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학기, 박사과정의 시작.
(Second Half를 쓰기위해선 First Half를 빨리 내보내야겠더라...)
2015년 8월, 나는 반쯤 설렘과 반쯤 두려움을 간직한 채 토론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서야 사뭇 안정적인 상태로 진입한 한국에서의 자취생활을 뒤로한 채 내 생활의 전부를 비행기에 싣고 떠나갔다. 사는 집, 그리고 그곳에 들어갈 내 가구, 식기 , 내가 걸어다닐 곳 , 내가 일할 곳등 모든 것이 새로웠다.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당연히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일단, 사람은 안정적인 공간이 있어야 나머지 것들이 뒤따라 안정적일거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집을 알아보려했지만, 집은 끝까지 보고 사야한다는 여러 사람들의 조언과 생각보다 높은 토론토의 집값에 일단 2주 정도를 지내보며 집을 구하기로 했다. (맘편히 기숙사로 일단 들어갔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 이제서야 생각해본다. ) 하지만, 너무 여유를 부린탓에 출발전까지도 임시숙소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도쿄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부랴부랴 토론토의 북쪽에 위치한 한인민박을 예약했다. (2주정도의 집값으로 약 천불을 지불했는데, 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로 사람들이 자주오는 토론토의 특성상 천불이면 한달 임시숙소를 구할 수도 있었다.) 어찌됐든, 토론토에 도착해서 잠시나마 임시로 있을 공간이 생겼고, 그곳을 기반으로 토론토에서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3월에 Grad Visit Day로 왔을 때, K가 꽤많은 정보를 알려주어 대중교통은 이미 익숙했었고, 도보여행을 좋아하는 내 특성상, 3월의 Grad Visit Day 끝나고 이틀간 다운타운의 지리는 어느정도 익혀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역시 집을 구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다름 아닌 Budget이 문제였다. 혼자 살자니 budget이 허락하지 않아서, 아파트를 둘러보며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룸메이트를 구하는 공고를 기다리고 있다가 메일을 보내고 약속을 잡고 하는 식이었다. 이를 너무 늦게 준비한 덕에 여유롭게 집을 구하기가 힘들어 방안에서 컴퓨터만 켜놓고 기다리는 일상이 며칠간 지속됐다. 일주일간의 잠복끝에 포닥으로 UofT에 와있는 한국분 한 분을 만났고, 그 분의 룸메이트로 들어가기로 결정됐다. 아직 가구도 사지 않았고, 옷도 산 것도 없지만 방을 하나 구한 것이 걱정거리의 80%는 덜어주었다. 거기다 다운타운의 북쪽 Finch에 지내면서 친구 PO도 만난터라, 외롭지 않게 토론토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활이 안정적이게되자 이내 엉뚱한 짓을 하나 저질렀는데, 걱정거리가 덜어진 나머지 8월말에 피츠버그행 비행기에 올랐다. 강정호 선수가 뛰고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경기를 보러 정말 순식간에 결정하고 떠났다. 피츠버그에 도착해서 경기를 보고나서야 MLB를 볼 수 있는 북미대륙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름다운 PNC Park. 이 사진을 찍기 위해 8회쯤 미리 나왔다. 토론토에도 Bluejays라는 팀이 있다. 2015년엔 ALDS(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챔피언쉽)에 까지 진출한 팀이었다. Rogers Centre(p.k.a. Skydorm) 라는 돔구장을 사용한다.
연구실 내 내자리. 아래의 데스크탑 2개를 모두 이용할 수 있지만 현재 발 받침대로 사용중이다. 4K모니터를 하나더 지급받았고, 맥북프로15인치가 현재 날아오는 중이다.
피츠버그를 다녀오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다녀오니 금방 학기가 시작되었다. 연구실에도 미리 나가서 복도쪽의 자리와 컴퓨터 그리고 점심미팅 때 마다 사용될 접시(?) 하나를 받았다. 9월 학기에는 2개의 수업을 신청하였는데, 하나는 3번 째 듣는 HCI수업 그리고 나머지는 UofT가 두각을 나타내고있는 Machine Learning강의를 들었다. (후에 말하지만 이 Machine Learning강의가 내 인생최악의 성적을 던져주었고, 나는 이 일로 지도교수에게 장문의 메일도 써야만 했다.) 9월은 제법 심심하게 지나갔다. 9월에는 모든 HCI연구자들이 그렇듯이 SIGCHI 학회 마감이기 때문에 다들 너무나 바빴다. 지도교수도 한 번 미팅을 하고는 마감전까지는 따로 미팅을 잡지는 않았다. 연구실에는 좀비같은 형색을 한 친구들이 돌아다녔다. 대학원생활을 언론정보학과소속 연구실에서 보냈던 나였기에 이제서야 비로소 공대연구실에 온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UofT CS는 Art&Science 소속이다.) 학회에 제출해야하는 논문도 없고, 석사연구를 그대로 이어서 할 생각도 없던 나는 그야말로 자유의 시간을 누렸다. 평소에 관심있던 주제를 다시 끄집어내서 관련 논문을 찾고, 연애를 하고,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 스타벅스에서 주문의 버범익이 익숙해질 때쯤 드디어 몰려올 것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9월 마감이 끝난 뒤, 2주 간의 휴식기를 가지고 다들 원래의 생활로 복귀했다. 격주로 내가 속한 Dynamic Graphics Group의 HCI group미팅과 Toronto User Experience그룹의 세미나가 진행됐다. 또한 매주 지도교수그룹의 미팅이 있었고, 지도교수와의 1 on 1미팅이 진행됐다. DGP의 HCI group 미팅은 점심미팅으로 진행된다. 곧 학회를 나갈 동료들의 발표를 듣고 피드백을 주거나, 초기 아이디어가 있을 떄 브레인스토밍을하며 도움을 받기도 한다. 혹은 세미나... SIGCHI에 냈던 학생들이 많았고, Ubicomp에 발표를 할 예정인 학생들이 많았기에, 주로 발표 피드백을 갖는 시간이 많았다. 첫 몇주는 거의 꿀먹은 벙어리 수준이었는데, 동료들의 발표를 듣고 이해를 해서 질문을 끄집어 내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기떄문이다. 손을 착 들고 말하기까지 너무 긴 로딩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게 해결되기까지는 거의 두달이 걸렸고, 아직도 부드럽게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일단 말하고보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내 예상보다 훨씬 좋은 연구들에 기가 죽은 것도 있다. 이것은 SIGCHI학회의 결과가 나오고서 극에 달했는데, Peer pressure로 나타났다.
지도교수그룹의 미팅은 크게 브레인스토밍과 Demo session으로 이루어진다. 지도교수인 Daniel에 대해 잠깐 말하자면, lean한 연구를 선호한다. CS베이스이다보니 될까안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나왔으면 빨리 보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자는 주의다. (나는 동의하지만, 몸이 따르질 않아서 고생했다.) 브레인스토밍 세션에서는 이제 막 연구를 전개해나가는 혹은 연구를 진행하나가다 막힌 이들이 나와 도움을 요청한다. HCI그룹미팅 때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기에, 내게 훨씬 더 편했다. ( 이건 브레인스토밍 연구에서 나온 결과와 일치하는데 브레인스토밍은 다수보다는 소수가 진행할 때 유리하고, 참가자들이 긴장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Demo session은 연구가 한참 진행중인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시간이다. 실제로 돌아가는 Demo를 보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져주거나 피드백을 줄 수 있다.
1on1 미팅은 모두가 아는 그 미팅이다. 첫 미팅 당시 나는 3개정도의 아이디어를 다니엘에게 말했고, 같이 토론 끝에 가장 contribution을 많이 줄 수 있는 (그리고 지도교수의 관심사와 맞는) 아이디어를 선택해 발전 시켜나갔다. 이 과정이 한 문장으로 끝나는 것 처럼 순탄치는 않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rough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고갔었는데, 이미 석사때부터 Daniel과 함께 연구를 하고 나와 같이 박사를 올라온 아이가 잡고 있는 주제와 매우 비슷했다. Daniel은 자기 박사학생들에게 주제선택의 자유로움을 주는 대신 그들이 겹치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석사가 아닌 박사로써, 개인 연구자로써 커가길 바래서일까... 내가 받은 인상은 너의 주제와 나의 주제속에서 공통점을 찾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는 건 OK, but 서로의 연구주제가 겹쳐서 같은 걸 연구하는 건 원하지 않는 듯했다. 실은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지만, 내가 받은 느낌에서도 최종종착지가 같아보였기에. 석사 때에 이어서 두번째로 연구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연구방향을 트는 것은 힘들다. 이제껏 쌓아온 문헌연구가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고, 방향을 크게 틀지 않는다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한다는 소리이기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처음부터 순탄히 진행될 수는 없다지만, 생각보다 난감했다.
CS의 많은 수업들은 강의 + 시험 + 과제 + 프로젝트로 이루어져있다. 과목에 따라서 시험과 프로젝트가 같이 있거나 혹은 둘 중에 하나만 있다. HCI수업의 경우 시험 혹은 프로젝트 택 1 이어서 같은 DGP그룹의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기에 대해선 할말이 많지만, 그룹 프로젝트는 국가를 안가리고 힘들다...
머신러닝은 위의 4개가 다같이 공존하는 형태였는데, 정말이지 가장 힘들었다. 분명 제목은 Introduction To ML 인데, 13주간 과제 3개와 기말,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니 많이 힘들었다.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Fail이라는 성적을 받았다. 성적표를 보고 한 이틀간은 패닉상태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박사까지와서 Fail이라니' 부터 '내가 정말 연구를 해도될까..'하는 생각까지... 날 뽑은 지도교수에게 면목이 없었다. 결국 지도교수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다행인것은 그런일은 일어날 수 있는거라며 우리는 연구에 집중하자는 지도교수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운 강의였고, 기말을 보고나서 Online Course나 다른 ML과목 수강을 통해 지식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내 Design Support Tool에 머신러닝을 기법을 적용시킬 수 있을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 머신러닝 프로젝트로는 '야구경기에서 투수의 투구종류 예측'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던 pitchFx데이터를 이용해서, 기존의 연구와 같게 binary classification (Fastball or not) 과제로 진행했다. Support Vector Machine을 사용했었는데, kernel을 잘못적용시켰는지 결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다행히 교수가 야구팬이었는지, 흥미롭게 지켜봤고 Neural net을 적용시켜본 결과를 보고싶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현재 pause상태인데, 이번 여름에 머신러닝 Coursera강의를 듣고 진행할 생각이다.
처음이다 12월 초에 방학이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11월말에 끝나 12월초에 한국을 들어갈 수도 있었다. HCI와 머신러닝 프로젝트만 없었다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추운 토론토 (하지만 올해는 정말 안추웠다)를 피해 플로리다나 멕시코로 여행을 떠났다. 이 때 나는 완전히 프로젝트에 잡혀있어서, 프로젝트가 끝날 즈음에는 12월 22일 이었다. 이마저도 추가작업때문에 12월 말까지 이어졌고...
First Half는 정말 정신없이 그리고 토론토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금방 지나갔다. 12월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채 Second Half를 맞는게 서글펐지만, 잠이라도 충분히자고 밀린 드라마를 챙겨볼 수 있어 그나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