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관하여
대학생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와 한바탕 싸우고 있었다. 엄마와 싸우는 이유는 매번 같았다. 잔소리 좀 그만해 달라는 것과 말이라도 나를 좀 격려해 달라는 요구가 늘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잔소리도 좋게 말해 잔소리지, 불만과 핀잔, 짜증이 잦았고, 진심으로 지지하고 이해해 주는 말은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따지고 들면 엄마는 절대로 내 말을 수용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은 잘못이 없으며, 내 말이 피곤하다며 끊어버리고 회피하기 바빴다. 자식에게 온전한 이해와 사랑을 주지 못하는 엄마에게도 정서적으로 사정이 있었겠다만. 그것을 모두 살피기에 나는 역부족이었다.
그날도 같은 패턴으로 다투다가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내게 말했다.
"네가 문제야, 네가."
말문이 막혀서 한 마디도 못했다. 내 문제라니. 한 마디도 받아들이지 않는 본인에게는 일절 잘못이 없고 그저 내가 문제라니. 엄마에게 완전히 배신감을 느꼈다. 엄마는 내 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갈 곳을 잃었다. 마음 언저리에서는 외로운 어린아이가 언제나 밖을 서성이고 배회하며 편히 앉을자리를 찾아다녔다.
살면서 가끔씩 그날의 말이 불쑥 솟아올라 나를 치곤 했다. 그 말은 나를 보잘것없는 문제덩어리로 만들었다. 비참함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문제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 포장하기 바빴고, 그래서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내가 너무 많은 요구를 했던 걸까. 엄마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걸까. 내가 이해심이 부족한 건가. 미안해. 그랬구나. 이 말들이 그리도 어려웠을까.
그땐 몰랐다. 말로 받은 상처가 미래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남편은 논문을 쓰느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을 때가 많았다.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던 적이 있다. 하루 종일 애보고 정신없이 집안일하는 동안 방에서 논문 쓰고 나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아서.
논문 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 잘 안다. 그게 얼마나 기 빨리는 일인지 안다. 진땀 빼서 하나 완성하면 애 낳은 것 마냥 심신이 지친다. 남편도 애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을 살피고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결국 짜증을 냈고 큰 소리로 싸웠다. 실은 처음이 아니었다. 여러 번 남편에게 같은 일로 불만을 표하고 짜증을 냈다. 남편도 이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억울한 목소리로 화를 냈다.
"넌 왜 내 발목을 잡아."
"내가 무슨 발목을 잡는다는 거야."
"네가 논문을 못 쓰게 하고 있잖아."
"너도 날 돕지 않잖아."
"내가 나 혼자 좋자고 이러니."
"나 너무 힘들어. 나 혼자 다 하고 있잖아. 넌 게을러."
"나도 힘들어. 난 고생 안 해? 너 힘든 거 알아."
"아니! 넌 몰라."
"왜 모른다고 생각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네가 원하는 모습이 있는 거야? 대체 내가 뭘 안 했니."
"넌 혼자 안에만 있잖아. 애들 보지도 않잖아. 네가 뭘 했는데."
눈물이 터지고 감정도 폭발했다.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네가 문제야."
예전에도 들어봤던 그 말.
"네가 모든 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 짜증을 내버리는 거. 그리고 비난하는 거. 그게 네 문제야.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면 되잖아. 내가 뭘 해주길 바라는지. 그런데 넌 짜증을 내고 나를 비난해."
같은 말이었지만 달랐다. 엄마의 말은 온통 내가 문제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지만, 남편의 말은 나의 미성숙한 표현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여보. 나 지금 좀 힘든데 잠깐 아이들 좀 봐줘.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분명히 남편도 할 일을 하고, 집안일을 분배해서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그럼에도 짜증과 비난으로 남편을 깎아내리고 아무것도 안 한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감정을 남편도 똑같이 겪게 했다.
아이들이 한 살, 세 살일 때 일이다. 그때 나는 마치 좁고 깊은 골짜기에 빠져서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한없이 캄캄하고 가라앉기만 했던 것 같다. 엄마의 자리가 이렇게 외롭고 힘들 줄 몰랐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만 우울해지고 화가 났다. 지나 보니 견뎌내야 할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골짜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편에게 감정을 던지고 버렸다.
남편도 울었다. 나의 감정들이 얼마나 자신을 상처 입히고 있는지 설명했다. 남편이 겪은 것들은 고스란히 내가 겪었던 것들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무기력했을까.. 아. 그런데 내가 엄마랑 똑같이 하고 있다니. 소름 끼치게 내가 싫고 사라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날을 떠올리며 다른 결말을 쓰고 싶었다. 엄마가 아무것도 받아주지 않고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던 그날. 엄마에게 바랬던 것을 내가 해보기로 했다.
"여보. 미안해. 내가 도와줘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미안해. 내가 상처를 줘서 미안해."
문득 그날의 엄마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엄마.
엄마가 힘든 거 알지만 나도 견디기 어려워.
나도 엄마가 필요해.
그런데 참고 있어.
엄마한테 사랑받고 넓은 마음 갖고 싶은데..
지금 내 마음은 너무 작고 약해.
나를 좀 격려해 줘.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앞으로도 잘 될 거라고
한 번만 말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