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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Dec 03. 2019

사랑해도 터치할 수 없는 영역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 미츠하의 고향인 줄 몰랐네

<산>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그 만화 때문에 일본의 알프스를 가봐야겠다는 박의 소망이 있었다.

산악인이냐고? 그럴리가!

제주 한라산의 가장 무난한 코스라는 영실코스도 도중에 포기한 저질 체력이다.

그럼 어떻게 <산>을 오르냐고?

신호타카(新穂高) 로프웨이. 일본 알프스를 오를 수 있는 케이블카가 답이다.

최와 박은 신호타가 로프웨이를 타기 위해 다카야마(高山)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다카야마는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신호타카(新穂高)에도 높을 고(高)가 들어간다.

한겨울 높은 산에는 당연히 눈이 오겠지. 도착하던 첫날부터 눈이 내리고 쌓이기 시작했다.

근데 와도 너무 온다.

시라카와고
인적이 드문 시라카와고 전나무 길


케이블카 현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이제나저제나 했지만, 눈은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눈보다는 바람이 잦아 들어야 탈 수 있다는데 평지의 바람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는데 산바람은 센가 보다.

목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하릴없이 다카야마 주변을 어슬렁거릴 수 밖에...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시라카와고(白川郷) 마을이 다카야마 근처에 있다길래 버스에 올랐다.

웬만하면 집을 안 나설 것 같은 날씨에도 시라카와고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당연하지. '시라카와고'인데!

알고보니 시라카와고는 엄청 유명한 관광지였다.

미안했다. 몰라봐서.

버스에서 내리니 마침 배도 고프고 '이로리(いろり)'라는 식당이 운치있어 보여 들어갔다.

두부 전문점인지 두부 요리가 많았다. 맥주를 시키니 안주로 두부와 된장이 나온다. 안주로 나오는 일본 된장에는 보리 등이 들어있어 짜지 않고 맛있다.


이로리 식당 (이로리 いろり는 마룻바닥을 사각형으로 파서 난방/취사용으로 불을 피우는 장치라고 하는데 아래 사진이 현대식 이로리인 듯하다)


배도 부르고... 슬슬 마을을 돌아볼까?


계속 눈은 내리고... 눈이 내린다는 것은 기온이 영하라는 것일텐데 어느 집에서 바닥으로 물을 흘려보내 실개천이 되었다. 스케이트장이라도 만들려는 건가. 어? 그런데 물에서 연기가 폴폴 올라온다. 뜨거운 물이네?

대중목욕탕이었다. 24시간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는 것인가?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얼텐데? (별 걱정을 다한다.)

최는 박에게 이런 마을에서 목욕탕을 가보는 것도 추억이 될테니 딱 1시간만 목욕을 하고 나오자고 한다. 도리질 치는 박. 그럼 30분? 역시 도리질이다.


최는 개코다. 냄새에 민감한데 특히 악취에 민감하다. (개코인데 좋은 향기보다 악취를 빨리 캐취한다는 건 비극이다.)

직장동료나 아는 사람중에 땀냄새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남자들인데...  최는 결혼한 남자가 땀냄새가 심하면 항상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와이프가 알려주지도 않나?' 싶었다.

결혼 후 의문을 풀었다. 남편의 샤워와 목욕은 와이프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남편이 잘 안 씻어서 각방 쓴다는 친구도 있다.

박은 최와 각방을 쓸 수는 없어서 최소한의 씻기를 하고 있다. 샤워 대신 겨드랑이만 씻는다거나 속옷만은 갈아입는다거나..  술 취한 날 가끔씩 발씻기를 잊어버리는 날도 있지만 최가 각방 선언으로 위협하면 낼름 씻으러 간다. 어쩌리? 각 방을 쓸 각 방이 없으므로... (박도 참 애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물에 함박눈이 몸을 녹이는 것이 부러웠지만 최는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시라카와고 마을에는 몇몇 전통 농가를 개방하는데, 입장료를 내면 들어갈 수 있었다. 2017년 당시, 어른 300엔. 박은 별생각 없었겠지만 짠돌이 기질이 있는 최는 '시골집 한 번 들어가보는데 3천원 돈이라니'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올 지 알 수 없으므로 지갑을 연다.

최와 박이 들어간 집은 칸다씨네 집(神田家)이었다. 옷에 쌓인 눈을 터는 빗자루가 입구에 걸려 있다. 눈이 계속 내렸는데도 입구의 눈은 잘 쓸려 있었다.

칸다씨네 집 이로리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운 조명에 이로리(いろり: 마룻바닥을 사각형으로 파서 난방/취사용으로 불을 피우는 장치 )가 돋보인다. 창가 쪽에는 웰컴 차도 준비되어 있다. 공짜니 마셔야지.

다른 농가도 한군데 더 들어갔는데, 거기서는 이로리 옆에 스님 같이 생기신 분이 잔술을 판다. 우리나라로 치면 모주 같은 건데 200~300엔 정도 했다. 입장료 300엔을 아까워했던 최는, 술값을 내는데는 0.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술맛은.... 두 잔 먹을 맛은 아니었다.


다시 베이스캠프인 다카야마로 돌아와 상황을 주시했지만, 신호타카 로프웨이를 탈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눈은 더 많이 내렸고, 다음 행선지인 게로 온천에 거금을 들여 료칸을 예약한 상황이었다. 결국, 일본의 알프스 <산> 등반은, 거의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실패했다. (최와 박은 2년 뒤인 2019년 5월  일본의 알프스를 기어코 등정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도 등정은 등정이니. ㅎ)

(괄호 속 사진 투척 : 2019년 5월 일본 알프스를 기어코 등정하고야 만 박)


최와 박의 당초 계획은, 일본에서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카타르를 들러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일본의 알프스 등정 계획은 실패했지만 다음 계획을 착수했다. 폴란드 항공(LOT)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최는 일본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야 방금 떠나온 다카야마 지역이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 미츠하의 고향이라는 걸 알게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너의 이름은>을 보게 되었고, 남자 주인공인 타키가 미츠하가 사는 곳을 찾아갔을 때, 히다규(飛騨牛) 마스코트가 나오는 장면을 보니 알겠더라.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과 히다규 마스코트들, 히다규 모둠

히다규는 고베규(神戸牛)보다 훨씬 기름진 것이 특색이었다. 어쩌다 히다규 전문점에서 히다규를 먹었는데 당초 뭘 알고 간 것이 아니라서 모둠으로 시켰다. 최는 고기맛을 잘 모르지만, 여태 먹어본 소고기 중에 울릉도 소고기와 고베규가 최고였다. 히다규도 그에 버금갈 만한 것이었지만, 부위에 따라 너무 기름진 것은 입에 맞지 않았다.

히다규가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길거리에서도 히다규 꼬치를 판다. 무려 1000엔!  600엔짜리도 있었지만 맛있는 게 비싸다는 건 진리이기에 과감히 주인장에게 1000엔짜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비싼 게 꼭 맛있는 건 아닌가 보다. 누군가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고 할 터이지만 최와 박의 입맛에는 역시 너무 기름졌다. 주인장이 사케를 함께 파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500엔짜리 따끈한 사케가 없었다면 안 좋은 추억을 안고 갈 뻔 했다. 꼬치 하나와 잔술 한 잔에 만오천 원인 셈인데... 차가운 거리에서 서서 먹을 값은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술값에는 유난히 둔감한 최와 박은 비싼 줄도 모르고 히히덕거리며 술과 안주를 먹어 치웠다.

히다규 꼬치집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방금 떠나온 여행지를 추억하는 일도 꽤 흐뭇했다. 하얀 눈과 대비되던 검고 오래된 목조건물들, 인적없는 시라카와고 숲에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와 하얀 눈 위에 찍은 첫발자욱, 지친 다리를 따뜻히 감싸주던 공짜 노천 족욕장, 갑자기 너무 쏟아지는 눈을 피하러 들어간 동네 찻집 사장님이 선물한 작은 수공예품(사장님은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 날적이에 붙여두는데 최와 박의 사진도 인화되어 붙어 있으리라. 손님이 드문 찻집이니 가능한 프로젝트 ㅎㅎ),  김치가 고명으로 올라간 라멘과 김치 달걀전을 야타이(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일, 눈길을 헤매다가 배고픔에 지쳐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세상에서 가장 맛대가리 없는 맥도날드 햄버거(일본에서 뭘 먹어서 그렇게 맛없기도 처음이었다. 일본은 기성품 햄버거 하나도 정성스레 만들 줄 알았는데 실망이었다), 히다다카야마 미식가 그랑프리(飛騨高山 グールメ グランプリ)에서 3년 연속 수상한 가라아게(から揚げ)와 토마토 라멘... 어째 쓰다보니 결국 먹는 거로 귀결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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