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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Nov 20. 2024

변호사를 상대로는 소송을 안 한다?

최근에 상담을 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화해권고결정을 받았는데 의뢰인이 이의신청을 원했음에도 담당변호사인 A가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러자 의뢰인은 국내 몇 대 대형로펌이라고 광고하는 로펌에 찾아가 A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의뢰하였습니다. 그러자 위 로펌에서는 "저희는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은 하지 않습니다."라며 수임을 거부하면서, 대신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의뢰인은 대형로펌의 말을 믿고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가 패소하였습니다.


해당 대형로펌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워낙 악질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엉뚱하게도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하라고 권유했다는 사실이 괴상하게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로펌에서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것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변호사도 실수를 합니다.

그 실수가 실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게을러서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변호사의 실수란, 실제 사건에 관하여 법적인 판단을 잘못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가령 A사건에 B라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C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실수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법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의뢰인이 모든 사실관계를 전부 알려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건 당연합니다. 변호사가 예상한 결과대로만 판결이 나온다면 애초에 재판이라는 것도 필요가 없겠죠.


제가 말하는 실수는 가령 항소기간을 놓쳤다거나, 의뢰인이 준 결정적인 증거를 깜빡하고 제출하지 않았다거나, 중요한 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실수였다고 해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까요?


예를 들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실수로 컵을 깨뜨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실수였으니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깨뜨린 컵 값은 물어주는 게 맞을 겁니다. 이렇듯 고의가 없었다고 해서 손해배상 책임마저 없는 게 아닙니다.


변호사도 잘못 판단을 할 수도 있고 실수도 할 수 있기에 배상책임 보험을 가입할 때가 많습니다. 의무는 아니지만 제가 속한 경기중앙회에서는 협회에서 지원을 해 줘서 무료로 가입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제가 의외라고 생각하는 건, 왜 소속변호사가 수백 명이나 되는 대형로펌에서 변호사를 상대로는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 소송도 못하는 법인이면 무슨 국내 몇 대 대형이라거나 , 전관 출신이 몇 명이 있다거나, 전문센터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광고를 해서는 안 되겠죠. 그냥 "피고에게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간단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도 자신 없습니다"라고 광고를 한다면 인정하겠습니다.


게다가 변호사에게 소송을 못 하겠다고 할 정도의 의리가 있다면 말도 안 되는 허위 광고로 도배하거나, 포털 광고비 단가를 확 올려놓는 짓을 하지 말았어야겠죠. 또 그 사건을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했어야지, 그 와중에 의뢰인을 꼬드겨서 승소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한다는 건, 한 번 들어온 의뢰인의 돈은 어떻게든 빼먹겠다는 못된 심보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저도 평택에 있으니, 같이 자주 얼굴 마주치며 가끔은 술도 한 잔씩 하는 평택의 다른 변호사님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수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변호사나 법무법인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굳이 수임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같은 직업인 사이의 동료애는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으로 발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위 '샤크 변호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호사에게 의뢰인의 사건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잘 모르는 사건은 처음부터 수임하지 않도록 하는, 변호사로서의 윤리의식을 더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법률적 도움을 주는 직업이 변호사인데, 가해자가 변호사라는 이유로 소송을 마다한다는 건, 제 직업윤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http://myla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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