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이 되어가는 것들
몇 주 전 학교 일로 일주일 동안 서울에 올라가 있을 때였다. 방학에도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는 친구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하루는 친구와 점심을 사 먹고 친구는 볼일 보러 가고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아뿔싸, 친구 집 문 앞에 서자 난 끔찍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가 나에게 집 비밀번호를 카카오톡으로 알려줬었고, 나는 8자리의 비밀번호를 외우지 않고 항상 카톡을 켜 보고 도어락을 눌렀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휴대폰을 충전시킨다고 친구 집 안에다 두고 온 것이다! 그걸 깨달은 즉시 내 뇌는 ‘공중전화!’라고 외쳤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내딛는 한 발자국과 함께 또 드는 생각.
요즘도 공중전화가 있나?
나중에 ‘공중전화 찾아 삼만리’라는 제목으로 친구들에게 모험담을 들려줄 생각을 하며 야심 차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길로 나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공중전화. 비장한 각오가 촛불처럼 훅 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중전화는 큰 도로의 횡단보도마다 하나씩 다 있을 정도로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렇다. 나에게 공중전화란 휴대폰이 없던 어린 시절, 엄마에게 급한 일이 있을 때나, 동전도 없이 긴급전화를 눌러서 쓰던 고대 문물이었다. 휴대폰이 생기고, 스마트폰의 시대가 오고 나서는 공중전화박스를 찾을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 많은 공중전화는 당당히 존재하면서도 내 인식에서, 시야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일이 금방 해결된 안도감과 증발한 모험심의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며, 공중전화박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