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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Dec 03. 2023

짧지만 강렬한 겨울왕국 크루즈

잘 못 된 여행 22 : 가성비 좋은 하룻밤 크루즈 체험

유레일 스칸디나비아 패스를 사느냐 마느냐


북유럽 여행을 결정하고 유레일 스칸디나비아 패스를 사느냐 마느냐로 고심했다.

결국 사긴 했지만, 서유럽 국가를 여행할 때처럼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유레일 스칸디나비아 패스로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여행할 수 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베르겐,  오슬로에서 스웨덴의 스톡홀름,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를 왕복할 때 유레일을 이용했는데 모두 긴 여정이었기에 침대칸을 이용하고 싶었다. 유레일 패스로는 현지 철도 웹사이트에서 예매가 안 됐다. 전화로 예약을 하거나 직접 역으로 가야 했다.

우리같이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화 예약은 당연 힘들다. 직접 역으로 가야 했는데 침대칸의 경우 좋은 위치는 웹사이트로 이미 팔려서 구하기 어려웠다. 좋은 위치는커녕 침대칸 자체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유레일 패스로는 열차가 떠나기 바로 직전까지 남는 침대칸이 있어야 예약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해 두 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앉은 채로 밤을 보낼 수 있는 몸과는 멀어졌기에 침대칸은 꼭 필요했다. 유레일 패스를 샀으니 뽕은 못 뽑아도 본전에서 손해를 볼 수는 없었기에 기차를 탈 때마다 간을 졸였다. 더 이상 젊은 체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유레일 패스는 구입하지 않는 게 좋겠다.


유람선을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꿈


오로라 관측의 최적기인 그믐이 슬슬 가까워져 오고 있어서 스웨덴에서 핀란드로 넘어가야 했다. 유레일 패스로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가려니 남은 여생을 다 사용해야 할 만큼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지도를 펼쳐 (모바일로 봤기 때문에 실제로 펼친 것은 아니지만) 보니 바닷길로 가면 스톡홀름과 헬싱키가 가까워 보였다. 알아보니 역시 크루즈가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핀란드 헬싱키를 오가는 '바이킹 라인 Viking line'과 '실야 라인 Silja line'이 있었다. '북유럽은 바이킹이지'라며 바이킹 라인을 예약했다.


https://www.sales.vikingline.com/find-trip/

http://www.siljaline.co.kr/tallinksiljas/web/product/search_main.php


어린 시절 TV에서 [사랑의 유람선]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을 때, 유람선을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꾸었더랬다. 세계일주 유람선을 타기엔 돈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처럼 내일은 없다는 듯 사는 사람들도 유람선으로 세계 일주는 넘사벽이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가는 크루즈의 가격은 좀 만만했다. 2인 1 객실에 2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북유럽의 높은 물가를 고려했을 때 하룻밤 호텔비 정도라고 생각하면 시도해 볼 만했다.

'금세 어두워지고 밤새 잘 건데 뭐 하러 돈을 써'라고 생각하고 inside 객실로 잡았는데 몇 만 원 정도 더 들여서 seaside로 했어야 했다. 이왕 쓰는 거 조금 돈을 더 들여서 발코니까지 딸린 방을 예약했어도 좋았을 거 같다.

크루즈는 처음이라 그렇게 클 줄 몰랐다. 배를 타기 위해 개찰구를 통과해서 화살표 대로 따라갔더니 면세점이 나왔는데 규모가 커서 거기가 배 안인 줄 몰랐다. 여객선 같은 크루즈가 이렇게 큰데 세계일주를 하는 크루즈는 정말 어마무시하겠다.

면세점에는 우리 인생의 동반자인 술이 엄청 많았다. 엄격한 금주 정책으로 맥주 한 병을 사려면 은행 대출을 내야 할 정도로 술값이 비싼 북유럽에서 주세가 빠지니까 이렇게 저렴할 수가 없다!!! 아이슬란드에서 세상 물정도 모르고 면세점에서 술을 사지 않은 걸 땅을 치고 후회한 만큼 꽤 쟁였다.

예약한 표를 키오스크에서 찾아서 지하철 개찰구처럼 보이는 곳을 통과해 마치 비행기를 타듯 배로 향한다
배를 타자마자 면세점이 보인다. 어마무시하게 비싼 북유럽 술값에 세금을 빼니 이렇게 저렴할 수가!!

객실은 비즈니스호텔 정도 규모인데 미니냉장고의 음료들이 공짜다. 야호!

식사는 배 안에 있는 뷔페에서 먹었는데 술과 음료가 공짜였다. 맥주보다 와인이 비쌀 거 같아서 공짜 와인을 계속 마시다가 일찌감치 뻗었다. 내가 잠자는 동안 배 안에 있는 클럽에서는 음주가무의 신나는 한 판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내가 일찍 자버리는 바람에 박풀고갱은 한겨울 긴긴밤에 혼자 맥주를 마시며 밤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쏘리...

뷔페의 술이 실은 공짜가 아닌데, 뷔페 가격에 포함된 것인데... 공짜라고 착각하고 많이 마신 여파는 혹독했다. 다음날 박풀고갱이 헬싱키에 도착하는 장면을 갑판에서 보자고 했는데, 컨디션 난조로 짐을 챙긴다며 따라 나가지 않았다.

박풀고갱이 전해준 광경은 인생에 다시 못 올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헬싱키 항구에 배가 가까워질수록 해수면이 얕아져서인지 바다 표면이 얼어 있었는데, 크루즈가 그 얼음들을 쩌~억 쩌~억 깨부수며 전진하더라는 거다. 실로 장관이었다고 한다.

북유럽 여행은 겨울보다 여름에 많이 가는 것 같던데, 겨울에 가면 바다가 얼어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는 게 차별점인 거 같다. 여행 비용이 만만치 않은 지역인 만큼 이제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장관을 놓쳤다는 게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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