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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Sep 15. 2020

19 of 185, 신경전

2020/04/01, 19 of 185

아빠 싫어 아빠 미워 아빠 어려워 를 백 번은 들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환영해 주고 식사 시간에도 간식 시간에도 비위 맞춰주고자 노력했는데, 딸기를 두 번째로 또 달라할 때 그만 먹자고 했더니 또 부르는 말에 대답을 않는다. 나도 수양이 영 부족한 사람이라 기분이 확 상해서 그 후로는 또 뾰족하게 굴었다. 게다가 어젯밤부터 와이프가 몇 번, 나도 아침나절 내내 몇 번이나 재차 얘기하고 확인하고 약속했던 낮잠을 또다시 두 시가 되니 안 자겠다고 버티고 울고 소리 질러대서, 솔직히 예상했던 일이라 ‘역시나’ 싶으면서도 또 짜증이 확 났다. 공룡 책 보자고 꼬여서 안방 들어갔지만 나가겠다고 난리. 간질이고 뽀뽀하고 달래가면서 버텼지만 한 시간이 넘어가니 도저히 무리라 강제로 끌어다 앉히고 눕히면서 30여분을 더 버티고 한 시간 반 정도 되어서는 포기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이렇게 안 자고 난리를 치면 선생님들이 싫어할 것 같아 어떻게든 잠은 안 자더라도 누워 쉬는 버릇이라도 들었으면 싶은데, 어째야 하는 걸까. 너무 힘들다. 도대체 이제 20개월 되어가는 아이한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정도는 필요한 일에 속하는 것 아닐까? 정말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하여간 모든 선생님들 전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더더욱 더 더더 더욱 많이 진심 존경한다. 벌써 이 정도인데 10대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수십 년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내지? 엄두가 안 난다… 충분한 지식과 각오 없이 엄청난 일을 시작 해 버렸다. 그래도, 와이프 퇴근할 시간에는 맛있는 거 사 먹자고 꼬셔서 나가 와이프 만나 같이 들어왔다. 정말 힘들구나. 개학이 다시 또 연기되고 언제까지 못 가는 건지 정해지지조차 않았는데, 나 진짜 어쩌나 싶다. 시험이고 뭐고 휴직 기간에 해야지 하고 계획했던 일들 전혀 못하고 정말 6개월 알차게 빡세게 신나게 어깨춤이 절로 나게 레알루다가 순도 100% 애들보다 복직하게 되는 거 아닐까…


이런 마음 때문일까? 안 그래도 아이들과 할 활동을 제대로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하지 않아 왔는데, 오늘은 잘 생각해 보면 아침에 노부영, 돌잡이 명화 세이펜으로 몇 권 같이 본 것 빼고는 (어젯밤 새벽 한 시까지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 간신히 찾아가며 넣은 게 아까워서인 것 같다.) ‘놀아주는’ 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첫째가 전혀 관심도 없고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책도 다 넘겨버리고 밀어버리고 해서 나도 열 받아, 그나마 위에 쓴 같이 본 책들도 사실은 대충 보다 금방 접고 말았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가 애들을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성은 사회성대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데다, 내가 제대로 된 체계적인 교육, 훈육을 하는 것도 아니니 뭔가 점점 더 아이들에게 안 좋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 그렇다고 어린이집을 보내서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 애들을 노출시키는 것 또한 하고 싶지 않은데. 어째야 할까. 인생은 참 어렵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가족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아이의 일이 되다 보니 더더욱 결정이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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