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관하여
마침내 젖을 끊었다. 첫째 아이를 15개월 먹이고 그 이듬해에 둘째가 태어나 다시 장장 24개월을 먹였다. 내 가슴의 쓸모는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위임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전혀 아쉽지 않았고 내내 행복했다. 아이와 살을 맞대고 교감하는 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그래서 아이를 곧 출산하는 친구에게 가능하면 직접 젖을 먹이라고 권하곤 했다. 엄마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아이가 느낄 가장 큰 안전함이라서. 나도 엄마의 모유를 오랫동안 먹었다고 한다. 크면서 엄마에게 사랑을 많이 느끼진 못했지만 젖 먹던 시절을 들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깊숙이 느껴졌다. 불안한 날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발견할 때면 그때 엄마가 나에게 충분히 젖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랑의 반대편에는 초라해진 몸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낸 뒤에 생기를 잃은 가슴이 거울 앞에 있었다. 내 젊음이 납작해졌다. 여전히 내 몸은 여성인가, 내 몸은 아름다울 수 있는가에 관해 생각하면 눈썹도 눈꼬리도 입꼬리도 모두 아래로 내려갔다.
남편은 이번에도 '네가 가장 이뻐. 난 네가 너무 좋아.'라며 위로했지만, 그의 말은 도움 되지 않았다. 남편, 냉정하게 말하자면 타인. 타인의 시선과 생각은 그저 타자의 것일 뿐이다. 누가 아무리 좋은 말을 늘어놓아도, 누군가 너 정말 매력 있고 이뻐라고 할지라도, 나 스스로가 알지 못하면 소용없는 말이다. 이미 상실을 겪은 나로서는 여성의 몸이라는 실체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여성으로 존재하게 하는 몸, 나로 존재하게 하는 몸에 대해 면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젊음 하나 믿고 돌보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를 기르는 땅으로서의 몸을 마주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후로 며칠간은 거울 앞에서 아예 눈을 돌려버렸다. 몸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나이 듦을 실감하며 변화하는 몸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흐린 얼굴로 며칠을 보냈다.
얼마 후, 생일날이 되었을 때, 남편은 진한 미역국을 한 솥 끓였다. 어쩜 그렇게 맛있게 끓였는지 마음까지 사르르 녹았다. 이젠 미역국을 보면 생일날이 아니라 아이 낳은 날만 떠오른다. 고생한 몸에게 주는 선물 같은 음식. '태어나서 고마워', '태어나서 축하해' 보다 '아이 낳고 기르느라 고생했어'의 의미를 품게 된 뭉클한 음식.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옆에서 낄낄 거리며 미역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잘 자라준 아이들이 기특한데, 이상하게도 그새 잃어버린 젊음을 생각하면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문뜩 엄마도 생각나고 돌아가신 할머니도 생각났다. 그녀들의 몸도 함께 떠올랐다. 엄마와 할머니는 몸이 달라질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왜 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아무렇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묻어두기만 했을까. 왜 항상 너희를 보면 뿌듯하고, 너희를 먹일 때, 너희가 잘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만 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제야 궁금해진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 엄마와 할머니는 모순적인 모성애의 결을 보여주었다. 자식들 보는 낙으로만 살면서 엄마와 할머니는 매번 나와 동생을, 그리고 아버지를 아프게 했다. 내가 이렇게 너희를 먹이고 키웠으니 내 옆에서 떠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자주 보냈다. 우리가 멀어지면 화를 내고 모진 말을 했다. 젖을 내어준 사랑은 자신의 상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시가 되었다. 우리는 죄책감에 다시 돌아갔다. 엄마와 할머니는 가슴이 1mm씩 늘어질 때마다 자식에게 더 집착했다. 어쩌면 그들은 나처럼 상실감에 몸서리치도록 아팠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것을 자식으로 채울 수 없음을 알아야 했다.
나는 그들을 떠올리며 주방에 섰다. 싱크대 앞 창문 밖을 바라보다 벨벳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를 틀었다.
sometimes I feel so happy
sometimes I feel so sad
이 노래가 왜 그렇게 슬펐을까. 어두운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설거지를 자처했다. 하얀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거품을 낼 때 내 옆에 주름진 노인의 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너 예뻐. 지금도 젊고 예뻐."
코와 눈이 뜨거워지고 곧이어 입이 일그러졌다.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이마를 욱신거리며 울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더 주름지고 더 굽어지면 지금을 떠올리며 그때도 젊었는데 뭐가 그리 서글펐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먹먹하고 잃기만 한 것 같은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먹이고 기르며 쳐지기를 각오한 내 가슴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은 머물러보기로 했다. 상실감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머물러서 충분히 느끼고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몸의 변화도 받아들여지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성인 게 달라지지 않겠지.. 몸의 상실을 겪는 동안 각종 자잘한 질환들이 생겨났다. 몸살, 염증, 면역질환, 충치..
지난겨울, 동네 나무들이 갑작스러운 폭설로 부러지고 쓰러졌다. 하늘에서 그렇게 무거운 눈덩이가 내릴 줄 몰랐던 나무들처럼, 내 몸도 젊음만 믿고 위로 오르기만 하다가 엄마라는 운명적 과업을 만나 부러지고 쓰러졌다. 지금은 다시 몸을 세워야 할 때구나 중얼거리며 치료하고 재생하는데 힘을 쏟았다.
아픈 것들이 나아지고 몸의 감각을 다시 되찾을 무렵, 노인의 내가 다시 찾아왔다.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엄마, 아내, 여성. 다시 너의 몸을 되찾아가고 있구나. 대지가 변하듯 너의 몸도 계속 변해가겠지. 때로 슬프겠지만 네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아."
그녀 앞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젠 거울 앞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어깨를 펴고 꼼꼼히 몸을 살피며 언제나 내 몸은 여성이라 말하겠다고.
젖을 먹이는 동안은 아이와 한 몸이었는데, 이제 젖을 떼니 아이와 나는 독립된 객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의 몸을 알아차림으로써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진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거울 앞에서 나를 마주하고 몸을 인식하듯 아이들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싶다.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빈 곳은 없는지, 메마른 곳은 없는지 살펴야겠다. 몸을 살피고 돌보는 일은 나와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 마중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