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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Oct 28. 2023

칼퇴를 하기로 했다.

눈치를 보지 않는 연습.

오랜만의 브런치다.

 처음엔 양심에 찔렸던 브런치의 "작가님..." 뭐시기 알람도 한 3번 무시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된 지 오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브런치를 떠올리게 한 건 직장 동료의 블로그를 시작하겠다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녀의 평소 성격으로 보아 신나게 몇 번 올리다가 금방 그만 둘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나 스스로가 기록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브런치를 그간 그만둔 이유는 물론 현생의 바쁨으로 인한 귀찮음이 가장 컸겠지만, 근래 써오던 글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다.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지, 너무 글을 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 억지로 쓴 글보다 즉흥적으로 술술 써지는 글들이 훨씬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스스로 동하지 않으면 억지로는 쓰지 않으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더 주기가 길어지게 된 것 같다.


 그러면 오늘은 무엇이냐, 반반이다. 마음이 마구 동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쓸 이야기가 없진 않다. 아니, 반대로 근 몇 달간은 올해 중 가장 역동적인 기간이었던 것 같다.




 먼저 올 초부터 팀장님이 노래를 부르던 내 승진은 누락이 됐다. 1년 내내 부서 전체 최고 평가를 받고, 월 최고의 사원 수상도 받고, 누가 너 올해 뭐 했냐라고 하면 가슴 펴고 말할 만한 성과도 두어 개 냈다. 그런데 최종 누락이 되자 나보다도 더 당황해하며 소식을 전하는 팀장님을 보니 마냥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답은 간단했다. "우리 부서장이 인사 평가 시즌에 퇴사를 해서, 우리 부서의 승진 TO는 본사에서 급하지 않았다." 돌려 말하면, 어떤 타 부서의 장이 우리 팀 애 빨리 승진해야 하니까 우선 시켜줘 하면 그 사람이 우선순위가 되는 것인데 그 시기에 우리 부서장은 부재중이었으니 자연스레 나도 후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최고의 사원, 베스트 케이스 선정, 최고 인사 평가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거다.


  회사의 정책이 역겨웠다가, 왜 우리 부서장은 부재했을까를 탓하다가, 칼퇴를 선택하기로 했다. 입사 이후부터 나는 무의식적으로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칼퇴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말 자체는 지금도 어느 정도 맞다고 본다. 남들과 똑같은 시간을 일하면서 기준치 이상을 하는 것이 보통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칼퇴를 하기로 한 것"은,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간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는 나에게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회사에 목매달며 불합리한 처우에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주의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에 퇴근을 한다. 나도 퇴근을 하고 골프 레슨을 받았다는 다른 사람들처럼 드럼 학원을 등록했고, 레슨이 없는 날에는 소소하게라도 운동을 한다. 아직도 6시에 칼퇴를 하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다. 괜히 루팡짓을 하는 것 같달까. 그렇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칼퇴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행해진 내 인생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불평할 수 없으므로.




 혹시나 창업을 준비하시거나 사장님인 분이 계신다면, 좋은 직원을 오래 두고 싶다면 아래 두 가지 사항만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1. 성과를 내면 어떠한 형태든 그것에 대한 보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 (인사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

 2.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납득 (그 이유가 크든 작든 간에)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현 상황에 만족해서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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