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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Aug 23. 2023

리틀 교토보다 안 교토 같은,
레알 교토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오사카를 떠나 교토로 갔다. 일본 여행 일정이 이제 절반이 지난 것이다. 교토에는 꽤 많은 시간을 배정했는데 그만큼 기대가 있었다. 오래된 유적 때문이라기보다 워낙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나왔던 곳이기도 하고, 특히 요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곳 교토가 배경일 때가 많다. 일본에서도 ‘옛날 도시’의 대명사로 교토를 꼽고 있다.


일본에는 소위 ‘리틀 교토’라고 불리는 지역이 많다. 시마바라, 다케하라, 다카야마, 나라이 등 그냥 시대와 상관없이 옛날 목조주택으로 거리가 형성되어 있으면 모두 리틀 교토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만큼 교토를 상징하는 단어는 ‘옛날’이다.


우리는 리틀 교토가 아니라 드디어 레알 교토에 간다는 설렘을 안고 교토역에 도착했다. 교토역에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것은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교토부의 인구는 260만 명 정도 되고, 그중 교토시의 인구는 140만 명 정도 된다. 상당히 큰 대도시다. 그런데 관광객이 체험할 수 있는 인구는 그보다 10배는 더 많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고, 유명 관광지 주변의 골목이 좁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광지도 아닌 교토역 역시 무척 혼잡했다. 체감상으로는 도쿄역이나 오사카역보다 더 혼잡한 것 같다. 


교토역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건축물로 세계적인 건축가 하라 히로시의 작품이다. 공중정원으로 유명한 오사카의 우메다 스카이빌딩 역시 그의 작품이다. 교토역은 1997년에 준공된 지하 3층 지상 16층의 거대한 건축물로 굉장히 현대적이고 멋스럽게 지어졌다. 그런데 나는 이 건축가 분이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경험도 많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교토역은 껍데기는 그럴싸하지만 실제로 이용할 때는 아주 불편하다. 동선이 직관적이지 않아 이용객이 선로를 가로지르려면 그 큰 역을 뱅글뱅글 돌아야 해서 결국 특정 구역에 사람이 몰리게 되어 있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은 조금이라도 빨리 역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동선이 굉장히 길고 복잡해 역사 안에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다. 기차역은 그 안에서 오래 머물게 하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승객이 빨리 열차에 타고, 내리는 사람은 빨리 역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토역은 이곳은 주로 철도를 승하차하고 환승하는 용도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고 두 다리가 아주 튼튼한 사람만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은 건축물이다. 좋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교토역 인파


교토는 경주와 마찬가지로 ‘천년고도’라고 부른다. 일본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사실 이 부분이 좀 헷갈린다. 교토가 수도였던 기간은 ‘수도’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토가 오랜 기간 덴노가 머무르던 곳임에는 틀림없으나 오랜 기간 일본의 실질적인 권력은 덴노가 아니라 막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령 에도막부 시대에도 교토를 수도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에도 이어진다. 일본 덴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도를 됴쿄로 옮긴다로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교토가 일본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도 있다고 한다.


교토사람은 일본에서 돌려 말하는 것으로 유명한다. 이런 교토식 화법은 일본 코미디의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교토식 화법은 가령 “오차츠케 한 그릇 어떠세요?”라는 말은 이제 그만 돌아가 달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그저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충청도에 가면 성격 급한 어르신들이 참 많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교통패스를 샀다. 교통패스는 버스만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버스와 지하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는 버스만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샀다. 결론적으로 이 패스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버스만 이용할 수 있는 1일권의 가격이 700엔인데, 시내구간 버스비는 230엔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4번 이상은 타야 유리하다. 그런데 막상 다니다 보면 하루에 버스를 네 번이나 탈 때가 별로 없다.


교토 기요미즈데라 산넨자카


우리가 교토에서 제일 먼저 간 곳은 금각사(긴카쿠지)였다. 교토에는 한국식 독음으로 금각사와 은각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는데, 일본어 한글 표기법으로는 둘 모두 '긴카쿠지'라고 쓴다. 예전에 일본어를 처음 배웠을 때 발음 연습을 하며 자주 예로 드는 단어다. 금과 은의 발음이 서로 비슷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한데 찾아봐도 잘 모르겠다.


금각사(긴카쿠지)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녹원사)'다. 원래 사이온지 긴쓰네의 별장으로 건축되었다가 1397년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은퇴 후 별장으로 쓰기 위해 현재와 같은 정자를 짓고 관련 시설을 만들었다. 후에 이시카가 요시미쓰가 죽자 그의 아들이 이 건물을 선불교 사찰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1467년 오난의 난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는데, 1950년 정신질환이 있던 하야시 요켄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그는 불을 지른 후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사람들에 의해 붙잡혔고 징역 7년형을 받았다가 1955년에 가석방되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정자는 1955년에 재건한 것이다.


금각사는 역시 금박을 입힌 정자가 유명하다. 정자 전체가 금박인 것은 아니고 2층과 3층 벽면만 금박이 입혀져 있다. 복원을 하면서 과거보다 금박을 훨씬 두껍게 입힌 것이라 과거에는 지금과 같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금색의 정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금박이 하도 두꺼워서 고즈넉한 분위기가 없이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고 부자연스럽다.


금각사


킨카쿠지에 들어가면 입장권으로 부적 같은 것을 준다. 입장료가 일본의 다른 유적지와 비교해 보아도 꽤 비싼 편인데 볼 것이라고는 정자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정자는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멀리서 사진 하나 찍으려도 이 입장료를 내야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관광객의 동선 곳곳에 기념품이나 이런저런 물건을 팔고 있는데 앉아서 쉴 곳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정원을 잘 꾸며놓은 것도 아니고 정원 관리를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쉴 곳을 안 만들어 놓은 것도 관광객을 빨리 내보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시설임에도 상당히 자본주의적이다.


더위가 좀 식고 해가 질 때쯤을 기다려 후시미 이나리 신사로 갔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이나리 신을 모시는 곳으로 일본의 약 3만 곳의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토리이를 보기 위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입구에도 거대한 토리이가 있지만 산 중에는 약 1만 개의 토리이가 있어 상당히 장관이다. 에도 시대 이후로 신사에 헌금을 하면 토리이에 날짜와 이름을 새겨 설치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하는데, 1만 개의 토리이가 설치된 것은 그만큼 이 신사의 신자가 많다는 것일 것이다. 다른 신사와 마찬가지로 입장료는 없다.


후시미 이나리 신사 정문 토리


이 신사는 711년 하타 씨족이 모시던 씨족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나리 신은 곡식과 농사, 풍요를 관장하는 신인데 현대에 들어와서는 사업의 번창과 교통안전, 소원성취를 위해 믿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하타 씨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하기 전부터 이 신앙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나리 신은 여우신이라는 말이 많다. 신사에도 여기저기에 여우상이 놓여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나리 신은 여신이나 남신으로 묘사될 때도 있고 성별이 없는 것으로 묘사될 때도 있지만 여우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 이나리 신을 모시는 사자가 여우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여우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여우라고 한다. 이나리 신을 모시는 종교 행사를 할 때는 여우탈을 쓸 때가 많은데, 이때 여우탈은 투명한 색이 아니라 흰색이다. 


이나리 신이 일본에서 워낙 인기가 있기도 하지만 이 신사의 여우 상과 수많은 토리이는 굉장히 인기가 높아서 특히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었다. 영화로는 <게이샤의 추억>이 유명하고, 애니메이션은 <마법선생 네기마>, <키구야 님은 고백받고 싶어>, <5등분의 신부> 등이 유명하다.



우리는 이 신사에 갈 때 버스를 타고 갔는데 버스를 타면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도 아니고 표지판도 없어서 길을 찾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열차를 타면 신사 입구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버스를 탔던 것은 버스 1일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숙소로 돌아갈 때는 힘들어서 그냥 열차를 이용했다. 버스 1일권은 역시 별로다.


JR이나리역


다음날 우리가 간 곳은 '철학의 길‘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은각사(긴카쿠지)로 가는 길에 있는 산책로다. 개울가 양 옆으로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봄에 오면 볼만할 것 같다. 교토에 살던 철학자 니시가 키타로가 산책하던 길로 원래는 사색의 작은 길이라고 불렀다가 철학의 길로 바뀌었다고 한다. 개울을 따라 걸으면 운치가 있고 아름답기는 하나 사실은 그냥 한국의 여느 동네에나 흔하게 볼 수 있을 법한 길이기도 하다.


철학의 길. 사실은 동네 산책로다.


철학의 길을 걷다가 당연한 수순으로 은각사로 갔다. 은각사의 원래 명칭은 지쇼지(자조사)다. 금각사와 대응되는 것처럼 보이나 금각사와 달리 은칠이 되어 있지는 않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금각사보다 이곳 은각사가 훨씬 좋았다. 왜냐하면 규모도 훨씬 넓은 뿐만 아니라 금각사와 달리 정원이 잘 관리되어 있고 앉아서 쉴 곳도 있기 때문이다. 금각사가 자본주의라면 은각사는 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은각사


은각사는 1460년경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은퇴 후 살 저택과 정원을 지었던 것이다. 금각사를 지은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요시마사의 할아버지다.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자신이 죽은 후에는 이 저택을 선종 사찰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의 뜻대로 사찰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은각사는 할아버지가 지은 금각사를 모방하여 외관에 은을 덮으려고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연못에 비친 정자의 모습은 비롯 옻칠한 나무색이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은각사 정원


이곳도 관광객이 많으나 금각사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정원을 잘 꾸며놓은 데다가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산책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모래 정원이 유명한데 그 모습이 독특해서 볼만은 하나 워낙 파리 같은 벌레가 많아서 오래 감상하기가 어렵다.


은각사 모래정원


은각사를 보고 나와서 간 곳은 근처에 있는 헤이안 신궁이었다. 헤이안 신궁은 헤이안 시대에 창건한 곳이 아니라 1895년 헤이안천도 1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내국권업박람회의 주요 행사장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원래는 천도할 당시의 다이다이리의 일부를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부지 매입에 실패해 실제 크기의 5/8 규모로 복원되었다. 박람회 이후 헤이안쿄(교토)로 천도한 제50대 간무 덴노를 모시는 신사로 바뀌었고 후에 헤이안쿄에서 재위한 마지막 덴노인 고메이 덴노가 제신으로 더해졌다. 1976년에는 방화로 상당한 건물이 소실되었는데, 당시 방화를 저지른 가토 사부로는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간무 덴노를 신으로 모시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여 방화를 저질렀다고 한다. 


헤이안 신궁. 규모가 꽤 크다


헤이안 신궁은 약 2만 평에 달하는 정원으로 유명하다. 정원가로 유명한 오가와 지베에가 20년에 걸쳐 조성한 정원으로 현재 일본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원은 신사에 부속된 시설이지만 보통의 신사가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과 달리 이곳 정원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정원은 굉장히 넓은데 유명세에 비해 관리가 너무 안 되어 있다. 가꾸고 꾸민 일본식 정원을 생각하고 가면 매우 실망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보기 어려운 종류의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다. 다른 정원과 마찬가지로 잉어와 자라, 거북이는 많이 보였다.


헤이안신궁 정원


다음날 우리는 기요미즈데라(청수사)로 갔다.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교토 사진을 검색하면 이곳과 이곳 주변의 상점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곳은 정말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만큼이나 사람이 많은 곳을 찾으라면 다자이후텐만구 정도일 것 같은데, 여기는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데 길도 좁아서 돌아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중간에 쉴 곳도 마땅치 않다.


청수사는 나라시대인 778년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에 의해 세워졌다. 일부 자료에서는 헤이안 시대 초기라고 하나 778년은 헤이안쿄로 천도하기 전이므로 나라시대가 맞을 것이다. 당시 사카노우에는 청수사가 있는 언덕 아랫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막 출산한 아내의 산후조리를 위하여 사슴사냥을 나갔다가 엔친이라는 승려를 만나 감화를 받고 그동안 살생한 것을 참회하는 뜻으로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부자의 플렉스 수준이 이정도다. 현재의 건물은 1633년 당시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건물을 지을 때 못을 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 전통 건축물에 흔히 쓰이는 방식이라 특별하지는 않다.


기요미즈데라 무대. 엄청난 인파다.


본당에 상당한 규모의 무대가 있는데, 이 무대의 풍경이 아주 유명하다. 과감한 결단을 의미하는 관용어구로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생각으로’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이 와전되어 무대에서 뛰어내려 생존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생겼다. 그러한 관용어구가 있을 정도로 굉장히 높은 곳이라 아래를 쳐다보면 살짝 오금이 저린다. 고문서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생존할 확률이 85.4%라고는 한다.


기요미즈데라 무대에서 바라본 풍경


본당 아래쪽에는 오토와 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세 개의 물줄기로 나누어 있는데 이 물줄기는 각각 지혜, 연애, 장수를 의미한다는 풍문이 있다. 그런데 이 중 오직 두 개만 선택할 수 있으며 세 가지 모두를 선택하면 욕심이 과해 벌을 받는다고 한다. 


오토와 폭포. 줄이 아주 길다


청수사로 가는 길에는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라는 유명한 길이 있다. 산넨자카가 큰길이고 니넨자카는 가지길이다.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인데, 교토 외의 이러한 보존지구를 ‘리틀 교토’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곳이 원조인 셈이다. 산넨자카는 아이를 잘 낳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고개라는 의미라는 설이 유력하나, 사실 지명의 어감 때문에 이곳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낭설이 있다. 지명 그대로 언덕인데 이곳으로 올라 청수사로 가는 사람보다는 청수사를 보고 이곳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 같다. 옛날 목조 건물이 인상적일 수 있겠으나 그것을 감상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보이는 풍경이나 뒤를 돌아 청수사 쪽을 바라볼 때의 풍경 모두 멋지지만 잠시 멈춰 사진 한 번 찍으려면 주변 눈치를 좀 봐야 한다. 


산넨자카.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기온마치였다. 전통 목조 가옥이 늘어선 곳으로 전통 예술 거리로도 알려져 있어 게이샤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공연을 하는 극장들이 좀 있는데 가격이 어마무시하다. 다른 리틀 교토들이 갈고닦아서 깔끔하고 깨끗하다면 이곳의 목조건물들은 원래 옻칠을 하는 전통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더 낡은 느낌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아 돌아다니기가 좀 부담스럽다. 기온마치에서 강을 끼고 있는 상점가의 풍경이 굉장히 아름다운데 역시나 음식 값이 어마어마했다.


기온마치. 리틀교토보다는 덜 교토스럽다


교토의 전체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이곳은 일본의 전통적인 정취를 느끼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관광객은 더더욱 많다. 어디를 가나 정신이 없고 시끄럽다. 뭘 하나 사 먹으려 해도 웨이팅을 해야 한다. 게다가 물가는 일본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이곳에서는 일본의 전통보다는 자본주의 국가의 관광산업을 체험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전통적인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레알교토보다는 리틀교토가 더 나은 것 같다.



강쉡의 먹방일기


교토의 첫인상은 내 머릿속 이미지와 달랐다. 대단히 큰 교토역 건물은 매우 현대적이었고 사람은 여태 일본에서 본 것 중에 제일 많았다. 세계적인 명소라는 것을 감안해도 정신이 너무 없다. 잽싸게 빠져나오고 싶지만 역구조가 복잡하다. 버스정류장과 호텔을 갈 수 있는 출구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 기차 플랫폼도 1층에 있어 가로질러 갈 수가 없다. 출구로 나가려면 지하통로나 위층 통로로 한참을 돌아가야 되는데 개방감은 또 쓸데없이 좋아서 뒤편은 훤하게 잘 보인다. 교토에 있으면서 숙소에서 나오고 들어올 때마다 대중교통 안타 본 사람이 역을 지은 거 같다고 건축가를 얼마나 씹었는지 모른다.

 

처음 우리가 본 곳은 금각사였다. 두 번의 화재로 유실되었다가 재건되어 결국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교토에 오면 한 번은 봐야 한다는 삐까번쩍한 절이다. 우리는 교토가 처음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러 갔다. 실망할지언정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에 말에는 이유가 있긴 했다. 물론 금각사 자체만으로도 눈호강을 할 만큼 멋지긴 했지만, 경내가 좁아서 사람들이 더 많게 느껴졌다. 앉을 곳이나 그늘도 부족한데 날씨는 유난히 쾌청해 땀이 뻘뻘 났다. 거기다 좁은 경내에 여기저기 소원빌기용 불상이 있는데 나가는 길목마다 있어 잔돈을 뺏긴다. 잘못한 것도 없는 금각사는 그래서 항상 은각사와 비교가 된다. 



하나마키야 |


교토 금각사 근처에 평점이 꽤 높은 소바 전문점이 있어 땡볕의 날씨에 달려가 줄을 섰다. 관광지답게 웨이팅시간에 주문을 받고 빠르게 진행시켜 주는 듯했지만 왜 주문을 먼저 받았는지 의문이 들만큼 오래 걸렸다. 튀김세트 가격아 낮지 않고 더위에 입맛이 없던 터라 냉소바로 주문을 했다. 



청어소바 


청귤 소바야 원체 비주얼이 압도적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교토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청어소바가 궁금했다. 자칫 비릴 거 같은 선입견에 걱정하며 시켰다. 


음식을 받아 보니 그냥 청어가 아니고 말린 후 조미액에 절여 훈연하여 구운 청어를 올려 준다. 가쓰오 국물과 간 무를 곁들여 한점 먹어보니 훈연향이 나는 청어가 달달하다. 우리네 반건조 생선구이처럼 생선살이 쫀득쫀득하고 단맛이 강해 슴슴한 국물이 짜게 느껴져 단짠단짠 하다. 교토로 넘어오니 간이 슴슴해짐을 느낀다. 여담이지만 교토 사람들은 일본 내에서 구두쇠 또는 깍쟁이 기질이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소금도 아낀다라는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 국물이 짜지 않지만 멸치와 가쓰오의 진한 바다향이 나서 곁들여준 쪽파가 아주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생각했던 맛과 다른 새로운 맛의 조합은 오감을 깨워주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청귤소바


청귤 소바 역시 쯔유가 연해서 청귤을 토핑으로 먹어 줘야 그 진가가 나온다. 은은한 청귤의 향과 새콤함이 자칫 비릴 수도 있는 국물을 잡아주고 새콤하게 하여 감칠맛을 느끼게 해 준다. 곁들이라고 준 양하와 같이 먹으면 생강향이 감도는 게 한층 더 개운하다. 소바면이 수제 느낌이 많이 났는데 차가운 면이 한입 먹으면 탱글탱글하다가 이내 부드럽게 씹혀 넘어간다. 



저녁에는 더위가 조금 식은 해 질 녘 우리는 후시미이나리 신사를 찾아 출발했다. 여우신사로 불리는 이 신사는 붉은 토리 길로 유명하다. 입장료와 입장시간이 제한이 없기 때문에 교토에 숙소를 정한 우리는 애당초 스케줄을 저녁에 잡았다. 


보통 짧게 오사카 여행을 하면 숙소를 오사카로 잡고 교토는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는 낮에 다녀오기 때문에 관광지 입장시간이 끝날 때쯤이 되면 이때부터 교토는 고즈넉한 동네가 된다. 인생샷을 찍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관광객이 빠지고 한적한 저녁에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신사는 매우 크고 산이 뒤쪽에 있어 공기도 맑다. 곳곳에 보이는 여우상과 쭉 이어진 붉은 토리이길이 고즈넉한 교토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 준다. 



다음날 우리는 은각사로 향했다. 사람들이 보통 금각사에서 은각사로 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된다. 메인절인 관음전 건물이 생각보다 소박하여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더 평화롭고 좋았다. 우선 신사로 가는 길부터 철학자의 거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물이 흐르는 조용한 동네의 숲길에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있어 구경하며 가는 재미가 솔솔 하다.


금각사처럼 딱 이거다 하는 건축물은 없지만 신사 자체가 크고 안내가 잘되어 있어 돌아다니는 맛이 있다. 메인 정원에는 물이 아닌 돌과 모래로 산수풍경을 표현해 몽환적이다. 입구로 들어가서 나가는 산길이 쭈욱 연결되어 있어 고즈넉한 길을 따라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언덕으로 올라가 전경도 볼 수 있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내주는 듯한 느낌과 풍경이 내가 이곳을 좀 더 좋아하게  하는 것 이유인 것 같다. 


은각사에서 바라본 교토 시내


 후카 | 


관광지를 가기 전에 배를 채우고 가야 한다. 은각사 가는 길목에 극찬을 받는 오므라이스 집이 있어 달려가봤다. 조용한 골목에 예쁜 집에서 노부부가 운영하는 경양식집인데 조그마한 4인 테이블 2개에 바테이블 몇 개가 전부다. 바테아블에서 정원을 관망하며 식사를 할 수 있어 소개를 보고 혼자 조용히 식사를 하러 오는 여성분들이 많았다. 



폭신폭신한 오므라이스 


브라운소스를 듬뿍 올린 오므라이스가 비주얼부터 침샘을 자극한다. 주문하고 나서 막 만들어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난다. 버터의 고소한 향이 나는 몰캉몰캉한 계란이 입안 가득 행복한 맛을 낸다. 고명으로 올라간 고기는 정성 들여 오래 익혀 부드럽게 씹히는데 마치 비프 부르기뇽을 먹는 듯하다. 


계란요리는 한 끗 차이의 익힘 정도로 맛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려 요리 좀 하는 사람들은 계란요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덜 익히면 너무 미끄덩 거리는 느낌이 불쾌하고 더 익히면 매끄럽지 않은 식감이 거슬린다. 이 한끝의 차이를 명확하게 잡아 안정적인 밸런스를 보여준다. 한순간에 진입할 수 없는 세월이 쌓은 요리 기술에 정수라고 보인다. 한입한입 먹을 때마다 사라져 가는 게 아쉬울 정도다. 



단풍나무 꽃 세트


햄버그, 고로케, 새우튀김이 한 접시에 나오는 이름이 예쁜 단풍나무꽃 세트는 등장 비주얼부터 기분이 좋다. 각 튀김마다 곁들여주는 소스가 다르게 세팅되어 있는 섬세함이 보인다. 바삭한 튀김과 부드러운 햄버그의 상반되는 식감이 재미있다. 푸짐하게 나오는 밥과 양배추 샐러드에 곁들여진 새콤달콤한 비네거 드레싱이 입맛을 돋워준다. 일본은 양배추 채에 달콤한 맛의 드레싱은 쓰는 데가 별로 없다. 참깨드레싱도 단맛이 적고, 폰즈 드레싱은 대체로 많이 짜다. 아니면 아예 드레싱 없이 주거나 ;; 그래서 여기의 새콤달콤한 비네거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가 유난히 좋았다.  조용하게 정원을 보며 즐기는 식사는 사람에 치여 다니던 교토에서 여유롭고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 준다. 



셋째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기요미즈데라를 갔다. 우리 딴에는 일찍 간다고 부랴부랴 출발했지만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꽤나 언덕에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는데 이곳에 있는 신사와 경치는 왜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명소인지 알게 해 준다.


엄청 크고 넓은 입구에 다양한 건축물을 구경하면서 쭉 들어가다 보면 절벽에 있는 본당의 장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에 넋을 잃고 보게 된다.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로 늘 나오는 곳에 내가 직접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실제로 이날도 고등학생 무리들이 있어 좀 무서워서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 오토와 폭포에서 3갈래로 갈라져 내려오는 약수는 각각 건강, 사랑 학문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약수를 마시기 위해  삥 둘러서 기다린다. 땡볕에 쩔은 나와 오변은 그냥 자판기를 찾아갔다. 




차부톤 라멘 |


낮에는 교토의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밤에는 교토 역 근처에서 놀았다. 그중에도 유명한 쇼핑 몰인 요도바시 교토점을 방문했다. 단순 카메라 관련 소품 파는데인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종합쇼핑몰이었다. 장난감, 가전제품, 게임등 다양하게 구경하고 6층에 푸드몰에 있는 라멘집에 들어갔다. 


밤의 돈코츠라멘


자판기로 주문하면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한번 더 체크한다. 특이한 명칭의 라멘이지만 이 라멘을 시킨 이유는 단순히 매운맛이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자극 없이 맑고 깔끔한 국물만 먹었더니 어쩔 수 없이 얼큰한 국물이 땡겼다.


다양한 토핑 중 다진마늘칩과 계란을 추가했는데 얇은 면이 특색 있는 라멘이었다. 진한 돈코츠 국물에 다데기가 들어가 있어 얼얼하니 좋다. 그래봐야 매운 것을 못 먹는 내가 딱 즐길만한 정도의 매운맛이라 일반적인 한국인들을 충족시키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다. 




코코이치방야 엔마치점 |


기요미즈데라 이후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숙소 근처에 있는 코코이치방야에 들어갔다. 날씨가 유난히 더워 카레가 당기기도 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입점에 있던 터라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본고장에서도 쉽게 익숙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집이었다. 메인 토핑, 매운맛 정도, 밥사이즈, 고명을 원하는 스타일로 커스텀할 수도 있고 메뉴판에 추천 메뉴를 시켜도 평타이상은 한다. 


게살 크림고로케 카레


일본 애니메이션에 자주 나오는 게살 크림고로케 토핑을 시켜보았다. 꾸덕한 크림맛과 게맛이 약간 매운맛의 카레와 잘 어울린다. 마늘찹튀김 토핑을 추가해 뿌려서 같이 먹으면 개운한 맛으로 마무리가 되어 좋다.  



치킨커틀릿 카레 


우리가 많이 먹어 본 그 치킨가스 맛이다. 카레에 닿은 곳은 촉촉하고 닿지 않은 부분은 비스킷처럼 바삭하다. 추가로 곁들인 소시지는 탱글탱글해서 앞니로 베어 물면 튀어나갈 것 같다. 카레는 건더기가 굵지 않고 한국에서 먹었을 때보다 많이 묽게 나온다




이온몰 한 세트 |


세계에서 유명한 관광지답게 교토는 여타 지역보다 물가가 높았다. 체감상 1.7~1.8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저녁에 근처 마트에서 구매해서 간단히 먹었는데 교토역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다른 지역에서 자주 애용했던 이온몰이 있어 마지막날 저녁은 그렇게 해결해 보았다. 


한 달 정도 넘으니 안 찾던 김치가 땡기기도 하더라. 대체로 일본 밑반찬이 짠 종류가 많은데 기무치 같은 경우 매우 달게 만들어 한 끼 정도 나쁘지 않았다.


반찬 종류에서는 꽤나 고가축에 속한다. 냉동 삼겹과 우삼겹이 같이 있는 도시락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알보고니 한국 비빔밥풍 도시락이었다. 고추장과 나물등의 밑반찬 있어 쓱쓱 비벼 한 끼 해결하기 좋았다. 


안주하기 좋은 양념 잘된 훈제 오리가슴구이는 30%나 할인해서 잽싸게 집어온 덤이다. 전자레인지에만 돌리면 훌륭한 한 끼가 된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교토에 몸담고 있던 3일은 정말 즐거웠다. 물론 더운 날과 수많은 사람들, 높은 물가 등등 다양한 이슈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세 번 사람들이 찾는 매력이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예스러운 멋과 해 질 녘 한적해지는 거리를 걷다 보면 이곳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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