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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Sep 15. 2020

18 of 185, 첫째와의 갈등

2020/03/31, 18 of 185

첫째가 4일이나 엄마랑 붙어 지내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없어져 있어서 많이 실망했나 보다. 혹은 일어났는데 내가 바로 장난쳐 주지 않고 둘째를 안고 있어서 기분이 안 좋아졌든지. 오전 내내, 아니 하루 종일, 온갖 것에 트집 잡고 짜증내고 울어대며 아주 난리였다. 놀 때 “이거 해 저거 해 이렇게 말해, 저렇게 말해” 하며 상대방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기를 요구하는 버릇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영 안 좋아할 것 같은 마음에 상대방 마음도 듣도록 하려고 “아빠는 시키는 대로 하기 싫다. 다르게 하고 싶다.” 하니 짜증, 나보고 악역 하라는 거 싫다고 하니 짜증 + 울음, 한 번씩 번갈아가며 악역을 하기로 했다가 내가 세 번  고 나서 '이제 너도 나쁜 사람 해라' 했더니 또 울음, 그 타이밍에 회사에 연락할 일이 생겨서 통화하고 있자니 출동 놀이하자고 집이 떠나가라 울고, 그러다 '엄마 어디 갔냐, 보고 싶다, 저기 있었는데 (안방을 가리키며)~~~' 라며 대성통곡 + 손 뻗으며 '내 엄마 내 엄마' + 현관 가서 신발 신음 (하지만 아직 잘 못 신어서 스스로 나가기는 실패) 콤보, 한참 난리 하고 나서 좀 진정되어갈 때 망고 먹자 꼬셔서 “울 일 아닌 거로 울지 말라”라고 달래며 망고를 까다 좀 상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대신 딸기 먹자 했더니 또 울음, 노는데 둘째가 블록 가져간다고 울음, 둘째 낮잠 재우는 사이 보고 있으라고 틀었던 TV를 껐더니 또 울음. 와 미치겠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어렵고 힘들다. 그냥 내가 참고 들어주고 한 번 더 달래주고 웃어주면 나을까? 벌써부터 부르는 말 무시, 한숨, 이게 뭐야- 하는 말투 등 예상보다 너무너무 일찍 부모를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일련의 행동들이 보여서, 미처 각오를 하기도 전에 확 나타난 모습들에 너무 당황스럽다. 하긴 뭐 애 얻고 키우는 과정에서 여태까지 뭐 하나인들 준비가 되어있었느냐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디 셀렉트에 있는 프랑스 육아 어쩌고 등 육아 관련 서적 세 권 일단 읽어봐야겠다. 육아는 책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치면 뭔들 아닌 게 있나. 책이나 인터넷 글이나 동영상이나 남의 이야기나 다 그냥 지식을 얻는 거고 실제는 부딪치면서 깨져봐야 느끼고 해결되는 것인 거야 어떤 일이든 같지. 공부라도 좀 하고, 그러면서 내 마음을 더 유하게, 착하게 가지고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


둘째는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 꼭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고 난 5~10분 정도 후에 책상을 잡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초집중 + 젖 먹던 힘도 짜내기를 시전 하시는 표정으로 시원하게 똥을 싸 주신다. 이건 아빠가 치워야 한다는 의사의 표현일까? 뭐, 어떻들 어떠랴. 요새 웃음과 재롱이 다시 많아져서 참 예쁘다. 하지만 자꾸 얼굴을 퍽퍽 때리는 게 맘에 안 드는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 이런 건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고쳐야 한다는데 엉덩이 때려봐야 기저귀가 있어서 별로 안 아플…… 그래서일까 까딱도 안 한다. 휴직도 2주가 훌쩍 지난 이제는 많이 친해지고 가까워진 것인지, 자다 뒤척이며 깼을 때 앞에 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안심하며 다시 잠드는 모습과, 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활짝 웃으면서 소리 지르고 기어 오는 모습이 너무너무 예쁘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이런 순간들이구나 싶다.


벌써 육아 휴직이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당초 세웠던 계획은 코로나로 인해 완전히 틀어졌다. 둘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어 내 시간이 부족하다. 게임용으로 갖고 있는 에일리언웨어 알파 (즉 언젠가는 게임을 다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및 플스 4와 악기 (즉 언젠가는 밴드를 다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는 포기하고 팔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하지만 아쉬움에 그러질 못하고 있다… 미련인 것을. 중고는 가격이 전부다. 다 팔아서 현금 만들었다가 주식 시장이 좀 더 떨어지고 진정되면 주가 연동 ETF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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