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에 관하여
아이는 내내 볼 것이 많아 자주 멈췄다. 한 걸음에 버찌가 있고, 또 한 걸음에 죽은 지렁이가 있고, 다음 한 걸음에 민들레가 있었다. 아이의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물었다.
“매일 가는 길인데 어쩜 이렇게 매일 다르게 볼까?”
아이는 엄마를 등지고 땅을 보며 답했다.
“유치원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해.”
“궁금한 게 많아서 그래?”
“응.”
5분이면 도착하는 가깝고 간단한 길인데 복잡하다니. 키가 딱 1미터인 이 작은 어린이에게 길은 단순하지 않았다. 길은 목적지를 향해 걷기만 하면 되는 진부한 것이 아니었다. 직진하면 될 때엔 직진할 수 없었고, 오른쪽에 궁금한 것을 발견하면 왼쪽에 또 새로운 것이 있었다. 저 나무에 난 것은 무엇인지, 저 아래 흙에서 올라오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당연한 것이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었다. 그러니 머릿속은 얼마나 바쁠까. 아이는 매일 길가의 존재들을 만나며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자랄까 같은 물음들로 세상을 달리 본다.
"엄마. 이거 예쁘지?"
아이는 나무 밑에 떨어진 동그란 연두색 나뭇잎 하나를 주워 기쁜 표정으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동그란 잎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뭘 찾는 거야?"
"지렁이. 앞을 못 보는 지렁이가 있으면 내가 도와줄 거야. 나뭇잎 위에 올려서 흙으로 보내줄 거야."
지난밤 책에서 지렁이는 눈이 없어 갈 곳을 헤맨다는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가여운 지렁이를 떠올리며 눈을 땅에서 떼지 않고 꼼꼼하게 걸었다. 하지만 유치원에 도착할 때까지 지렁이는 발견하지 못했다.
“나뭇잎은 엄마한테 주고 가.”
“엄마가 나뭇잎으로 지렁이 옮겨 주려고?”
"응."
유치원에 나뭇잎을 가지고 들어가면 괜히 다른 아이들도 매일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들고 와서 교실이 어질러질까 싶은 노파심에 출입구에서 나뭇잎은 두고 가라고 했다. 아이가 들어가고 돌아서서 나가면 가까운 곳에 나뭇잎은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순수하다 못해 투명한 그 말을 듣고 내가 지렁이 한 마리라도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응’이라고 답했다. 나뭇잎 따위 대수롭지 않은 칙칙한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착한 마음, 고운 마음 엄마의 표정으로 지켜줘야지’ 하고 미소도 지었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늦었다고 부지런히 가자 재촉하며 겨우 유치원에 도착했는데, 아이는 머릿속에 지렁이 구조만 가득했구나. 왜 이렇게 꾸물거리나 했는데 한 마리라도 살리려고 누구보다 바빴구나. 너의 세계를 나는 감히 예측할 수도 없다. 손바닥에 나뭇잎을 올려두고 집으로 향했다. 나의 마른 손 위에 고스란히 놓인 것은 나뭇잎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 말만 안 했어도 진작에 보이는 흙에다 두고 왔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 데나 버릴 수 없어서 나뭇잎을 둘 만한 곳을 이리저리 살폈다. 마침 길가에 커다란 바위들과 키가 낮은 나무들이 보였다. 그 각진 바위들 중에서 가장 평평한 바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바위 곁엔 똑같이 생긴 나뭇잎 친구들이 있었다.
이제야 마음이 놓여 다시 집으로 향하려는데 반대편에서 작은 몸집의 한 할머니께서 웨건을 끌고 빠르게 걸어오고 계셨다. 손주를 태우고 오시나 보다 했는데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가 안에 누워있었다. 아니 쓰러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날 것처럼 옆으로 풀썩. 모든 것이 고갈된 얼굴이었다. 할머니는 급하게 웨건을 끌고 건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는 반려견과 그곳에 사시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왔을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시든 할머니는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하실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