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자기소개서 한 번 안 써보고도 살아진 인생
2013년 4월 오키나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빠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와 박을 제외히면 오키나와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그 빠에서도 강남스타일이 먹히는 걸 보면, 전세계가 그 노래에 열광했다는 것이 맞긴 맞나보다.
그 빠로 최와 박을 인도한 사람은 오키나와 나하시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는 나카가와(가명) 센세였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싸이의 노랫소리와 겨뤄야 했기에 목소리 볼륨이 점점 높아졌다. (일본어로? 그럴리가?! ㅎㅎㅎ 나카가와 센세가 한국어를 잘한다.)
벌써 3차째라, 셋 다 꽤 취한 와중에, 최가 했던 말이 의도치않게 나카가와 센세의 심기를 거슬렀다.
최가 나카가와 센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걸, 최는 다음날 아침에야 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월매나 다행인지... 술은 이래서 좋다. 기억을 못하거나 기억이 나도 모른척 해도 되니까... ㅎㅎㅎ
근데 최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사회운동에 계속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치과 의사로 편하게 사실 수 있는데 말이에요."
최는 나름 치하를 한 것인데, 나카가와 센세는 자신이 운동을 계속하지 않고 치과의사로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의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꽤 많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 운동하는 지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직접 뛰어 들어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하는 사람들...
최와 박은 오키나와에 11일 머무는 동안 꽤 괜찮은 아파트에 묵었는데, 총 숙박비는 20만원정도 밖에 안 들었다. 나카가와 센세의 소개로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오키나와를 찾는 한국의 운동권들에게 싼 숙소와 공짜 술, 음식을 대접해왔다.
나카가와 센세는 오키나와의 평화운동단체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 단체와 한국의 민중가요 단체가 연합해 행사를 치르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박은 한국의 민중가요 가수의 콘서트 영상을 만들어주면서, 그 가수의 소개로 나카가와 센세를 알게 된 것이다.
박은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다. 그놈의 운동 때문에 대학교도 10년이나 다녔지만 배운 것이라곤 술과 담배뿐이었다. 전공이 영화라 학교 다닐 때 그나마 재미있어 한 것이 촬영이어서, 미국 유학도 잠시 고민했지만, 하루만에 포기했다.
"왜?" 하고 최가 물었다.
"영어를 배울 자신이 없더라고..."
"헐? 고작 그거뿐이야?"
"같이 술 먹을 사람도 없을 거 같고..."
"허얼..."
그리하여, 박은 영화판을 전전했다. 몇 년이 흘러갔고, 박은 충무로 시스템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작업을 하겠다고 무작정 충무로를 나오긴 했지만... 6개월간 게임만 죽도록 했다.(정말 인생 쉽게 산다. ㅎㅎ)
박이 다시 카메라를 든 것은 2008년 5월이었다.
그렇다. 촛불집회 생방송을 하면서, 박은 다시 운동권 중심부로 들어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박은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이렇다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이 없다. 영화판은 선배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들어갔고, 그 이후엔 운동권으로 살고 있으니 써보고 싶어도 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보고 싶어 했을리는 없겠지. 써본 사람은 안다. 써보고 싶어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안 써봤으니 제대로 된 직업이나 벌이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여기서 '제대로 된' 이란 박의 어머니의 기준 정도로 생각하자. 최는 박만큼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이다. ㅎㅎ)
그런데도 살아진다. 일년에 해외 여행을 두세 번이나 다닌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술을 마시고, 목돈이 생기면 떠난다.
박이 특별히 운이 좋아서....라고 최는 생각한다.
왜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산더미처럼 써왔던 최를 만났으니까... ㅎㅎㅎ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신기하게도 박의 주변에, 박과 같은 태도로 살면서도 '자알' 살고(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남들처럼 못 살면 지구가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박의 삶이 대책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최는 박을 비롯한, 박과 같은 삶의 태로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항상 감동을 받는다.
일신의 안락을 추구하되,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가 확성기가 되어주고, 함께 싸워주는 사람들.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 기꺼이 뛰어들어 어둠을 밝히려는 사람들.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대하며 사는 사람들이, 최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어찌 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카가와 센세도 어찌보면, 최가 박을 사랑하는 마음과 비슷한 종류의 마음이 아닐까...
오키나와를 다녀온 이후 늘 나카가와 센세에게 한국 소주라도 한 상자 보내드려야지... 했건만 생각만... (생각은 정말 여러번 했다. ) 이번에는 꼭 보내야지. (보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