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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Apr 13. 2024

재산분할로 5조 8천억 받고 양육권도 지켜냈어요

법률 시장이 많이 혼탁합니다. 예전에는 브로커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알음알음으로 변호사를 찾기보다는 인터넷으로 많이 찾다 보니 오히려 거짓, 과장 광고들이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제 주변 변호사님들은 차마 양심적으로 그런 광고를 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소수의 로펌들이 하는 거짓 광고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이 많은 비용을 쓰고도 성실한 변호사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거짓말로 고객을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진정한 실력으로만 광고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거짓 광고 유형들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한 유명 대형 로펌에서 올린 비슷한 광고를 보았습니다. 금액은 5조 8천억 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습니다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광고의 맥락상 금액이 5조 8천억 원이든 5억 8천만 원이든 5만 8천 원이든 사실 차이가 없었습니다.


재산분할금으로 얼마를 받았는지를 가지고 광고를 하려면, 다시 말해서 그게 변호사가 잘해서 나온 좋은 결과라고 하려면 부부가 함께 모은 전체 재산이 얼마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50억짜리 토지를 물려받았는데 이런저런 사유로 남편의 명의로 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로 남편으로부터 5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긴 걸까요?


그러니 재산분할로 얼마를 받았는지가 자랑거리가 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만 말해도 이렇습니다.


1. 부부의 합계 재산은 총얼마인지

2. 혼인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3. 부부의 혼인 전 재산은 각 얼마였는지

4. 부모 등으로부터 받은 재산은 얼마인지

5. 남편은 어떤 일을 하였고 아내는 어떤 일을 하였는지

6. 부부 중 어느 하나가 사고를 쳐서 까먹은 재산은 없는지

7. 부부 중 어느 하나가 재산 증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없는지

8. 로또 당첨과 같이 우연히 생겨난 재산은 없는지

....


부부가 함께 50억 원을 모았는데 그중 5억 원만을 자신의 몫으로 인정받았다면 잘 된 소송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재산분할로 5만 8천 원을 받았다고 해도 부부의 합계 재산이 6만 원이라면 망한 소송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판결문에 적힌 금액만 보고는 소송이 잘 되었는지를 판가름할 수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형로펌의 광고를 보니, 예상대로 부부 합계 재산이 얼마였는지는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엉뚱하게도 조정조서를 올려 놓았습니다(남의 의뢰인이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 각색합니다).



조정조서

....


조정사항

1.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2. 피고는 원고에게 재산분할로 금 5억 원을 지급하되.....

3. 사건본인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원고를 지정한다.

4. 피고는 원고에게 사건본인의 양육비로....

 



그런데, 잠깐! 이 글 제목을 보면 양육권을 지켜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렇습니다. 그 로펌 광고에도 똑같이 양육권을 지켜냈다고 하면서 위 조정조서를 올렸던 것입니다.


'지켜냈다'라고 하려면 공격을 받았어야 합니다. 위 조정조서를 보니 의뢰인은 원고로 보입니다. 그러니 광고대로 '원고가 양육권을 지켜냈다'고 하려면 피고가 양육권을 자신에게 달라고 주장했어야 합니다. 이게 우리의 일반적인 언어 상식이니까요.


피고가 자신이 아이를 키우겠다며 양육권을 주장하려면 보통 반소를 제기합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반소를 제기하지 않고도 판사의 직권으로 친권자와 양육자를 지정할 수도 있습니다만, 실무에서 그런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실제 조정조서를 보니 피고도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피고가 양육권을 주장했다면 아마 담당 변호사가 반소를 제기하였을 것입니다.


피고가 반소를 제기하였다면 반소에서는 피고가 반대로 '원고'가 됩니다. 이때 조서에서는 그냥 피고라고 표시하지 않고 보통은 '피고(반소원고)', 또는 '본소피고(반소원고)'라고 표기합니다.


이제 다시 위 조정조서를 보시죠. 그냥 '피고'라고 표시되어 있네요.


그렇습니다. 피고는 애초에 양육권을 주장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고가 달라고 하지도 않은 양육권을 뭘 지켜냈겠습니까, 그냥 원고가 키우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한 것이죠.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조정조서가 작성되었다는 것은 당사자가 법원에서 합의하였다는 말이 됩니다. 조정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번 글을 참고해 주세요.


물론 합의가 될 때까지 변호사의 많은 조력이 필요합니다. 당사자끼리 그냥 합의가 잘 될 수 있었다면 소송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양육권은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재산분할금이나 위자료는 소송이 어느정도 진행되면 대강 결과가 보이기 때문에 합의가 잘 되는 편인데 양쪽에서 서로 양육권을 주장하는 때에는 합의가 잘 안 됩니다. 아무래도 소중한 아이 문제이니까요.


그러니 만약 피고가 강력하게 양육권을 주장하였다면 위와 같이 합의가 되어 조정이 성립하고 조정조서가 작성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도 승소 사례를 광고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만큼 확실히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도 없으니 말이죠. 그런데 승소 사례를 광고하면 부득이 의뢰인의 민감한 정보가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을 다 뺀다고 해도 의뢰인 주변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있겠죠.


승소사례를 광고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승소도 아닌 것 같은데 승소 사례로 광고하는 것은 참 우습습니다. 사실 저는 그 광고에 댓글을 달고 싶어 근질근질합니다. 거짓말 좀 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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