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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 Sep 20. 2018

나는 지금 엄마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경이로운 순간'

  



calligraphy  by 글몽




어느 날 마트에서 채소코너를 둘러보는데, 딸이 브로콜리를 집더니 묻는다.


"엄마 브로콜리 꽃 본 적 있어?"


"아니. 본 적 없는데... 넌 본 적 있어?”


"큭큭큭, 엄마! 브로콜리가 바로 꽃이야. 몰랐지?"


“이게 꽃이야?!”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딸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다른 코너로 도망갔다.

  

  꽃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다니! 내가 몰랐다는 사실보다 이게 꽃이라는 사실에 당황했다. 서둘러 검색을 해보니 브로콜리가 한송이의 꽃인 건 아니었다. 그 안에 수백 개의 꽃을 품은 꽃 뭉치였다. 브로콜리 끝에 몽글몽글 매달린 작은 알맹이들은 모두 한송이의 꽃이 될 봉오리였던 것이다. 보통 채소라 하면 꽃이 핀 후 열리는 열매를 먹는 것인데, 브로콜리는 이 꽃 뭉치가 채소처럼 먹히고 있었다.

  즉, 브로콜리는 식용이 가능한 화채류의 식물인 것이다. 그것도 수백 송이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식물!

그러나 여느 식물처럼 브로콜리가 꽃을 피운다면, 그건 무르기 시작한 오이와 같다. 브로콜리에게 개화란 유통기한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사랑받는 다른 꽃들과 다르게 브로콜리는 꽃을 피우기 시작함과 동시에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 브로콜리의 전성기는 피우지 못한 꽃들을 품은 미성숙한 시절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 자신이 브로콜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른이 되고 공부만 할 줄 알았지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해 본 적도 없고, 사회경험도 적은 내가 엄마가 된 것이다. 미성숙한 20대에 아이를 낳고 30대가 되었으나 서툰 것은 마찬가지다. 10대의 딸을 키우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고, 돌을 앞둔 둘째 아들도 아직 낯설기만 하다. 나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봉오리만 잔뜩 품은 브로콜리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꽃을 피우기 전의 브로콜리가 얼마나 귀하게 쓰이는가.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법정스님의 말처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그렇다. 이보다 성스러운 일이 없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는 인류가 나온다. 자연재해나 전쟁이 아닌,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아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국가는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시민들에게 자살을 권장하고, 세계는 난민과 테러 문제로 공황상태에 이른다. "놀이터의 소음이 사라지고, 절망이 시작됐어요."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피폐하기만 하다.

  그런 세상에 18년 만에 아기가 태어난다. 전쟁터에 울리는 아기의 울음소리. 둘째를 안고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매일 아기를 돌보다 보니 잊고 있었다. 육아라는 게 국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아닌 그저 생명을 다루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말이다.

  아직도 부족한 엄마이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어쩌면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경이롭게 기록될 전성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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