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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by Artist K

2014년 7월.


1. 그와 함께 독일에 가서 모든 가능성을 찾아본다.

2. 여행하듯 즐길 것.

3.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전시를 잘 마무리할 것.

4. 잘 정리하고 떠날 것. 독일로? 서울로?

5. 희망을 잃지 말 것.


당시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혀있다.

절박한 상황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비자를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3개월이 약속된 아티스트 레지던스였기 때문에 이후에 학교에 입학하거나 취업하지 않으면 비자를 연장할 수 없었다. 2013년 9월에 네덜란드에 왔다가 비자 문제로 12월에 울면서 돌아가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어서 더욱 불안했다. 한국에서 모든 서류는 준비해왔지만 이민국에서 상담해본 결과 네덜란드에 머물 수 없었다. 당시에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에게 내 문제를 상담했는데 그가 베를린을 추천했다. 그는 베를린에는 아티스트를 위한 비자도 있고 외국인 아티스트에게 제법 호의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은 예술가를 위한 도시. 예술가들이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베. 를.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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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남겨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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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좋았고 마냥 신기했고. 낯설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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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서 주소를 등록하고, 어학원을 찾아다니고 은행과 보험 문제를 해결하고. 단 3일 안에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사실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당시에 나는 네덜란드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시를 마치고 다시 1박 2일 일정으로 베를린에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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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베를린의 여러 곳을 방문했고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비자에 대한 압박도 심했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 반. 설렘 반 이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혼자서도 씩씩하게 헤쳐나갔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나는 이만큼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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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280.JPG 커리부어스트-베를린의 상징적인 음식-소세지에 커리가루

나와 친구는 새벽 3시부터 이민국 앞에서 기다렸다. 당시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학생이 무조건 일찍 가야 한다고 해서 서둘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추운 새벽에 문이 굳게 잠긴 이민국 앞에서 노숙자처럼 기다리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경찰이 지나가다 왜 여기 있냐고 묻기도 했다. 어쨌든 첫 번째로 번호표를 받고 상담을 했고 3개월 연장 비자를 받았다. 3개월 안에 부족한 서류를 보충해서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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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우리는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정말 네덜란드를 떠나는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너는 네덜란드에. 나는 베를린에.

그때의 나에겐 베를린이 너무도 크고 황량하게 느껴졌다. 네덜란드에서 내 집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나는 다시 길 위에 내쳐진 기분이었다. 아름답고 외로운. 그 길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