월 말, 해외, 국내를 가리지 않고 살벌하게 찾아왔고, 많은 개미들은 버티지 못했다. 나 또한 새벽에 깨서 잠깐 본 수많은 파란 불에 패닉 셀을 했고, 결과적으로 주식으로 인한 내 수익은 얼마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다.


올해 4년 차, 직장은 두 번째다. 올해 처음으로 '연봉협상'이라는 것을 해봤다. 처음 직장은 협상은커녕 승진을 해야 연봉이 오르는 전형적인 대기업이었고, 두 번째 직장에 와서 처음 맞이한 '연봉협상'은 협상이라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그냥 사인을 했다.


그러던 내가 올해 '연봉협상'에서는 월급날 전날까지 사인을 하지 않고 강력하게 연봉 상승을 주장했다. 생각해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불만 한번 없이 일 열심히 하던 애가 왜 갑자기?


우선 불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알아주길 바랬다. 적어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불만만 많은 사람은 구별해주길 바랬다. 그렇지만 회사는 불만을 듣기만에도 귀가 부족했고,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말뿐인 칭찬과 인정이 버거웠다. 회사에 칭찬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의 칭찬과 인정이 기분 좋은 것은 그것이 곧 나의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말뿐인 '인정'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연봉협상'은, 그 결과를 떠나 결국 씁쓸하게도 회사의 입장과 직원의 입장은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자리였다. 두 주체는 너무 객관화가 되지 않으며, 서로의 실제와 생각의 격차가 너무 크다.




불장과 조정장을 맛 본 '주린이'와 이제 막 연봉협상을 끝낸 '사회 초년생'에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 돈의 가치에 대한 혼란 :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얻어낸 올해의 연봉 상승액은 한창 상승장 때의 주식 수익보다 적었다. 최근 많은 회사원들이 근무시간에 서로 화장실 가서 주식을 하려고 눈치를 본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에는 주식에서 이익 실현한 돈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


- 자아실현에 대한 혼란 : 주식으로 번 돈은 어디로 갈까?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아니, 죄다 다시 주식 투자에 들어간다. 동시에 취업 준비할 때 면접에서 주야장천 외치던 말을 생각해본다.

"자아실현을 위해 이 회사의 업과 비전에 저의 열정을 쏟고 싶습니다."

일부는 '돈을 벌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길게 하는 것이라지만, 정말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던 생각은 모두 거짓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두 가지 모두 어떤 기쁨과 슬픔을 주더라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근본적인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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