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사는 아기 원숭이 두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
우리 집엔 꼬리 없는 원숭이 두 마리가 산다. 한 마리는 뚜띠, 다른 한 마리는 롤리, 둘 다 남자아이다. 5살 뚜띠는 말이 많고 더러운 것을 좋아한다. 말을 하는 데에는 지침이 없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라고 물으면, 난 어린 원숭이니까 당연히 궁금한 게 많겠지 하고 친절히 대답해 준다. 그런데 다시 왜?라고 묻는다. 아무리 대답해 줘도 왜 그런지 궁금해하고 또 궁금해한다. 또 별난점은 길을 가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출 때가 허다한데 그중에 반은 쓰레기라는 것이다. 남이 먹다 버린 젤리, 음료수, 출처를 알 수 없는 쇠고리, 스티로폼 박스. 돌인 줄 알고 굳은 개똥을 잡아 든 적도 있다. 뚜띠가 가장 원숭이다울 때는 식사시간이다. 사과와 오이만 먹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넌 역시 원숭이야.”라고 말하면 뚜띠는 이렇게 대답한다. “난 원숭이가 아니야! 난 코끼리야!”
3살 롤리는 아직 말이 서툴다. 그 덕에 덜 시끄럽지만 한번 울음이 터지면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울음소리가 하도 커서 그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수명을 단축하는 울음소리. 한참을 울다 진정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약간 비스듬히 고개를 꺾고 반짝이는 눈동자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얼굴로 내 심장을 다시 살려 놓는다. 롤리는 자신의 귀여움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얼마나 강력한지 벌써 알고 있다.
뚜띠와 롤리의 아빠는 언제나 나를 사랑한다. '네가 가장 예쁘고 네가 가장 섹시해. 난 네가 너무 좋아.'를 달고 산다. 이제 그만해라 할 정도로 낯간지러운 말을 서슴지 않고 던진다. 그래서 난 남편을 좋아한다. 그러나 달콤함 뒤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으니. 호랑이는 지독하리만치 냉정하고 이성적인 뇌를 갖고 있다. 차갑고 날카로운 이성의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이면 너무나 맹렬하고 적확하게 핵심을 찔러서 심장을 후벼 파버리곤 한다.
세 남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사랑을 구한다. 미안하게도 내가 늘 양팔 벌려 그들을 꽉 안아주진 못했다. 사랑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지겹고 귀찮을 때도 있었고, 한계를 느낄 때도 있었다.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탓을 셋에게 돌리기도 했다. 남편의 흠을 잡고 아이들의 투정에 짜증내기 일쑤였다. 그들은 한없이 물을 찾는데 나는 결코 오아시스를 찾을 수 없는 바삭하게 말라버린 사막이 되어버렸다.
녹용이 들어간 보약을 들이키며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을 무렵, 도서관에서 운명처럼 책 한 권을 만났다. 이슬아 작가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라는 책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
나의 가난한 마음.
다시 읽는 책.
서문에 적힌 단 세문장에 나는 멈춰 서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가난한 마음. 가난한 마음. 마음이 가난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구나. 그래. 내가 가난해서였다. 내 마음이 너무 가난해서 너희 셋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가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애초에 사랑하기엔 턱없이 작은 그릇이었다. 사랑할 줄 모르는 가여운 마음과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가난한 인간인지 모르는 어리석음에 온몸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둡고 건조했다.
엄마의 우울함이야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아이들의 소란이 밀려왔다. 나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소란에 한숨이 나왔다. 엄마를 수십 번, 수백 번 불렀다. 엄마는 엄마를 부를 때만 쓰는 말이 아니라, 마침표나 느낌표처럼 언제든지 쓴다. 거기다 스스로 지어낸 희한한 주문 같은 말이나 로봇의 공격 메시지를 보태며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몇 마디 대꾸를 해주다가 각자 자기들 놀이로 돌아갔다. 한숨 돌리려는데 이번엔 남편이 나를 불렀다.
소란한 날들은 내 안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감정과 취향과 욕구를 무뎌지게 했다.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은 끝없는 요구로 정신을 홀딱 빼놓고 있었다. 그때 무심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가만히 앉아 글을 쓸 수 있다면 내가 이 소란을 견딜 수 있을 텐데 생각했다. 그리하여 떠오르는 대로 번잡함과 슬픔을 일기장에 띄엄띄엄 적어 내려갔다. 나는 다시 나의 내면을 찾았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요새로 들어가 그곳에 숨겨진 언어들을 하나씩 발견했다. 쏟아져 나오는 언어들을 뱉어낸 뒤에 놀랍게도 마음은 평화를 찾았다. 마음의 공간이 정화된 것 같았다. 먼지로 가득 찬 것 같았던 마음이 비워지자 다시 차분하게 아이들과 남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더 기다리고 더 들을 수 있었다. 이제야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봄은 날씨가 자주 변덕을 부린다. 여름처럼 더웠다가 가을처럼 서늘하고, 새벽은 겨울 같다 가도 낮은 영락없는 봄이다. 봄에 사계절을 느끼고 있다. 창 밖을 가만히 보니 갑자기 봄비가 쏟아진다. 핑크색 벚꽃 잎들이 공중으로 퍼져나간다. 갑작스러운 비에 사람들은 허겁지겁 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다. 웃으며 빗속을 뚫고 뛴다. 그들을 보며 나도 함께 웃는다. 바람에 휘날리는 빗줄기에 허둥대며 웃음이 터진 사람들, 흩날리는 꽃 향기, 쏜살같이 지나가는 풍경에 분명한 기쁨이 있다. 버릴 것 없는 찰나를 낚아 하염없이 쓰고 싶다. 그렇게 해서 더 사랑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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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사막에 비가 내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