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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Dec 31. 2023

겨울엔 가까운 겨울왕국으로

잘 못 된 여행 24 : 일본 어디까지 가봤니? 1편-비에이

안 그래도 추운 겨울에 무슨 겨울 왕국이냐며 따뜻한 나라를 선호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겨울이니까 설국을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비자가 없어서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우리가 경험한 일본의 겨울왕국은 다음과 같다.


- 홋가이도 비에이

-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배경인 기후현의 히다, 다카야마, 시라카와고

- 도야마 현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


홋가이도는 삿포로 눈 축제 기간인 2월 초에 많이 간다고 하는데 11월부터 3월까지는 설국이라고 하니 북적거림을 피해 가는 것도 방법이겠다. 우리는 2015년 12월 중순 즈음에 처음 갔는데 성수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그런지 겨울 왕국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애플의 맥 제품이 제공하는 배경화면 중 청의 호수(아오이이케 青い池)에 가보고 싶었다. 아오이이케를 가려면 일단 비에이로 가야 한다.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까지 기차로, 아사히카와에서 비에이까지 버스로 갔다.

비에이에는 마일드 세븐 담배 광고로 유명한 나무가 있다고 해서, 기차역 코인 로커에 짐을 넣고 들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 비에이의 겨울

아무도 밟지 않은 눈에 첫 발자국을 내고 싶은 욕망은 왜 항상 생기는 걸까? 여하튼 사방이 욕망 충족의 장이었다.

겨울 왕국을 봤으니 초원의 모습도 보고 싶어서 이듬해인 2016년과 2023년 7월에도 비에이를 찾았는데 여름도 너무 좋다.

▲ 비에이의 여름

청의 호수 때문에 갔지만 비에이의 언덕 풍경도 너무 좋았다. 눈밭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숙소를 잡은 시로가네로 가는 버스 시간에 맞추어 다시 비에이 역으로 왔다. 하교하는 어린 친구들의 뒷모습이 여기가 일본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 비에이 시내

청의 호수 근처 숙박 시설을 알아보니 시로가네라는 곳에 온천 호텔이 저렴한 가격에 나와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전혀 계획하지도,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택이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때가 있다. 너무 소중해서 혼자 알고 싶어도 자랑하고 싶은 욕망을 못 이겨 이야기하게 된다. 시로가네의 온천호텔이 그러했다.

https://maps.app.goo.gl/FDPJGEbYr6iPBeEV8

숙박 예약 포털에서 우연히 선택했을 뿐인데 알고 보니 관광 명소인 흰수염 폭포(시라히게노다케 白ひげの滝) 바로 위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우리는 목요일 밤에 묵었는데 평일이고 성수기가 아니여서였던지 야외 온천을 독탕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눈을 맞으며 단독 온천을 즐겼는데 눈을 맞으며 온천하는 맛! 해 봐야 안다. 

노천 온천 바로 아래가 흰수염폭포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면 떨어지는 물줄기가 보인다. 폭포 소리를 들으며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기분이란… 이곳이 천상이다!

▲ 시로가네 온천호텔 노천 온천을 전세 내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 식사로 스키야키를 먹고 술집을 찾아 밖으로 나왔는데 보이는 곳이 별로 없었다. 겨우 식당 하나를 찾았는데 林道食堂이라고 쓰여 있었다. 술안주로 시로가네 라멘을 시켜서 먹었는데 궁채 같기도 하고 고사리 같기도 한 나물이 듬뿍 들어 있어서 식감이 좋고 맛있었다. 주인장은 당일 낚시한 것이라며 생새우를 서비스로 주셨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이런 선물을 받으면 두고두고 잊지 못하게 된다.

▲ 시로가네의 어느 식당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딱 크리스마스트리 비주얼의 전나무가 보인다. 온천 후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니 일본식과 양식을 조합한 한상이 떡하니 차려져 있다. 조식에 감동받아서 이듬해 여름에도 이 호텔을 찾았는데 여름에는 숙박객이 많아서인지 뷔페식으로 바뀌어 있어서 아쉬웠다.

▶︎ 왼쪽은 유모토 시로가네 온천 호텔 조식

조식을 먹고 호텔 밖으로 조금 걸어 나오니 흰수염폭포가 보인다. 에메랄드 빛 물 색깔이 너무 영롱하다. 

▲ 흰수염 폭포, 중앙 오른쪽 윗부분에 우리가 묵은 유모토 온천 호텔이 보인다
▲ 흰수염폭포, 보정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물빛이 너무 영롱하다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드디어 우리를 이 여행으로 이끈 '청의 호수'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정류장 아래에 있는 시냇물에 노루가 보인다. 아... 이런 자연환경이라니... 정말 멋진 곳이다!!!

▲ 시로가네 버스정류장 아래 시냇물에서 물을 마시는 노루

버스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니 청의 호수 안내도가 보인다. 거기서 좀 더 걸어 들어가면 청의 호수다. 눈이 많이 내린 탓에 우리가 기대했던 애플 제품의 맥 배경화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눈인지 물인지 모를 어딘가에 몸의 절반을 담근 야윈 나무들이... 삐죽삐죽 서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 겨울의 청의 연못

이듬해 여름과 2023년 여름 청의 연못을 다시 찾았는데 빛과 각도에 따라 각각의 청색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청의 연못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여름의 흰수염폭포 역시 겨울의 의젓함과는 사뭇 다른 기세를 보여주었다.

▲ 여름의 청의 호수
▲ 여름의 흰수염폭포

청의 호수를 보겠다는 미션 클리어!

다시 비에이 역으로 가서 삿포로행 기차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는 대신 비에이 역까지 걸어기로 했다. 호기롭게... 걷기 시작했으나... 3분의 1 정도를 남기고 버스를 탔다. 진작 버스 탈 걸... 하는 마음보다 그래도 설국을 뚫고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더 컸다. 뿌듯!

아... 비에이... 시로가네... 또 가고 싶다.

다음 겨울왕국인

-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배경인 기후현의 히다, 다카야마, 시라카와고 여행 이야기는 '여행은 거들뿐 모든 게 사랑' 매거진에 쓴 두 글로 갈음한다.

https://brunch.co.kr/@na-show-mon/16

https://brunch.co.kr/@na-show-mon/33

- 도야마 현의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 여행 이야기는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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