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더 행복해지고 싶은 고민
대학시절 학교 방송국에서 이것저것 영상을 제작하면서 '영화'에 대한 묘한 열정을 가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열정은 내가 거의 유일하게 가져본 어떤 순수한 생산적인 열정이었다. 같은 열정을 가진 친구들과 2~3년 정도를 영화를 만드는데 미쳐 살았었고, 막연하게나마 이런 일을 오래오래 하면서 사는 것도 꽤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영화'에 대한 고민이 '어떻게 이 영화를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에 '사회적 성공'이 더해지는 순간부터 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상 없이는 못 살 것 같던 수많은 방송국 시절의 친구들이 사회의 일반적인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 친구들은 그때의 순수했던 열정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 방송국 친구들 중 유일하게 아직도 영화의 길을 가고 있는 유일한 친구를 거의 2~3년 만에 만났다. 대학생 때도 착하면서도 자기만의 생각은 명료하게 표현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아직도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으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접하는 친구들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어떻게 흔들림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쫓을 수 있을까. 수많은 미디어에서 자신만의 길을 가, 인생에 정답은 없어!라는 시답잖은 소리를 한 것도 몇 년이 지났지만, 누가 그렇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자기에 대한 결정이라지만 좋든 싫든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난 그 친구의 온전한 행복도, 온전한 불행도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꿈을 저버렸는데 네가 너무 행복하면 내가 질투가 날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한 때 아끼던 꿈인데 네가 너무 불행하면 그 꿈의 색이 바래는 느낌이랄까. 과거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는 요즘이었던지라 이 친구와의 자리가 왠지 모르게 긴장됐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낱 내 생각일 뿐이었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친구 또한 그냥 평범하게 한 명의 사회인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마치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행복이 들 때도 있으면서, 틈틈이 느껴지는 현실의 벽에 좌절감도 느끼는. 그렇게 뭔가 특별할 것 같던 그 오랜만의 만남도 근황, 회사 욕, 연애 이야기 등을 거쳐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친구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되었다.
주위 사람들 중에 '난 지금 행복해'라고 말하는 친구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취직을 못하고 있는 친구도, 원하던 회사에 힘겹게 들어간 친구도, 그냥 어릴 때부터 돈 많던 금수저 친구도. 왜 다들 더 행복해져 보겠다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건데 더 불행해지고 있는 걸까. 왠지 그 근본적인 이유가 어쩌면 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수용 가능한 인구 밀도를 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인 밀도뿐 아니라 심리적인 밀도까지도.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만히 있는 마음이 없어져 버린 느낌. 고양이도 햄스터도 각자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게 보전해 줘야 하는 최소한의 독립적인 공간과 거리가 있다는데, 우린 하루 중의 너무 많은 시간을 계속 타인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지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울살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