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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Oct 17. 2019

대책없는 사랑

여행의 필요충분조건

여행을 떠날 때는 두 가지의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대체로 둘 다 없거나 둘 중 하나만 있어서 문제다.

바로 돈과 시간이다.


최는 박과 결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나 억대 연봉의 대기업 직원과 결혼한 것이냐고?

사업가나 대기업 직원이 여행을 많이 다닐 만큼 한가할 턱이 없지 않겠나.


결혼을 하면서 최는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 여행 경비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은 최와 박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어 놓았다.

저축은 다음 여행을 위한 목적일 뿐 최와 박에겐 노후 대책이란 없다.

늙어서 병들고 돈 없어 굶어죽을 것을 걱정하기보다 좀 더 젊었을 때 더 많이 못 놀았던 것을 후회할 거 같다.


45일간의 유럽여행 후, 최와 박은 다시 아이슬란드, 북유럽 등지로 56일 간의 여행을 떠났다.

최와 박에게 목돈이 좀 생긴 것이다.

최와 박은 현재 박의 어머니 집에 얹혀 산다.

얹혀 살게 되면서 다시 전세금의 여유가 좀 생겼다.

마흔이 넘어 부모님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도 박은 행복해 보인다.

자기중심적 낙천주의자이다.

타고난 불효자 기조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묘한 긴장을 해소한다.

딱히 마누라를 위해 그런 스탠스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운동권으로 살기 시작한 스무살 이후부터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았다.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고 해서 최 역시 특별히 힘들지 않다.

친구 엄마라고 생각하면 쉽다.


여행의 필요충분 조건 중의 하나인 여행비용이 이렇게 해결됐다.

그렇다면 시간은?

최는 십년 넘게 비정규직을 이어, 이어 살고 있으니, 계약이 종료되면 시간이 생긴다.

박은 마흔이 넘도록 이력서 한 번 안 써보고 운동권 언저리에 있다.

시간쯤이야 본인 맘대로 할 수 있다.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돈을 벌면 벌 수록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시간이 곧 돈인데 일을 안 하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떠난 여행은, 부산, 일본,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거쳐 파리로, 파리에서 카타르를 스톱오버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상한 동선이지만, 3가지 단순한(?) 목표가 있었다.


1. 일본 알프스 등정

2.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보기

3. 파리에 사는 후배 방문


위 3가지 목표는 (사실상) 모두 실패했다.

계획은 계획일 뿐, 결과는 계획대로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많다.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을 때 대부분은 쿨하(지 못하)게 포기하고 다음 계획을 세우게 되어 있다.

다시 세운 계획마저 실패하고 또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여행이고 인생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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