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연애의 행방>으로 처음 접했다. 읽은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작품 속 배경인 스키장의 모습이 생생할 만큼, 히가시노 작품은 흡입과 몰입을 동시에 끌어내는 힘이 있다.
에세이 또는 정보성 도서를 선호하던 내게 소설의 매력을 일깨워준 작가. <나미야 잡화점>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오랜만에 고른 히가시노 작품 <가면산장 살인사건>
추측했던 것에서 벗어나는 반전의 결말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영화 <쏘우 1>의 반전 요소와 비슷하게, 당연히 배제했던, 사실 생각지도 못했던 요소가 답이었음을 깨달을 때쯤 만화처럼 머릿속에 느낌표가 느껴졌다. '!!!'
제1막 무대
도시아키가 말을 받았다.
"계속 긴장하다 보면 신경이 지칠 수도 있잖아. 나도 러시아워에 운전하다가 나도 모르게 졸았던 적이 있으니까."
그 질문에 게이코가 뭐라고 대답할 듯하다가 도로 입을 닫았다. 그 이유를 다카유키는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모미와 친한 사람이라면 그런 일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그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거기에 해당되므로.
"사람은 남 얘기에는 냉정할 수 있지만,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죠. 도모미가 교통사고라는 흔한 이유로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말입니다. 아마 게이코 씨도 그런 심정 아닐까요."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다고 할까... 연애나 결혼 상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요컨대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결례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다카유키는 그녀가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남녀 불문하고 이런 표정을 보여주는 사람을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을 견뎌 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성취하려 하지 않는다. 힘든 상황에 처하면 우선 책임을 전가하고, 그다음에는 포기를 하든지 무기력해질 뿐이다.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인 양 한다.
제3막 암전
"상상이 아니에요. 아버님도 운전에 그토록 예민한 도모미가 같은 실수를 두 번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리고 이득이 있어야만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죠. 원한이나 복수가 훨씬 강력한 에너지가 될 수도 있어요."
아무리 말려도 계속해서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게이코를 보는 노부히코의 눈에는 거의 증오라고 해도 좋을 만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라도 진실을 밝히려는 게이코의 태도는 그녀의 진지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다카유키는 왠지 그녀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제4막 참극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나.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유키에는 사촌 언니의 약혼자에게 마음을 둘 만큼 몰상식한 아이가 아니야."
"아니죠, 아버님. 그건 몰상식하다거나 정숙하지 못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인간이란 절실히 갖고 싶은 것을 위해서 때로는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행동도 하는 법이죠. 그리고 유키에 씨의 마음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지 않아요. 도모미에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하지만 지금까지 들은 얘기는 사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증거랄 게 하나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러니 어디까지나 사리 정연한 가설에 불과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