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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복주 박풀고갱 Nov 12. 2015

부모와는 어장관리하는 연애를

엄마는 몰라도 되는 이야기

최와 박이 스페인의 발렌시아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발렌시아는 바르셀로나 남쪽의 해안 도시다. 당시 프랑스 유학중이던 후배가 요양겸, 스페인어 연수겸 잠시 머물고 있다고 해서 들른 곳이다. 해변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후배가 크게 웃으며 쇼윈도우를 가리킨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어느 속옷 가게

속옷 가게의 쇼윈도우에 광고문구가 붙어 있다. 어머니날 선물로 그 가게가 제안한 것은 엄마의 성생활에 도움을 주는 물건들이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어머니날에 자식이 그런 선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광고 문구가 나올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날에 엄마의 성생활에 도움을 주는 물건을 선물하는 나라라면, 자신의 인생과 부모의 인생을 좀 더 쉽게 분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집도 없이, 돈이 모이면 떠나고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하는, 한마디로 제 멋대로 살려면, 우선 부모님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분리시켜야 한다.


어차피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스킬은, 기대를 충족시키려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쓸데없이 솔직하게 굴지 않는 것이다. 솔직하게 굴자면 부모와 대립이 불가피하다. 모호한 태도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연애로 치면 어장관리인 셈이다. 연애 상대로는 나쁜 타입이지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아주 유용한 기술이다.


최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있을 때, 부모님은 결혼만 해다오라고 했다. 결혼을 하자, 이제는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정말 끝이 없다.

부모님이 결혼을 하라고 했을 때나, 아이를 낳으라고 할 때, 최는 그냥 알았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아이는 가질 생각이 없다며 괜히 솔직하게 말하면 얘기만 길어지고, 서로 감정만 상한다.

최의 어머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최가 다니는 직장에 대해 구라를 치고 있다. 최가 다녔던 직장 중 그나마 가장 뽀대나는 직장에, 최가 아직도 다니는 양 말하고 다니는 것이다. 최는 그런 어머니에게 왜 거짓말을 하냐거나 그러지 말라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딸을 가지고 싶은 엄마의 욕망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해치지 않는데 굳이 왜 말리겠나. 거짓말이 탄로나서 쪽팔린 것도 엄마지 최가 아니다. 최와 같은 딸을 둬서 불행하다면, 그것 또한 엄마 인생이지, 최의 인생이 아니다.


어떤 심리상담서에, 사고뭉치 부모의 지나친 요구 때문에 괴롭다는 내담자가 있었다. 모른 체 하자니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게 보답해야 할 거 같은 책임감 때문에 괴롭고, 들어주자니 부모가 자주 저지르는 사고처리를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당신의 부모는 당신을 키우면서 아낌없이 베풀기도 했겠지만, 당신이 커가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맛보았으며 그것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얻었다.' 라고 했다.

최는 그 부분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슬프지만, 연애를 비롯한 모든 인간 만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과 정성을 쏟는 그 순간순간 기뻤으니, 이미 보상을 받았던 것이다. 떠나보낼 사람과 이루지 못했던 일들은 떠나보내야 한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든.

이제 더이상 상대가 나를 기억조차 못한다해도, 그 일로 인해 인생 지체가 심각했다해도, 정성을 쏟았던 그 순간만은 소중하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마음이 없다는 건 남들처럼, 남들 하는 만큼 살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불안하지 않은 삶이 있겠나.  매순간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에너지 삼아 살아갈 뿐이다.

발렌시아 해변은 넓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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