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의 노동절 집회
2013년 5월1일 파리의 아침, 프랑스 유학중인 후배의 남자친구, 현재는 후배의 남편이 된 J가 최와 박이 묵던 민박집으로 왔다. 메이데이 집회로 최와 박을 에스코트 하기 위해서 였다.(후배는 스페인 발렌시아로 요양 여행을 떠나고 마침 파리에 없었다.)
메이데이 집회가 열리는 바스티유로 가기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커피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민박집 근처의 모든 찻집과 식당, 상점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J의 말로는 노동절에는 모두 쉰다며, 커피를 마시려면 시내 중심가 관광지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상점들이 문을 다 닫으면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J는 '뭐가 불편한 거지?' 라는 뜻을 담아 프랑스남자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로 응답한다. 아.. 여기는 한국이 아니지...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프랑스는 쉬기 위해 일하는 거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오래 일하는 것 같지 않았다.
바스티유에 도착하자 길이 꽉 막혀 있다. 차벽이 아니라 사람으로.
한국의 집회라면 전투경찰과 경찰차부터 눈에 띄었겠지만, 프랑스 파리의 집회에는 헬멧과 방패로 완전 무장을 한 경찰도, 차벽도 없었다. 경찰은 집회하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두어 명 모여 서 있을 뿐이었다. (최근 프랑스 우파 정권하의 노란조끼 시위에서는 양상이 달라졌지만, 2013년 파리의 노동절 집회 풍경은 저러했다.)
게다가, 이건 뭐지?
술이다. 어라? 꼬치까지?
집회가 아니라 축제같았다. 시민들은 자유롭게 주장하고 싶은 바를 외쳤고, 행진하는 중간중간 집회차량에서 파는 모히토를 나눠 마셨다.
2015년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집회가 있었다. 어김없이 차벽이 둘러쳐지고,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등장했다. 최는 그날 일이 있어, 저녁 늦게서야 집회장으로 향했는데, 박의 양말과 운동화를 챙겨나가야 했다. 박은 물대포와 캡사이신 세례를 맞아 얼굴은 엉망이었으며 우의를 입은 상반신은 다행히 무사했으나 하반신은 무릎부터 푹 젖어 있었다. 카메라까지 물대포를 맞아 고장이 난 상태였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경찰은 카메라를 든 저널 쪽도 가리지 않고 가격한다고, 박이 말했다.
이날 칠순에 가까운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정수리를 정통으로 가격 당해 끝내 사망했다. 사람이 바닥에 쓰러졌는데도 물대포는 조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농민을 구하러 뛰어든 시민들을 향해서도 물대포는 계속 투하됐다.
쓰러진 농민과 그를 구하러 뛰어 들어간 시민들에게 투하된 물대포 장면은 박의 카메라를 비롯한 여러 카메라에 담겼지만,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서 쓰러지는 바로 그 시점이 없다고 경찰은 발뺌했다. 그냥 넘어진 건지, 물대포 때문에 넘어진 건지 알 수 없다며 과잉 진압이 아니라는 거다.
결국 농민이 정수리에 물대포를 맞아 쓰러지는 증거 영상이 발견되긴 했지만, 이것이 피해자가 증명해야 할 문제인가? 설사 물대포때문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거기다 대고 물대포를 정조준 하는 것이 국가란 말인가.
물대포 사용 지침이고 나발이고 따위는 모르겠다. 수만명의 국민이 국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 모였다. 국민이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듣기 이전에, 벽을 치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저지하는 것이 국가의 도리는 아닐 것이다.
경찰은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을 최소하기 위해, 시위대들이 수차례의 해산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불법 폭력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차벽과 물대포, 캡사이신은 불가피했다고 한다. 한 여당의원은 미국 경찰이 시민을 사살해도 10건 중 8~9건은 정당한 것으로 나온다며 그것이 선진국의 공권력이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경찰은 차벽으로 도로를 가로막으며 시민의 교통 불편에 앞장 섰고, 차벽 뿐만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동원된 어마어마한 숫자의 경찰버스로 도로를 가로 막았다. (경찰의 차벽은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난 상태인데도 이 모양이다.) 경찰의 이런 오버에는, 집회를 참가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짜증이 치민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경찰국장이어던 고(故) 안병하 경무관은, 광주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시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고 했다. 바닥에 쓰러진 국민을 향해 가차없는 물대포를 쏘아댄 경찰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 대량학살의 집행자였던 나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악(惡)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히만은 일상생활에서는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히만의 죄는 생각의 무능에 있다. 아무 생각없이 살다보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물대포 사격 명령에 복종하기 전에, 자신이 지금 누르고 있는 버튼이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제발 생각 좀 하는 경찰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민의 표현할 권리를 지지해주고, 국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경찰이라면, 차벽 대신 모히토를 파는 집회차량이, 캡사이신 대신 불맛 지대로인 꼬치를 먹으며 집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