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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by Artist K

2014년 8월.


베를린의 아티스트 레지던스에 가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레지던스 이름. T**T. 제발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베를린은 예술의 도시로 알려진 만큼 그 장점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러 곳의 레지던스를 알아보다가 그 곳에 가게 되었다. 뭐든 다급하게 결정하면 오류가 나게 되어있다. 내 실수는 그곳의 규정을 대충 읽었다는 것. 그래서 숙소의 비용만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레지던스의 디렉터에게 당당하게 6개월 지내겠노라 말했었다. 그런데 그 디렉터가 프로그램비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면서 한 달에 1,000유로가 넘는 비용을 내게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경제적인 사정상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디렉터라는 독일 여자가 내게 더이상 취소가 안된다고 한 것이다. 규정을 잘못 읽은 것은 내 실수이므로 무조건 돈을 내고 머물러야 한다고, 아주 강력하게 내게 주장했다.

내가 돈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아티스트라면, 글쎄 그들이 '파는' 경험을 비싼 돈 내고 살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녔기에 지금도 화가 난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어리석게도 간신히 돈을 나누어 내면서 한 달 동안 그곳에 있진 않았겠지.

나는 한 달만 머무르기로 결정했었다. 당시에 딱히 갈 곳을 못 찾았기 때문이고 앞이 캄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독일 아티스트를 만나 내 사정 얘기를 할 수 있었고, 그가 다른 나라에 지내는 동안 그의 아파트에서 6개월 머물 수 있었다. 어쨌든 황당한 레지던스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다른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아티스트들에게 어줍지 않은 경험을 판답시고 비싼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곳이 많으므로 모두 조심하길 바란다. 물론 그곳에서 좋은 경험을 얻은 아티스트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온 대부분의 작가들은 나와 다르게 그 곳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3개월 정도 머문 작가들이 대부분 그 디렉터와 싸우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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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천신만고 끝에 2년의 비자를 받았고 6개월을 지낼 아파트도 생겼다. 정말 작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혼자 지낼 수 있고 게다가 작업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워낙 깨끗하지 않았던 터라 내게 빌려준 작가도 작업실로 이용하는 곳이라고 했다. 난 잠도 자야 했기에 최선을 다해 청소하고 작업도 했다. 공간이 넓지 않아 큰 작업을 못한 점이 좀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위치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시내의 중심이었고 그 당시 다니던 독일어 학원에도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다만 세탁기가 없어서 코인 세탁기가 있는 곳을 찾아 엄청 헤매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집 바로 앞 호스텔에 공용 세탁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또, 독일어를 배우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점점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아갔다. 하지만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재료비랑 식비 등을 따져볼 때 학원을 다니는 게 내겐 조금 무리가 되었고, 또 마침 12월이 되어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영어만 사용한다.


그 뭣 같은 레지던스에서 또 하나 건진 것은 영국인 디렉터가 운영하는 갤러리를 알게 된 것이다. 당시 그 독일 디렉터가 내게 아시안 아티스트를 위한 오픈콜이 있으니 지원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지원했고 디렉터와 인터뷰한 후 처음으로 베를린에 있는 갤러리에서 그룹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디렉터가 한국인 아티스트가 여기서 전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때 설렘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금방이라도 그림이 팔리고 곧 내 이름이 이 곳에서 알려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오프닝에 온 사람만 150명이 넘었다. 오프닝에서 한국 학생들을 만났고, 어떻게 여기서 전시하게 되었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온라인 오픈콜에 신청했노라고 조금 뿌듯해하면 말했던 것 같다.

그때 깨달은 사실 하나, 오픈콜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사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100개의 문 중에 한 두개의 문은 열린다는 사실.


당시 전시했던 작품과 함께 <예술의 전당> 매거진에 실린 글.

장경연의 <덧없는 길>에서 찾은 샹그리라여, 안녕!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알지 못하는 너의 죽음에서 우리는 정말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묘비명에 새겨진 태어난 날과 사망한 날을 기록해둔 숫자를 눈여겨본 적은 없었던가? 장례문화는 제각각이지만, 기록문화가 형성된 이래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 이름과 살다 간 날짜를 빠짐없이 기록해주는 것이다. 현재 베를린에서 작업하고 있는 켈리장(1978년생) 작가는 네덜란드의 레지던시 ‘예술 요새(Kunstfort)’에서 작업하던 당시, 주변에서 발견한 돌비석에 기록된 숫자들을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했다. 레지던시 주변을 둘러싼 Sluipeg gravestone path라는 이 길은 Van Houwelingen이라는 네덜란드 아티스트가 사람들에게 기증받은 비석들을 차례차례 바닥에 깔아 만든 죽음의 발자취였다. 작가는 스크래치 방식을 이용해 비석들에 새겨진 숫자를 뜬 후, 네덜란드의 지도 위에 그것들을 올려놓았다. 마치 네덜란드의 길 위를 걸어간 그들의 발자취처럼, 숫자로 기록된 지상에서의 삶은 찰나의 순간으로 기록된다. 정물화(Still-Life)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예술적 취향에 작가가 숫자로 남긴 삶과 죽음의 덧없음은 묘한 매치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 시청에서는 작가의 이 <덧없는 길(The Ephemeral Path(No answer among the numbers))>(273 x 210cm, collage on canvas, 2014)<도판 1>을 반기며 소장품으로 걸어두고 있다.

희로애락이 가득한 지상에서의 시간이 지나면 묘비명에 숫자로 남는 당신의 생은 참 짧은 순간일 뿐이다. 작가는 “죽은 자들이 숫자로 남긴 세월에서 순간 같은 지상낙원을 보았다”고 말한다. 내 삶에는 없는 지상 낙원이 지나간 당신의 삶에서는 진정한 지상 낙원 같다. 최근 작가는 독일의 한 프리마켓에서 그림이 끼워진 낡은 액자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곤, 두 가지 버전으로 재작업을 시도했다. 그중 한 가지는 작가 미상의 이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후 캔버스에 프린트해서 그 위에 회화적인 붓터치를 가미한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낡은 액자에서 떼어낸 그림 위에 글씨가 쓰인 띠를 콜라주한 것이다. 이 띠는 중세 종교 그림들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 위에 성경 글귀를 쓴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작가는 “떨어진 꽃잎에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즉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정지된 시간이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어 담겨있다”고 말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기억하는 순간, 우리는 삶에 대한 희망이 불끈 솟아오른다. 꽃으로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기대하는 이 작품, <그곳에 나 머무를 것(Stay in it)>(2014)<도판 2>은 그래서 정물화가 아닌 ‘순간’의 응축된 풍경화가 된다.

샹그리라에도 가고, 무릉도원에도 가고, 폴이 부모와 함께 했던 온전한 기억에도 간다면, 기억의 천재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 우리의 현재는 달라지는 것일까? 작가는 <돌아갈 수 없는 길(I lose my self in paradise)>(196 x 147cm, ink on cloth, 2007)<도판 3>로 기억 찾기 놀이를 시도한다. 2004년 <화룡사 가는 길>을 그린 후, 그때의 잃어버린 기억을 <돌아갈 수 없는 길>로 재탄생시킨다. 화룡사로 가는 길은 여전히 지상에 남아있지만, 기억 속의 길은 뒤죽박죽 재편집된다. <돌아갈 수 없는 길>에는 그때의 추억이 미로처럼 엉키며, 시간의 순서를 파괴시킨다. 기억을 잃고 시간을 비트는 것은, 아쉽지만 건강한 힘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푸네스의 것과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시간이 아닌 현재의 순간을 살 수 있다. 지상 낙원도 트라우마도 모두 기억하는 그 추억 그대로 오늘을 산다면, 멜린슨처럼 샹그리라를 떠나고 싶을 것이고, 끝없는 첫사랑만 되풀이할지 모른다. 샹그리라는 티베트 방언으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의미를 품고 있다. “지상 낙원 찾기 프로젝트”는 중국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 여기에서 바로 성공할 수 있다. 내 마음속의 샹그리라여! 글: 미술비평가 , 김정현


첫 그룹전에서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따로 연락이 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났다. 홍콩에서 온 젊은 작가 스노이. 이름처럼 얼굴도 예쁜 작가였다. 그 당시 심적으로 지치고 외로웠기에 좀 절실하게 친구를 찾았던 것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1년 먼저 베를린에 와있었기 때문에 내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 우선 공감대가 형성된다. 아. 너도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구나..


10월에 '아시안 위크(Asian Week)'그룹전 이후엔 계속 다음 단계를 위해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겨울은 혹독하기만 했다. 오후 3시면 밖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쾌적하지 않은 아파트는 더더욱 기분을 칙칙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잘 견뎌내었다고 생각한다. 그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 속에서도 어쩌면 지금보다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물리적인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내 마음이 환경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오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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