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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Apr 30. 2020

15 of 185, 손주 사랑

2020/03/28, 15 of 185

엄마 아버지를 뵙고 왔다. 아침에 떠나기로 했지만 역시나 이래저래 우물쭈물하다 원래 계획보다는 늦어지고 말았다. 뭐, 애들 둘을 챙기려다 보니, 일상다반사다. 언제쯤 알아서 옷 입고 알아서 짐 챙기고 가자고 할 때 바로 따라나설 수 있게 될까. 모든 걸 다 대신해야 하니, 이거 참 힘든 일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시고 그저 죽이나 국물 같은 류만 조금씩 드실 뿐이다. 어찌나 말라버리셨는지, 어린 시절 집에 돌아오시면 얼른 뛰어나가 현관에서 양 손을 맞잡고는 몸을 타고 올라 빙글 뒤로 도는 나를 보며 웃던 그 당시의 두껍고 탄탄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물론, 내가 20대였던 당시에도 나보다 훨씬 건장하고 강하셨던, 그렇게 운동을 안 해서는 죽을 때 까지도 너는 나를 팔씨름으로 못 이길 거라며 웃으시던 아버지는 찾을 수가 없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사이에 나는 운동을 딱히 하지 않았는데, 왜 이길 수 있을 것 같을까.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걸으면서도 비틀거리시는 모습에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이런저런 감정에서 나오는 수많은 말들이 속에서 돌고 돌다, 뱉어지지는 않고 생각 단계에 머물다 삼켜져 사라진다. 그래. 역시 할 수 있는 말이라면, 술이 원수다. 그래도, 두 손자가 온다고 하니 힘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기다리고 계시고, 중간중간 힘들어 들어가 누우셨다가도 금방 또다시 나와 애들 뛰놀고 걷는 모습을 보며 웃으신다. 시끄러운 소리 듣는 것 만도 상당히 힘드실 텐데, 손주란 그렇게나 예쁘기만 한 존재인 걸까. 하긴 자식과는 엄청나게 싸우더라도 손주야 그럴 일이 있겠나. 조부모가 키운 아이가 버릇 있기 힘들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터다. ㅎㅎㅎ 이제는 떠나는 우리 차 배웅하러 나오시는 것도 못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떠나는 차 옆에서 빨리 창문 닫으라고 똑같은 말을 그 짧은 시간에 대여섯 번은 하는 엄마의 모습에 운전대를 잡고 떠나는 마음이 또 한 번 무겁다. 인터넷에 보니 매 년 자신을 배웅해 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모은 사람도 있던데, 나도 그런 거라도 해 둘걸 그랬나 보다. 사랑은 내리사랑뿐, 위로 올라가는 사랑은 없다는 것이 엄마가 옛날부터 해 주시던 말씀이었다. 정말 그렇다는 걸 절감하지만, 100% 그렇지는 않도록, 잘해야겠다.


집에 오는 동안에는 첫째가 떡실신해 줬지만 둘째가 내내 깨 있었고, 와서는 또다시 엄청난 에너지로 한 시간 넘게 놀다 잠들었다.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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