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가윗날, 처음으로 주둔지 인근 지역을 벗어나 서울로 향했다. 출타는 처음이 아니지만, 가 봐야 시골 읍내까지 밖에 못 가 본 터라, 오랜만의 도시행이 무척 설렜다. 서울역에 내려, 출구로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고층빌딩들, 사람과 차량이 파도를 이루는 광장과 도로. 울창한 숲이 아닌 가로수가 일정 간격으로 서 있는 인도. 그 장면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만큼은 세 달의 군 생활이 모두 꿈이었다. 군에 와서 사귄 사람들, 배운 지식들, 그 모든 것들이 무의식의 저편에서 메아리로 사라졌고 도시의 땅과 하늘에서 '현실감'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서울 빌딩 풍경)
'그래, 이게 내 삶이었지.'
산 좋다 물 좋다 하는 자연 애호가이지만, 도시 태생으로서 도시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고향인 대구도 아닌 서울이었지만, 마치 타국살이하다 귀향한 것처럼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서울역에서 잠시 기다리고, 부모님이 데리러 왔다. 그리고 차 안에서 꿈틀거리는 덩치 큰 전투복 덩어리를 보고는 두 배로 반가웠다. 형은 나보다 약 한 달 먼저 입대했으니 약 네 달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도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봤지만 학기에 최소 한 번씩은 집에 내려갔었으니 이번이 살면서 형과 가장 오래 만나지 못한 기간이었을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찾는 엄마 아빠와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형과 이야기보따리를 쏟았다. 형과 나는 병과가 매우 달라서 서로 이야기할 게 많았다. 군단/사단 마크의 생김새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생활관 생활과 업무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밥을 먹고 나서 숙소로 향했다. 부모님이 북촌 한옥마을에 펜션을 예약해 놓으셨다. 원 추석에 그리 관광객이 많은지. 한복 입은 군중에게 점령당한 골목을 차로 뚫느라 엄마가 진땀을 뺐다.
숙소는 ㄷ 자 형태의 한옥으로, 한쪽 면은 벽으로 막혀 있어서 사실상 ㅁ자 한옥이었다. 우리가 머문 방은 '직녀방'이라는 이름이었는데, 크기는 작아도 하룻밤 묵기엔 알맞고 편했다. 그리고 화분과 평상, 한국적인 장식물로 잘 꾸며진 중앙의 마당을 둘러싸고 각각 다른 손님들이 머무르게 되어, 여행 온 모르는 사람들끼리 친해지기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손님들 중에는 덴마크에서 여행 온 연인도 있었다. 대구에서 온 손님들이 데려온 강아지를 구경하면서 친해진 사람들은 (한국 손님들이 모두 영어를 잘했다.) 서로 어울려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마 밑으로 보름달이 뜨고, 밤을 맞아 핀다는 노랗고 보라색인 꽃과 함께 낯섦과 익숙함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저녁 분위기를 냈다.
세 달 만에 가족과 함께 잤고, 세 달 만에 도중에 깨지 않고 잤다.
습관 때문에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앉으니 아빠도 일어나 있었다. 조금 쌀쌀한 공기를 즐기며 마당에서 한옥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마당의 저편 벽에는 장식물들이 많았다. 용 모양의 돌조각, 양파 질감의 닭 모형, 반짝이는 조개껍질 모음……. 주인아저씨의 가족으로 보이는 옛 사진들과 함께 진열돼 있는 장식물들은 어쩐지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해 놓은 전시회와 같은 느낌이었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고 주인아저씨는 아침으로 전복죽을 해 주셨다. 이상한 조합이지만 엄마가 가져온 아웃백 빵도 같이 먹었다.
사람들이 슬슬 갈 준비를 하던 때에, 한 손님 부부가 즉석 버스킹을 시작했다. 실력자인 아주머니는 피아노를 치며 고음으로 가곡을 불렀고, 배워가는 중이라는 아저씨는 옆에 서서 조금 서툰 음색으로 같이 노래했다. 손님들이 저마다의 마루에 걸터앉아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고, 한 곡 끝날 때마다 진심을 담은 박수를 보냈다. 분위기가 아침 햇살과 어우러져 마치 힐링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침 먹는 사람들과 자긴 뭐 없나 두리번거리는 강아지
아침의 가곡 공연
잠깐이었지만 추억에 남을 한옥 펜션을 뒤로하고, 한복 입고 한옥 기와와 각도를 맞춰 사진을 찍는 귀여운 외국 아이들을 지나쳐 마을을 빠져나왔다. 교보문고를 들렀다가 서울역에서 밥을 먹고, 엄마가 부대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차를 탔다. 저녁으로 먹을 통새우와퍼 하나 사 들고. 한 것도 없는데 상당히 피곤했다. 전투화가 발에 추를 단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차 안에서는 깜빡 잠에 들었다.
남은 시간 동안 부대 인근의 읍내에서 시간을 때웠다. 동기들이 부탁한 물품을 사고, 카페에서 잡담을 하고, 서울에서 암만 찾아도 하는 데가 없던 당구장을 어이없게도 여기 와서 갈 수 있었다. 엄마 아빠랑 포켓볼을 서너 판 쳤다.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와 마지막으로 뭔가를 하면서 놀았던 게 참 오래전이다. 많이 놀러 다니던 옛날엔 물만 있으면 물수제비를 했는데. 요새는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는 것이 다니 말이다.
깜깜한 시골 도로를 뚫고 부대로 복귀했다. 차에 시계를 두고 내렸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진 엄마 덕에 다시 나와서 가져올 수 있었다. 하마터면 한 달 동안 불편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