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리복주 박풀고갱 Jan 24. 2017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직모용 VS 곱슬머리용

아이슬란드 여행은, 부산, 일본,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거쳐 파리에서 카타르를 스톱오버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얼음 나라에서 사막까지!

아래와 같이 교통편을 준비했고, 56일 간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기내용 가방 2개로 짐을 꾸린 것을 스스로 대견해하며 뿌듯해했다. 


서울-부산 (이스타항공 : KTX 보다 싸다)

부산-후쿠오카 (고속페리 코비 : 쿠팡 1박2일 왕복승선권 구입 후 편도만 사용)

후쿠오카 3박 (숙박 Airbnb, 교통 산큐패스 티몬 구입)

후쿠오카-나고야 (호주 저가항공 제트스타 편도)

나고야-타카야마 (버스 편도)

타카야마 4박 (트래블스닷컴 비지니스호텔)

타카야마-일본 알프스 신호다카 로프웨이 (버스왕복, 케이블카)

타카야마-시라카와고 (버스 왕복)

타카야마-게로 (기차 편도)

게로-나고야 (기차 편도)

나고야-도쿄 (버스 편도)

도쿄-런던 (LOT 폴란드 항공 편도)

런던-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이지젯 항공 편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노르웨이 오슬로 (SAS 스칸디나비아 항공 편도)

노르웨이 오슬로-스웨덴 스톡홀름-핀란드 헬싱키 (유레일 스칸디나비아 패스)

헬싱키-파리 (노르웨지안 항공 편도)

파리-도하 (카타르항공 경유 도하 시티투어, 사막투어)

도하-인천 (카타르항공 경유 종착)


하지만 여행은 두 달을 훌쩍 넘기게 되었고, 조금씩 늘어나는 짐은 기내용 가방 2개로 버티기엔 마음을 계속 무겁게 했다.


여행전 3가지 단순한(?) 목표가 있었다.


1. 일본 알프스

2. 오로라

3. 파리에 사는 후배 방문


그러나 달성한 목표는 단 한가지뿐. (사실상 모두 실패라고 봐도 된다.)

(뭘까요?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궁금할 분들을 위해 추후 공개하겠다.)


여행은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최의 계약기간이 종료되는대로 출발하려고 했지만 1월 초에 박의 어머니 생일과 최의 아버지 기일이 있었다.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지난해 박의 어머니 칠순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지난해인 2016년 1월, 19년만인가 20년만인가의 폭설이 제주도를 강타했고, 많은 사람들이 제주 섬에 갇혔다. (그렇다. 제주도는 섬이었다. 제주가 섬이라는 걸, 제주에 갇히고 나서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박과 최도 그때 제주도에 있었고, 박의 어머니는 외동 아들이 불참한 칠순 잔치상을 받아야했다.

박의 어머니 칠순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있고, 설 차례도 함께 지내지 못하니 이번만큼은 생일잔치와 기제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박과 최는 가족 행사의 철저한 옵저버들이다. 

디폴트 값은 불참이라 그들이 참석하면 가족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넘어 감사까지 건넨다.

가족 행사를 주도하지 않을 뿐더러 참석이 불확실한 것 정도로는 무너지지 않는 신뢰 관계를 형성해왔고, 큰 일이 있을 때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리라 추측된다. 사실 진실은 모른다. '아님 말고' 정신으로 그렇게 추측하고 싶을 뿐. 

각자의 가족과는 각자의 신뢰 관계로 커버된다고 치더라도 결혼을 했는데 상대방의 가족에게도 가능할까?

운이 좋게도 최는 항상 가족들의 굳건한 지지를 받아왔다. 최의 가족은, 최가 이쁘니 박도 이뻐야했고 그렇게 스스로 최면이라도 거는 것 같았다.

박의 가족의 경우는 박이 이쁘니 최는 더 이뻤으면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아도 불같은 성격의 박과 살아주니 고맙지 않은가하며 스스로 위로하는 것 같았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우주가 행복하다. 노력해봐야 결국은 알 수 없을 게 뻔한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박의 어머니 생일잔치를 한 뒤, 최의 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부산에 가야했다. 

여행은 자연히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산지하철 중앙역에서 내렸다. 

박은 최의 집을 나설 때부터 택시를 타고 싶어했지만 짠순이 기질이 본성에 깔려있는 최는 자신의 텃밭인 부산에서 택시를 탄다는 게, 돈이 아까웠다. 지하철 내리면 금방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택시를 탔어야했다. 

알고보니 국제여객선터미널은 중앙역이 아니라 부산역이 더 가까웠다. 최의 고향이 부산이라고 최에게 길찾기를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열라 걸었다.

꼭두새벽부터 해돋이도 보고 한겨울에 땀이 나도록 걷기 운동은 잘했지만 출국수속이 빠듯했다.

핸드폰 정지도 해야하고, 배멀미 방지를 위해 아침밥도 사야하고 (속이 든든하면 멀미를 안 하는 체질이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일본 유심도 바꿔껴야 하고... 출국 전에 할 일이 많았다. 


그 와중에 박은 면세 담배를 꼭 사야했다. 

박이 평소에 피는 디스플러스가 면세점에 없었다. 대체품을 찾기 위해 지체되었다. 

최는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담배야 배안에서도 살 수 있다는데 밍기적거리는 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써 화를 누르는데 문득 4년전 유럽여행에서의 샴푸 사건이 떠올랐다.

바르셀로나 해변 근처 노천 카페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샴푸를 사야했었다. 최는 저렴하고 머리카락에 맞는 제품을 고르기 위해서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어와 씨름했다.이런저런 갈등 끝에 샴푸 구입에 성공했는데 박의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최는 이제서야 그때 왜 갑자기 박이 화가 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박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면세점에도 담배 종류가 별로 없는데 배 안에서의 선택지는 더 좁을 것이다. 

56일 간의 끽연 라이프가 달려있다. 바로 지금!!! 디스 플러스를 대체할 담배를 반드시 골라야 한다. 

최에게 샴푸의 종류가 곱슬 머리용인지 직모용인지가 중요한 것과 비슷한 문제일 것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사실 제대로 이해한 건지도 알 수 없다.

부산발 후쿠오카행 쾌속선


매거진의 이전글 대책없는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