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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Jul 02. 2022

여름, 불쾌하지만 마냥 싫어할 순 없는

    본래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 vs 겨울"을 묻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체 여름이 다른 계절에 비해 좋은 점이 무엇이 있을까. 


    먼저 여름은, 비가 오든 안 오든 밖에서 30분 이상을 버티기가 힘들고 최근 동남아처럼 지속되는 엄청난 습기와 소나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을 분노조절장애로 만든다. 한낮의 그런 불편함이 지나갔나 싶으면 밤에는 또 낮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모기들이 득실대기 시작한다. 그게 뭐라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자려고 누웠을 때 들리는 모기 소리에 불을 켜고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그렇게 현타가 올 수 없다. 


    그렇지만 올해 여름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여름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여름이 다른 여름에 비해 특히 나은 점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월요일부터 이어진 4일간의 비가 끝나고 어제 화창한 하늘이 떴을 때, 이 색감은 여름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햇살은 뜨겁지만, 유난히 파란 하늘과 유난히 하얀 구름과, 유난히 초록인 나무들. 각 존재들이 자신의 전성기라고 주장하고 있듯이 모든 색들이 가장 쨍한 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은 청춘 드라마, 영화들의 배경이 여름인 걸까. 용두사미이긴 했으나 재밌게 봤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생각났다.

    전체 여름에서 이런 순간이 얼마나 되겠냐만, 이 순간 때문에 짜증 나는 그 여름의 기분들이 다 덮어지지는 않겠지만 여름만이 가지고 있는 이런 강렬한 순간 하나만으로도 여름은 좋아할 가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의 대부분의 불행을 찰나의 행복으로 이겨내듯이, 다른 사람의 거의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조그마한 부분 때문에 관계가 이어지듯이 여름과도 앞으로는 마냥 싫어하는 사이가 되진 않을 것 같다.


    최근 유난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는 더욱 가혹한 여름이겠지만, 어제 내가 본 여름의 찬란한 순간이 그 친구에게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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